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비가 양철 지붕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싶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나도 그리울 때, 그럴 때마다 찾아가는 곳이 있어요."
 
사람마다 숨겨둔 자신만의 보물 상자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금은보화가 든 보물 상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감성에 젖고 싶을 때, 옛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볼 수 있는 보물 상자를 말하는 것이다.

▲ 김동겸 김해건설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이 올던하우스에서 크림스파게티를 들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장유 가는 길 주촌 농소리 좁은 골목
낯선 나라 시골집 같은 회색빛 공간
DIY 공방 활용해 음식과 가구 등 판매
단호박카레·직접 볶은 커피 맛도 일품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김동겸(47) 총동문회장은 자신이 아끼는 곳이라며 올던하우스(Olden house)로 안내했다. 올던하우스는 내외동에서 장유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만큼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곳에 숨어 있다. 주촌면 농소리의 장유자동차운전학원을 지나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회색빛으로 낡은 나무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이곳에 식당이…'라는 의문을 품고 입구 쪽으로 발을 내딛는데, 동화에나 나올 법한 아담한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흔들의자와 생기 가득한 푸른 잎사귀 위로 햇빛이 반짝였다. 오래 돼 보이는 나무가구들은 마치 낯선 나라의 시골집을 방문한 느낌이 들게 했다.
 
▲ 올던하우스는 입구에 오래된 가구들이 놓여 있어서 식당에 운치를 더해준다.
"어서 오세요." 올던하우스의 주방을 담당하고 있는 박은영(47) 씨가 환한 미소로 반겼다. 그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주황색 조명 아래 의자에 앉으니, 의자 옆 작은 창으로 살짝 고개를 내민 나뭇가지가 우리를 반겨주는 듯했다. 김 회장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올던하우스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길을 가다 커피 한 잔이 생각나면 들러요. 이곳에 들어서면 현실의 시간은 바깥에 던져두고 여기에 머무는 시간에만 집중하게 되죠. 마당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며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도 해요.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우는 안식처 같은 공간이에요."
 
올던하우스는 강석환(43), 박모희(43) 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주방을 맡고 있는 박 씨는 박모희 씨의 언니다. 올던하우스는 원래 박 씨 자매의 본가였다. 8년 전부터 가구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DIY 가구공방을 운영했는데, 4년 전부터는 언니 박 씨가 주방을 맡아 커피와 차, 음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문 제작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팔기도 하고, 동시에 카페도 운영한다.
 
문인화가 목천 김상옥 후원회(김해뉴스 지난 7일자 10면 보도) 회장이기도 한 김 회장은 최근까지 '목천 김상옥 문인화 초대전'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목천 초대전은 지난달 12~20일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에서 열렸다. 김 회장은 "예술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일단 작품의 가격을 들으면 '비싸다'는 말부터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문화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공유하는 게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자주 접하고 감흥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목천 초대전을 통해 많은 김해 시민들이 목천의 작품을 사랑해줬다. 그런 면에서 목천 초대전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 크림스파게티
김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크림스파게티와 단호박카레가 나왔다. "여기 음식은 다 맛있어요." 김 회장이 음식을 권하며 웃었다. 우윳빛 뽀얀 크림스파게티의 탱글탱글한 면발을 포크로 돌돌 말아 한입 넣었다. 크림스파게티는 느끼해서 잘 찾지 않는 음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올던하우스의 크림스파게티소스는 양파, 마늘 등을 갈아 넣어서인지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호박카레는 어른 주먹만한 단호박에서 씨를 덜어내고 그 안을 카레로 채운 것이었다. "카레를 먹은 뒤 단호박을 먹는 것도 좋지만, 카레와 단호박을 함께 먹는 것도 맛있다"고 김 회장이 조언했다. 그의 말대로 카레와 단호박을 함께 먹었다. 카레 특유의 향과 부드럽고 달콤한 호박 맛이 혀를 감쌌다. 음식 맛에 빠져 말없이 단호박 카레와 크림스파게티만 먹었다. 식사를 시작한 지 20분이 채 안 돼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식사가 끝나자 박 씨가 어떤 커피를 마실지를 물었다. 김 회장은 "맛있는 커피로 내려달라"고 답했다. 박 씨는 "오늘은 탄자니아 커피가 좋겠다"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올던하우스에서는 커피를 모두 옹기로 로스팅(볶기)한다. 박 씨는 "모든 음식은 재료부터 조리까지 손으로 직접 만든다. 기계를 이용해서 하는 건 없다. 여기에 있는 가구, 인테리어 소품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수작업을 통해 정성을 들인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요즘 매화장학회재단 건립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재단을 세워 이공계를 활성화하고 김해지역의 공학도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데 힘쓸 생각이다.
 
"김해는 중소기업이 많은 도시인만큼 블루칼라 즉, 작업장에서 일하는 기능인 발굴이 더욱 더 필요해요. 기능인들이 고용주와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다 샐러리맨이나 사무직이 될 수는 없어요. 부모의 눈높이만 낮추면 됩니다. 매화장학회는 기술자가 아닌 기능인을 발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김 회장의 말을 끝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또 오세요"라며 배웅하는 박 씨의 경쾌한 인사 뒤로 쌉싸름한 커피 향이 바람을 타고 깃털처럼 코끝을 간지럽혔다.


▶올던하우스(Olden House)/본점=내덕동 481(금관대로 719번길 4). 010-2585-4452. 1호점=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석곡로 57-12. 055-243-6659. 2호점=삼계중앙로 73. 055-326-5788. 단호박카레는 방문 전 예약 필수. 크림스파게티 세트·단호박카레 세트 1만 2천 원, 고르곤졸라 피자 9천 원.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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