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정구선 지음/팬덤북스/212p/1만 3천 원)


개국 조선의 재상 홍영통은 태조의 탄신일 잔치에서 만취하여 집에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정인지는 술에 취해 세조를 '너'라고 불렀다. 사헌부 관리 이예는 임금이 앉는 평상에 올라가 술주정을 했다. 세종 때의 이조판서 홍여방, 효종 때의 병조판서 박서는 과음 끝에 급사했다. 내시 최습은 술에 취해 승정원에 전할 임금의 교지를 잃어버려 의금부에 하옥됐다. 내시 박인손은 대궐 밖으로 임금의 심부름을 갔다가 술에 취해 곧바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는 곤장 60대를 맞았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고위 관료들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술을 마시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런 풍조를 술을 숭상한다는 의미로 '숭음(崇飮)'이라고까지 일컬었다. 건국 직후부터 나타난 숭음 풍조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신분과 지역을 막론하고 더욱 확산됐다. 조선 후기에는 한양 도성 안에 크고 작은 술집이 가득했다. 이를 개탄하는 목소리 역시 높았다. "술의 해독은 크다. 어찌 곡식을 썩히고 재물을 허비하는 일뿐이겠는가. 술은 안으로 마음과 의지를 손상시키고, 겉으로는 위의(威儀·예법에 맞는 몸가짐)를 잃게 한다. 혹은 술 때문에 부모의 봉양을 저버리고, 혹은 남녀의 분별을 문란하게 한다. 해독이 크면 나라를 잃고 집을 패망하게 만들며, 해독이 적으면 성품을 파괴하고 생명을 잃게 한다." 세종대왕이 술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담아 발표한 '계주교서'의 한 대목이다. 일종의 금주령인 셈이다. 세종뿐만 아니라 조선의 역대 왕들이 수차례 금주령을 내렸다. 그 간곡한 만류가 오늘날 읽어도 공감이 간다.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한동원 지음/웅진지식하우스/296p/1만 4천 원)

점집에다, 문화, 그리고 답사? 이런 책도 있구나 싶어 흥미롭다.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지구 건너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21세기에 살지만, 매년 정초에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들이 많은 걸 생각해보면 이런 책도 나올 만하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답답한 마음에 '점이라도 치러 가볼까?' '이거 굿이라도 한 판 해야 하나'하는 말도 한다. 이사철이면 이왕이면 '손 없는 날'에 이삿짐을 옮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한동원 씨가 신점, 사주, 관상, 타로 등 온갖 형태의 점집들을 직접 발로 찾아다녔다. 관상가에게 성형수술자를 데려가기도 하고, 성명점집에서는 기혼을 미혼으로 속여 점을 보기도 한다. 다양한 변칙 플레이를 펼치며 점집을 찾아다닌 과정에서 정확한 점괘에 놀라기도 하고, 사기에 가까운 행태에 혀를 차기도 한다. 어느 점집이 잘 맞추나 자칫 흥미 본위로 빠지기 쉬운 이 책의 균형과 깊이를 잡아주는 것은 저자의 유쾌한 문장과 세상을 보는 관점, 따뜻한 시선이다. 저자가 '세상 살다보면 때로 이성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느냐'며 힘든 사람의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다. 별책부록으로 '절대로 책임지지 않는 대한민국 점집 옐로 페이지'가 제공된다. 책 내용과는 상관이 없는, 말 그대로 점집 리스트이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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