▲ 김해시가 지난 2006년 10억 원을 들여 서김해 나들목 입구에 설치한 '21세기를 향한 비상'이라는 상징물이 김해의 특성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지난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제의 시행과 함께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상징물' 지정에 뛰어들었다. 지역의 경쟁력은 차별화에서부터 시작되고, 이를 위해서는 '상징물' 지정이 필수적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진 상징물 지정은 각 지역의 가치관과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졸속으로 이뤄졌고, 이는 결국 전국 246개의 지자체가 서로 비슷한 시조·시화·시목과 슬로건, 디자인 정책을 도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해시는 최근 시를 상징하는 시조(市鳥)인 '까치'가 환경부 지정 유해 조수라는 이유로 시조 변경을 위한 대 시민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까치가 단감을 비롯한 유실수를 쪼아 먹어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좀 복잡하다. 30년 가까이 김해를 상징하는 새로 선정돼 있던 까치를 갑자기 바꾸려는 것은 지난해 취임한 김맹곤 시장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전임 시장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조(市鳥)변경을 위한 시민 설문도 상징물 선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바탕이 됐다기보다는 단순히 민원을 해결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어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 김해시청 입구에 설치된 '기마인물상'(왼쪽) 시화(市花 )로 지정된 '매화'(가운데) 시목(市木)인 '은행나무'(오른쪽)

상징물에 대한 김해시 공무원들의 단편적인 사고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야의 거리'다. 이곳에는 가야왕국을 멸망에 이르게 했던 주역인 신라군이 사용하던 '신라의 칼'을 복원해 놓아 뜻있는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인제대학교 이영식(역사고고학과) 교수는 "가야의 거리에 조성돼 있는 '신라의 칼'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역사를 살리겠다는 곳에 적의 칼이 꽂혀 있는 격"이라며 "신라와 가야의 병합을 기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가야의 후손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징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잘못된 고증을 거친 조형물들을 더 이상 방치해 둘 것이 아니라, 서둘러 교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해에서 4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김형주(46·내동) 씨는 "김해 상징물은 대부분 1982년에 지정된 것으로 지역의 특성이나 역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은 하나도 없다"며 "특산물인 단감이나 장군차를 두고 왜 은행나무 등을 고집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분간 상징물을 통한 김해시의 경쟁력 도모는 어려울 것 같다. 김해시가 시 재정 부족을 이유로 상징물 교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해시청 이병철 기획계장은 "상징물은 시를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역할을 할 뿐이지 실질적인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당분간 다른 상징물 교체 계획은 없다"고 일축했다. 가야의 거리를 조성한 김해시청 문화재시설과 관계자 역시 "일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징물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단순 조형물로 생각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김해시의 입장과는 달리 이들 상징물은 역사적인 중요성은 물론, 막대한 시민들의 혈세가 투입된다는 것이 문제다. 김해시내에 설치된 기마인물상의 경우 시청과 전하교 부근, 가락로 입구, 정산CC 등 모두 4곳이다.

이 중 시청 입구에 설치된 것은 청동상으로 설치비용만 2억2천300만원이 투입됐다. 원래 시청 외곽 주자창 입구에 3천만 원을 들여 FRP로 제작됐던 것을 국도 14호선 도로확장공사를 계기로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거액의 예산을 들여 청동상으로 바꿨다. 나머지 3곳에 있는 기마인물상도 최저 1천만 원(가락로 입구)부터 최고 7천만 원(정산CC)까지 설치 비용이 들었다.
 
김해시는 또 지난 2006년 서김해 나들목 입구에 '21세기를 향한 비상'이라는 이름의 조형물을 설치했다. 봉황이 비상하는 것을 형상화했다는 이 조형물은 무려 1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상징물 조성사업을 엉터리로 할 경우 심각한 역사 왜곡과 문화의 훼손은 물론, 시민들의 혈세까지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시민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설치하는 조성물이라면 전문가의 정확한 고증을 통해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징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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