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가 1999년 가야문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해 놓은 '가야의 거리' 중심부에 역설적이게도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의 칼'이 조형물로 들어서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김해의 상징물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김해시청이 시조(市鳥)변경을 두고 설문조사를 시작한 지난 18일 <김해뉴스>는 김해 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김해의 '상징물'에 대한 질문을 했다. 김해는 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많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시조(市鳥) '까치'뿐 아니라 시목(市木)인 '은행나무'와 시화(市花)인 '매화'를 비롯해 도시 곳곳에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세워진 조형물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상징물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고개를 내저었다. "상징물이 왜 필요하냐"고 되묻는 시민들도 더러 있었다.
 
도시 상징물은 지난 1982년 정부가 지자체를 중심으로 일괄 지정한데 이어,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타 지역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면서 대외적으로는 차별화된 도시 이미지를 표현하고 내부적으로는 지역주민의 지역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상징물을 도입했다.
 
김해시도 지난 1995년 시·군 통합을 계기로 시조·시화·시목 등을 일괄 통일했고, 도시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1999년부터 디자인 조형물 설치를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가야의 거리(1999년), '기마인물상(2000년)', '21세기를 향한 비상(2006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김해시의 상징물은 시민의 공감대와 참여를 이끌어 내는 매개체라는 관점에서 살피면 대부분 엉터리다. 시의 대표 동식물은 토종생물을 보존하고 지역의 특색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으며, '랜드 마크'와 '디자인 조형물' 역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때 그때의 유행과 필요에 따라 진행한 주먹구구식 사업으로 본래 목적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의 시조(市鳥)논란도 같은 맥락에 있다. '까치'는 농사에 치명적인 유해 조수로 진영 장유 등 농촌지역 주민의 골칫거리였다. 이 때문에 해당지역 주민들은 "시조(市鳥) 선정 당시 도농복합인 김해의 생활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오랫동안 반발해 왔다.
 
시목(市木)과 시화(市花)의 경우도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다. 시목(市木)인 은행나무는 전국 72개 지자체에서, 시화(市花)인 매화는 10개 지자체에서 각각 중복사용하고 있어 차별화된 도시이미지 형성이란 본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야역사를 되살린다는 목적으로 조성된 '가야의 거리'도 명분과 달리 역사적 고증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탓에 지난 2007년 크게 망신을 당한 바 있다. 가야의 거리의 대표적인 조형물인 '가야의 칼'이 가야를 침략한 신라의 유물로 판명된 것이다. 서김해 나들목의 진입로에 설치된 '21세기를 향한 비상'도 비슷한 경우다. 향토 사학자들은 "작품의 모티브로 밝혀진 '봉황'은 사실 김해 지역의 역사와는 크게 상관없다"며 "조형물이 대체 김해의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도시 상징물을 설치하는 데는 막대한 시 예산이 투입된다. 주민들의 혈세를 끌어와 설치되는 도시 상징물들이 도시와 전혀 관계가 없거나 정확한 역사적 고증 없이 막무가내로 들어설 경우 예산낭비만 초래하게 된다.
 
지방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도시경쟁력이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다. 시의 정체성을 대표할 제대로 된 상징물 하나도 가지지 못한 김해시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우려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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