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김해시 서상동 김해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사람은 우금옥(42·중국) 씨였다. 분홍색 정장을 갖춰 입은 그는 환한 미소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게다가 유창한 한국어 실력은 중국인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원래 제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발해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통역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이 곳에서 '베테랑'으로도 통한다. 그는 2008년 12월 센터가 문을 열 때부터 함께 했다. 오래 일하다 보니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우 씨가 이 곳에서 일하게 된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아이가 6살 되던 무렵, 그는 장난감을 빌리기 위해 복지관을 찾았지만 동네가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대신 복지관에서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이주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참여했다. 강의 도중 그는 "출입국에서 자원봉사하고 싶은데요?"라고 말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게 인연이 돼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6개월 간 외국인들의 비자 체류자격 변경, 기간 연장 등 서류작성을 도왔다. 그러다 한 출입국 직원이 김해에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생긴다던데 지원해보라고 권유했다. "일하고 싶은 의지와 함께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상담하고 얘기하다 보면 다 내 일인 것 같고…."
 
우 씨가 이렇게 자기 일처럼 아파하는 데는 15년 전 그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5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에 왔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는 사장이 월급을 올려주지 않아 회사를 뛰쳐나간 적도 있다. 결국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회사로 돌아오긴 했다. "한국말도 잘 모르고,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중재해주는 센터도 없고, 정말 답답했죠.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 그가 한국에 다시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남편 오상근(50) 씨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놨다. 하지만 한 순간에 한국이 좋아진 건 아니다. 처음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공감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남편이 70년대 개그프로그램 보면서 혼자 웃으면 '도대체 왜 재밌나'하고 생각도 많이 하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추억은 공감할 수 없더라고요."
 
지금 우 씨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외국인들도 이런 비슷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 씨는 그들을 더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꿈이 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어디서든지 꼭 필요한 사람, 그리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더 노력하죠. 내가 하나라도 더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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