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일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화음악 '고독'이 흐르고 있다. 여성 옷을 입은 채 술을 마시는 남성들이 보인다. 야근을 마쳤지만 귀가하길 망설이던 맥베스가 이곳에 들어온다. 맥베스는 여성 옷을 걸치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낮에 입었던 남성 옷은 전쟁터의 군복과 같다. 입고 싶지 않지만 살기 위해서는 입어야 하는 옷이다.
 
맥베스는 외친다. "아름다운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아름답다."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문제작 <맥베스>의 중심을 꿰뚫는 문장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군상들은 성과 속, 선과 악, 슬픔과 기쁨, 분노와 체념, 사랑과 증오 같은 모순된 가치의 충돌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도요가족극장에서 열린 '길 잃어 헤매던 어느 저녁에 맥베스'의 한 장면.
백하룡 희곡작가 셰익스피어 재해석
지난 17일 초연 … 서울 공연 이달말부터
 
'이기는 자가 옳다'는 맥베스의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그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존속살인과 유아유기, 보험 살인까지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을 일삼는 맥베스. 나는 열심히 살았어, 변한 건 세상이야, 잘못은 너희들에게 있다고… 맥베스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하지만, 그러나 더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맥베스는 질서를 찾으려 하지만 자아의 격정은 계속된다. 무너진 질서는 맥베스가 파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재정립된다.
 
지난 17일 생림면 도요마을 도요가족극장에서 '길 잃어 헤매던 어느 저녁에 맥베스'가 공연됐다. 희곡작가 백하룡(40)의 첫 연출작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폭군으로 변했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는 내용으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백 작가는 도요문학레지던스 프로그램 대상 작가로 선정돼 도요창작스튜디오의 도요예술촌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연희단거리패의 이동준(33), 황유진(28·여) 등이 출연해 열연을 했다.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시대상을 열정적인 연기와 심리묘사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작품은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게릴라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백 작가는 "첫 연출작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담아냈다. 실험적 연극이라 오히려 편하다. 관객층은 정해져 있고 자본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서 마음껏 작업했다"며 "이 작품에는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데, 현실은 더 판타지적인 것 같다. 허구와 실재를 구분하기 어려운 현 세태를 더 잘 담아낼 수 있도록 남은 기간동안 준비를 잘 하겠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최윤영 기자 c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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