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사에서' '김해 초선대' '가을 섬진강' '감포 앞바다' '황강' '소록도에서' '거문도' '동해안 야행' '남해 바래길' '백두산 기행'…. 여행책자의 제목들이 아니다. 이동배(60) 시조시인의 시조 제목들이다. 그의 시조집 <흔적>(고요아침 펴냄)을 펼치면 한번쯤 들어보았거나 가보았던 장소의 이름들을 만나게 된다. 그 페이지를 열어 시조를 읽다 보면 그 곳의 정경이 오롯이 떠오른다. 경험한 것, 직접 가 본 곳에 대한 감상을 시조로 쓰는 이동배 시조시인을 만났다.

▲ 책으로 가득 채워진 서재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이동배 시인. 그는 김해 곳곳에 배어있는 이야기들을 시조로 쓸 계획을 품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이동배는 1954년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났다. 교직에 종사했던 부친의 근무지 진주에서 자랐다. 그는 55세 되던 해에 김해 대동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김해로 왔다. 함양교육지원청의 장학사로 5년 근무한 뒤 김해로 자원했다. 대동초, 영운초 교장을 거쳐 현재는 삼성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장유 율하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서부터 서가를 만났다. 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서가 위에는 이동배의 시를 써 넣은 도자기들이 장식돼 있었다. 그가 서재로 사용하는 작은 방도 한쪽 벽면은 모두 책이 차지하고 있었다. 창문 앞에 놓인 책상에 앉으니 반룡산이 마주 보였다. 산의 녹음이 반가워 창 앞으로 다가서니 김해기적의도서관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주변 환경이 참 좋지요. 거실에서는 굴암산도 보입니다." 서재에서는 반룡산, 거실에서는 굴암산이라니, 좌청룡 우백호가 따로 없다 싶었다. 시조시인이 살기에는 명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굴암산이 보이는 거실에 앉은 이동배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친이 전근을 가면 가족이 이사를 했기에, 초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다녔어요. 학교를 자주 옮기다보니 친구들과 제대로 사귈 시간이 없었지요. 그래서인지 책과 더 친했습니다. 학교 도서관을 주로 이용했는데, 아마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었을 겁니다." 학교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던 그는 <장발장>과 <삼국지>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고 추억했다.
 
중·고교 시절 문예부장 활동하며 '시작'
대학 때 개천예술제 즉흥시 부문 장원
진주문인협회에 '문학청년'으로 알려져
본격 시조 공부 하며 작품활동 몰입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문예부장으로 활동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를 썼어요. 교내백일장에서 시 부분 장원을 했는데 그 때 담임이었던 권정호 전 교육감님이 '글 쓰는 공부를 해보라'며 크게 칭찬을 해주셨죠. 그게 제가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 지난해 발간한 시조집 '흔적'.
진주고등학교 시절에는 진주고, 진주여고, 삼현여고의 문예반 학생들이 모인 '학생문학회' 활동을 했다. 시화전도 꾸리고 교지도 만드는 등 문예부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한 그는 졸업할 때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진주교대에 입학 한 뒤 개천예술제에 참가해 즉흥시 부문에서 장원을 받으면서 진주문인협회 회원들에게 문학청년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진주교대 시절부터 시조를 공부하면서 쓰기 시작했어요. 고맙게도 진주문협의 선배시인들이 저를 마치 시인처럼 대우해주셨지요. 이문형, 김춘량 등 시조시인들이 특히 제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고, 함께 시조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시조를 많이 읽고, 시조의 멋과 맛에 대해서 토론도 했구요." 그때 그는 시조의 매력에 흠뻑 젖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부임해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몰두했다. 국어시간에 학생들에게 동시와 시조 쓰기를 가르치면서 시조를 쓰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쓸 여유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문형 시조시인을 다시 만났다. 이문형은 "그동안 시조 안 쓰고 뭐했냐? 등단도 안 하고 여태 뭐했냐?"고 물어왔다. 후배 이동배가 얼마나 시조를 좋아했는지, 시적 감성과 표현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아는 선배 이문형은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진주문협의 선배시인은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의 문인들에게서도 '등단을 왜 안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 혼자 시조를 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집중해서 시조를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이문형 선배님의 추천으로 1996년 <현대시조>로 등단을 했지요. 나보다 늦게 시조를 썼던 후배들보다 늦게 등단한 거지요."

섬진강변 근처 교사·시조시인 주축
1985년 창간 '섬진시조'에 작품 수록
14집부터 27집까지 사무국장 활동
지난해 시조집 '흔적' 펴내

 
▲ 섬진시조문학회에서 발간하는 '섬진시조'의 창간호부터 최근호까지를 간직하고 있는 이동배의 시조 사랑은 깊고 웅숭하다.
등단이 늦긴 했지만, 이동배의 시조사랑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그가 <섬진시조> 책을 들고 나왔다. 1985년 창간호부터 최근에 나온 것까지 한 아름이다. 하동을 비롯해 섬진강변 근처의 교사와 시조시인들이 주축이 돼 '섬진시조문학회'가 창립된 것은 1983년이고, 창간호가 나온 것은 1985년이다.
 
그가 "이 책이 <섬진시조>의 창간호"라며 건네주는 책자는 얇았다. 표지에서는 어느새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섬진시조문학회는 매년 한 권씩 연간시조집을 발간하고 있다. 이동배는 1998년 14집부터 2013년 27집까지 사무국장을 맡아 시조집 발간을 주도했다. 지금은 섬진시조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경남의 여러 지역에서 근무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문인협회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그의 명함에는 여러 지역 문인협회의 직함이 함께 한다.
 
그는 시조를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꾼다. "현대시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것과 본 것을 쓰고 있습니다. 제 작품 중에 '월광사'가 있어요. 경남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에 있는 월광사에 전해오는 대가야 전설을 소재로 쓴 시조입니다. 합천 출신인 친구가 이 시조를 읽고 난 뒤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네가 쓴 시조 몇 번 읽어봤다. 그거 재미있더라. 읽어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제 작품이 재미있고,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는 그 말이 제겐 최고의 찬사입니다."
 
이쯤에서 그가 김해에 관해 쓴 시조 한 편을 읽어보자. 지난해 5월에 펴낸 시조집 <흔적>에 수록된 '김해 초선대' 전문이다. "가야금 뜯던 선인/ 바다를 일깨우며/ 초선대 극락정토/ 마애불로 새겨놓고/ 칠점산 사라진 흔적/ 금관가야 정원일세// 바다를 가르는/ 거등왕의 전설과/ 김해의 길목에서/ 덩그러한 바위 하나/ 우뚝 선 정자에 올라/ 웅성거리는 오늘이 된다." 아득한 가락국 시대의 초선대 이야기에서 오늘날의 초선대 모습까지를 간결하고도 단아하게 그려낸 시조이다.
 
'은하사에서'라는 시조도 수록됐다. "기왓장 사이사이 기원들이 머뭇대고/바람들이 서성대다 이끼 되어 누워 있는"으로 시작하는 시조를 읽어보면 은하사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동배는 "은하사를 방문했을 때, 풍경이 아름다워 수채화를 그리러 다시 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 그대로를 시로 썼다"고 말했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와 느낌을 글로 표현해내다 보면 마음이 순해집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교감, 소통, 배려, 사랑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의 문학은 마음을 본성 그대로 다스리는 데에 닿아 있었다.
 
현직 교장인 그는 학생들의 문예교육에도 많은 정성을 쏟는다. "문예반이 없는 초등학교가 많아요. 상상력,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들을 하면서 정작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기에 가장 적합한 문예반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학습위주로만 치중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과 후 문예교실이라도 운영되길 바랍니다." 교육자이자 시조시인인 그는 방과 후 문예반활동을 적극 지원한다. 영운초 교장으로 재직할 때는 김해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찾아가는 백일장'을 열기도 했다.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또 부모님과 지역문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문예교실을 계속 운영할 생각입니다."
 
그는 김해에 대해 작품을 쓸 계획도 가지고 있다. "김해를 들여다보면 '여기가 바로 문학동네'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로왕과 허왕후 외에도 이야기 소재가 김해 곳곳에 담겨 있어요. 그 이야기들을 문학적으로 잘 승화시켜내면 김해는 더 아름다워지고, 더 풍성해질 겁니다." 

≫ 이동배
김해삼성초등학교 교장. 1996년 <현대시조> 신인상으로 등단. 김해문인협회 감사, 한국문협·경남문협 이사, 합천문협 감사, 경남·진주 시조시인협회 부회장, 섬진시조문학회장, 현대시조동인, 경남아동문학회 회원, 한국불교문학회 회원. 시조집 <흔적>, 공저 사화집 <합천호 맑은 물에 얼굴 씻는 달을 보게> 발간.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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