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온몸으로 지나 온 역사를 그림으로 만난다."
 
민중미술 1세대 대표작가인 신학철 화백(71)의 전시회가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에서 13일부터 6월 29일까지 열린다.
 
김해문화의전당은 올해부터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핵심적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한국현대미술-화제의 작가'전을 진행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신학철 화백이다. 신 화백은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해 온 작가이다. 1980년대에 '한국근대사' 시리즈, 90년대에는 '한국현대사' 시리즈 등 40여 점을 연작으로 발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 미술의 조류 속에서 우리나라의 시대상과 그 안에 담긴 인간사를 치열하게 그려왔다.

▲ 신학철 화백의 '갑순이와 갑돌이' 왼쪽 부분. 정면에서 전체를 찍기가 쉽지 않을 만큼 큰 이 대형작품에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민중사가 담겨 있다. 사진제공=김해문화의전당
길이 20m 초대형 '갑순이와 갑돌이' 등
민중사 담은 작품 7년만에 관객에 선봬
윤슬미술관에서 오는 6월 29일까지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의 작품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에 압도될 것 같다. 이 작품은 신 화백이 1998년에 시작해 4년 동안 제작한 것으로 좌우 길이만 20m에 달하는 대형작품이다. 이 작품이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는 한 쪽 벽면이 부족해 ㄷ자로 전시됐다. 윤슬미술관에서는 정상적으로 전시가 이루어진다.
 
이 작품은 시골 출신 갑순이와 갑돌이의 상경기를 통해 민중사와 근현대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작품을 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있다. 한국 역사가 근대와 현대를 겪는 동안 민중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 독점자본과 군사독재에 저항한 뜨거운 몸짓, 정치적 사건들의 단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림으로 읽는 우리 역사라 부를만한 작품이다. 갑순이와 갑돌이는 그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이 땅의 '갑남을녀' 혹은 '장삼이사'를 의미한다.
 
'한국근대사-관동대지진(한국인 학살)'을 보면 뜨거운 분노와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이 작품은 1923년 9월 1일 일본의 간토·시즈오카·야마나시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무차별 학살된 참상을 담았다. 당시 일본은 자국민들의 동요와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무차별 살인을 자행했다. 신 화백은 1980년대 초 관동대지진의 흑백사진을 보고 말 못할 충격을 받았다. 작품은 2011년부터 그리기 시작해 2012년에 완성했다. 처음 사진을 보았을 때의 분노와 죽은 이들에 대한 추모가 30년 동안 응축된 이 작품은 검은색 유화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신 화백은 마치 쓰레기처럼 엉킨 채 쌓여있던 조선인들의 시체를 사진으로 보았을 때의 시각적 충격을 생생하게 몸에 지닌 채 이 작품을 그렸다. 작품에는 그가 대학교 시절 여의도에서 보았던 수많은 쓰레기더미, 이 쓰레기를 파먹고 있는 까마귀, 시체 등 자신이 실제로 보았던 현장을 연결시켰다고 한다.
 
▲ 신학철 화백의 '시골길'. 평생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켜온 농민들의 삶을 떠올려주는 작품이다.
'시골길'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애잔하게 물들인다. 흰 고무신을 신고, 곡괭이를 들고 뒷짐을 진 채 시골길에 서있는 아버지의 하반신 뒷모습이 그림의 절반을 차지한다. 저만치 자가용을 타고 오는 한 가족이 보인다. 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이 아닐까. 평생 농사일로 시달린 아버지의 팔과 손을 휘감은 굵은 힘줄은 관람객들만 볼 수 있다. 석양이 지는 시골길에 서서 멀리서 달려오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굳이 이 그림을 농민미술이라 이름 하지 않더라도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이 오롯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 이영준 팀장은 "신학철 화백은 7년 만에 전시회를 연다. 신 화백이 김해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하자 전국의 미술관에서 서울에서도 하기 힘든데 어떻게 김해에서 전시회를 여느냐는 문의가 쇄도했다"며 "여러 번 찾아뵙고 '삼고초려'해 성사시킨 전시회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아니니 꼭 관람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신학철 화백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오브제와 콜라주, 설치, 포토 몽타주,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어서 작품기법의 변천과정을 볼 수 있다. 또한 국공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외에도, 쉽게 접하기 힘든 작가 소장의 에스키스 작품 및 개인 소장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전시 일시/13일~6월 29일 오전 10시~오후 6시 △전시장/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전시실 △입장료/무료 △관람 대상/모든 시민 △전시 문의/055-320-1263.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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