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놀이를 할 때, 인형의 옷을 직접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던 여자아이가 있다. 그 여자아이는 재봉틀로 가족의 옷을 직접 지어 입혔던 어머니가 쓰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 인형의 옷을 만들었고, 인형의 머리카락을 잘라보았고, 물감으로 염색도 해보았다. 어린 시절, 자신만의 감각으로 인형의 스타일을 만들었던 김문경(37). 그는 지금 가죽공예가가 돼 있다. 장유의 공방 '가죽공예 아트스쿨'이 그의 작업 공간이다.

▲ "가죽공예를 처음 배울 때 망치질을 하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서 좋았어요." 김문경 가죽공예가가 가죽 위에 바느질 할 자리를 잡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김문경의 공방은 장유 젤미부영11차 상가동 204호에 있다. 공방에는 가죽으로 만든 가방, 지갑, 키홀더, 작업도구, 염색하기 전의 가죽 생지 등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그와 수강생들이 사용하는 작업대 두 개도 놓여 있다.
 
김문경은 부산 하단에서 태어났다.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에 인형 옷을 만드는 게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그림 그리는 것보다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어쨌든 미술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어머니는 저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어 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도 미술보다는 공부를 권하셨구요. 딸 하나 있는 거 잘 키워보고 싶었던 어머니 마음이셨죠."
 
옷 만드는 걸 가장 좋아했던 소녀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뒤
문화센터에서 가죽 분야 권유받아 입문


어머니는 가족의 옷을 직접 지어 입히고, 십자수로 달마도를 놓았을 만큼 손재주가 좋았다. "어머니의 재주를 물려받았는지, 꼭 패션과를 가고 싶었어요. 대학만큼은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동부산대학 패션과로 입학하는 걸 겨우 허락받았습니다. 소원을 풀었던 거죠."
 
원하던 패션과에 입학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림공부를 안 한 탓에 의상 일러스트를 잘 못 그렸다. "그림 그리는 것보다 직접 만드는 걸 더 좋아했거든요."
 
졸업 후 그는 웨딩숍에 취직했는데, 옷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노라노 아카데미'에 다시 들어가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했다.
 
"그때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네 결심이 어느 정도인지 이제 알겠다. 쉽게 선택하고 쉽게 포기할까봐 그동안 허락하지 않았는데, 네 결심이 정 그렇다면 허락하마' 하시고는 노라노아카데미 1년치 수업을 직접 끊어주셨습니다."
 
그는 노라노에서 1년간 옷 만드는 일을 배운 뒤, 다른 디자인실에 취직했다. 그런데, 노라노에서 그를 다시 불렀다. 패턴분야의 실기시험을 치르고 나서 그는 노라노의 패션과 강사로 2년간 근무했다. 그러다 29세 때 선배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김해로 왔다. 딸과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뭘 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33세 때 그는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걸 찾아나섰다. 처음 석 달 정도는 제과제빵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배운 게 재봉틀 일인데, 아동복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장유의 풀잎문화센터를 찾아갔다. 센터의 송경희 원장과 상담을 하다가 '가죽공예를 한 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는 가죽공예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비염이 있어서 노라노에서 일할 때 고생을 좀 했어요. 천을 만지면 비염이 더 심해졌죠. 뭐라도 만들기는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은 커져갔는데, 비염이 있으니 천보다는 가죽이 더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는 가죽공예가 처음부터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가죽 생지를 염색하고, 무늬를 찍고, 무늬를 찍기 위해 망치질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해서 좋았어요."
 
만들기를 좋아하는 그는 가죽공예뿐만 아니라 냅킨공예, 패브릭공예, 원석공예, 팬시우드 등도 배웠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배웠는데, 그중에서 가죽공예가 제일 좋았습니다. 그래서 '올인' 했지요. 서울을 오가며 배우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 서울에 머물면서 배울 수는 없었다. 집에서 준비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준비해 서울의 공방으로 갔고, 공방에서는 만드는 기법을 배운 뒤 곧장 김해로 돌아오곤 했다. 그는 부산, 창원 등의 공방들도 찾아다녔다.
 
"제가 가족공예가가 되는 데 일등공신은 남편입니다. 수강비도 대주고, 아이들도 돌봐주고,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표현을 다 못하죠. 남편이 자영업을 하고 있어서 조금은 자유롭다 해도,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오진 못했을 거예요." 그가 휴앤락, 진영풀잎문화센터, 학교 등에 가죽공예강사로 출강 다닐 때 힘들까봐 공방을 열자고 제의한 것도 남편이었다. 그는 그런 남편 홍경선(40) 씨의 도움으로 2012년 10월 현재의 자리에 공방을 열었다. "공방이 생기고 나니, 집중도 잘 되고, 실력도 더 느는 것 같고 너무 좋아요."
 
웬만한 공예분야 모두 배웠어도
적성에 맞는 가죽 만난 후로 '올인'
김해·경남 공예품대전에서 실력 두각


▲ 김문경의 공방에 들어서면 가죽으로 만든 가방과 지갑 등 예쁜 물건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2012년부터 그는 김해와 경남의 공예품대전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3년 연속 출품했더니, '해마다 작품이 좋아진다'며 제 작품을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생기더군요. 은근히 부담도 되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올해 김해공예품대전 전시회 때는 특별한 전화 한 통을 받기도 했다. "전시회가 열린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에서 제 작품을 본 한 분이 '다리어리 커버를 꼭 사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어요. 그 분은 며칠 뒤, '지금 좀 바쁜데 곧 작품을 사러가겠다'며 확인전화를 해줬고, 얼마 전에 구입을 해가셨죠. 전시장에서 사고 싶다는 말을 하는 분은 더러 있지만 실제로 사는 경우는 드물어요. 이번 같은 일은 처음입니다."
 
그는 가죽공예의 가장 큰 장점을 두고 '실용성'이라고 했다. 손으로 만든 것이니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란 희소성과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다른 공예품들이 따라올 수 없는 장점들이죠. 선물하기에도 좋구요."
 
특이한 가방만 보면 '해체 본능' 꿈틀
"왜 이렇게 힘든 걸 하냐구요?
따라올 수 없는 가죽의 매력 때문이죠"


최근에 남편은 아내의 지도(?)를 받아 지폐전용 작은 지갑인 머니클럽을 하나 만들었다. "남편이 그걸 만들고 나더니, '이렇게 힘든 걸 왜 하냐?'고 하더군요. 저 역시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그만두고 싶기도 하지만 특이한 가방을 보면 만들어보고 싶어져요. 그만둘 수가 없는 거지요."
 
그는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사람들이 들고 있는 가방과 지갑을 유심히 본다. "제가 의상 패턴을 전공했기 때문에, 가방이나 지갑을 보면 가죽을 어떻게 재단했는지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환하게 떠올라요. 사람들이 가방을 열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걸 뚫어져라 바라보곤 하는데,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상대방이 화들짝 놀라죠. 아마 제가 소매치기인줄 알았을 거예요." 그가 웃으면서 난처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머릿속에 패턴이 떠오르면 빨리 공방에 가서 만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죠. 가방을 잔뜩 쌓아놓고 싼값에 팔고 있는 걸 보면 '저걸 사서 뜯어? 말어?'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나를 뜯어보면 더 많은 걸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오전 11시에 공방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작업을 한다. 집에 가면 잠들기 전까지 인터넷으로 가죽공예와 관련된 블로그와 홈페이지 등을 샅샅이 훑어본다. 그런 뒤에라야 마음놓고 잠들 수 있다. "가죽은 물론이고 장식과 부자재, 도구에 이르기까지 관련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는 자신의 든든한 우군이 가족이라고 자랑했다. 남편은 "나, 셔터맨 해도 되냐?"며 농담 섞인 응원을 한다고 한다. 딸아이는 유치원에서 친구들을 앞에 두고 이런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집 근처에는 엄마 공방이 있다. 거기서 엄마는 가방도 잘 만들고, 지갑도 잘 만든다."
 
딸 세민(8)이와 아들 승우(7)는 엄마 옆에서 가죽에 망치질도 제법 한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가죽에 바느질 할 자리를 잡느라 망치질을 시작했다. "제 호가 '여란'이에요. 서예가인 이모가 지어주셨습니다. 늘 향기가 피어나라고요. 향기가 느껴지는 작업을 계속해야죠."

≫ 김문경
가죽공예가. '가죽공예 아트스쿨' 운영. 2012년/김해시공예품대전 장려, 경남공예품대전 입선. 2013년/김해시공예품대전 특선, 경남공예품대전 은상, 대한민국공예품대전 입선. 2014년/김해시공예품대전 특선.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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