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는 곧 그 사람과 같다, 사람의 마음은 글씨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한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서양에서는 글씨를 쓸 때 동물의 뼈나 쇠 같은 단단한 도구를 갈아 사용했지만, 동양에서는 부드러운 털을 사용했다. 붓을 먹물에 적셔 글씨를 쓰는 것이다. 붓으로 글씨를 써보면 알겠지만, 좀체 마음먹은 대로 붓을 놀리기 힘들다. 애초에 마음을 가지런하고 단정하게 잘 다스려야 글씨를 잘 쓸 수 있다. 그래서 동양사회는 글씨를 쓰는 데에 많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 우리나라는 서예(書藝)라 하면서 글씨의 중요성을 가르쳐왔다. 언제부턴가 '캘리그래피(calligraphy)'라는 단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좁게는 서예를 가리키고, 넓게는 인쇄물에 찍힌 활자 외에 손으로 쓴 글씨 일체를 말한다. 회화적 요소와 디자인적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다. 김해의 캘리그래퍼 한승찬(37) 씨를 소개한다.

한승찬의 작업실은 경운초등학교 앞, 내동 1106-4 건물의 2층에 있다. 그는 '아름다운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수강생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학원에 들어서면 수강생들이 그림을 그리는 책상이 있고, 학원 내부에는 그들이 그리고 만든 작품들이 가득하다. 학원 안쪽에 한승찬이 글씨를 쓰는 공간이 있다. 벽면 서가에 그가 평소 즐겨보는 책들이 꽂혀 있다. 그가 글씨를 쓸 때 아이디어를 주는 책들이다. 붓, 낙관도 가지런하게 잘 정리돼 있다. 책상은 화선지가 밀리지 않도록 부드러운 천으로 덮여있다. 커다란 벼루에는 언제라도 붓을 찍을 수 있도록 먹물이 담겨 있다.
 

▲ 한승찬 씨가 작업실 바닥에 앉아 써두었던 글을 살펴보며 평소에 챙겨보는 자료들을 찾고 있다.

글씨 쓰기보다 기계 조립 좋아하다
고교 서예부 활동 ·대학도 서예과
성보박물관 등에서 탁본 작업도
 3년 전 김해로 와 캘리그래피 보급
"서예의 품위·멋·아름다움이 바탕"


한승찬은 1977년 밀양에서 태어났다. 밀양시청 뒤 지동마을에서 살면서 밀성초, 밀성중, 밀성고를 다녔다. 어머니는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다.
 
"서예를 아주 싫어했어요." 그의 첫마디이다. 서예를 싫어했는데 캘리그래퍼가 되다니, 의외였다. "미술 분야에서 서예가 제일 싫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으니까요. 연필로 공책에 글자 쓰는 것도 안했는데, 붓을 들고 글씨를? 방학숙제로 서예가 나오면 네살 위의 형에게 부탁해 해결했죠."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전자제품 해체하는 일'이었다. 손에 잡히는 물건은 죄다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고 다시 닫았다. 완벽하게 재조립하고 싶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늘 부품 몇 개가 모자란 게 탈이었을 뿐이다. "제가 외갓집에 가면 외할머니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카세트테이프, 라디오 같은 걸 다락에 숨기는 거였죠. '저 녀석이 왔다 가면 남아나는 게 없다'고 하셨대요."
 
그가 서예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형이 졸업한 밀성고에 그가 입학했다. 형은 "서예부에 들어가라. 서예를 하면 뭔가 하나라도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서예부는 선후배간 질서가 엄격했는데, 선도부보다 더 악명이 높았어요. 그래도 형이 좋다고 하니까 가입하고 싶더라구요. 서예부 활동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어요." 그는 고등학교 서예부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다.
 
▲ 작업실 한쪽 기둥에 붙어있는 글귀 자수자득(自修自得·스스로 익혀 깨우치게 한다는 의미). 한승찬이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둔 글귀를 캘리그래피로 표현했다.
점심시간이면 서예부는 모두 모여서 글씨 연습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쉬는 시간마다 자신의 벼루에 먹을 갈아두어야 했다. 선배들이 나타났을 때, 먹을 충분히 갈아두지 않은 후배들은 매를 맞았다. "공부할 준비와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였죠." 그는 매를 맞지 않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부리나케 달려가 먹을 충분히 갈아뒀다. 그러나 선배들은 먹을 똑바로 갈았는지, 아무렇게나 잡고 비뚤비뚤 갈았는지를 살폈다. "먹을 갈 때 바른 몸가짐을 해야 한다는 거였죠." 당시 그는 똑바로 앉아 정확한 자세로 먹을 갈았다. 선배들은 마지막에는 자를 먹에 갖다 대더란다. 그렇게 혼나고 맞고 하면서도 서예부가 하고 싶더냐고 물었다. "그게 서예부만의 문화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려니 했죠. 그리고 하다보니까 서예가 재미있더라구요. 남들이 안하고 피하는 서예부를 끝까지 하면서 주목받는 것도 은근히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학생 서예대회가 많았는데, 대회 나가는 것도 좋았구요."
 
서예대회를 나가자면 오전 두 시간만 수업하고 10시에는 학교를 출발했다. "수업 일찍 마치고 학교 밖으로 나간다는 게 좋아서 선배들 벼루 두세 개를 넣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계명대학교에 서예과가 있는 걸 알게 돼 진학했다. "원광대와 계명대 두 학교만 서예과가 있었죠. 대학에 가보니, 서예가로 이미 알려진 작가들도 입학을 해 있더군요. 대학졸업장이 뭔지…. 대선배이기도 한 분들이 학우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글씨를 썼다.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씨를 보면 더 잘 쓰고 싶었다. '붓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저 운필법은 어떻게 익히나' 하는 생각이 마음 가득 들어찼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청년작가전을 제일로 쳐주는데, 선배들 중에서 전시회에 참가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 선배는 으스대고 다니고, 저는 그게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죠. 이기고 싶었어요."
 
서예에서 이긴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물었다. "내 글씨의 힘이 약한 거니까요. 글씨의 힘, 기운, 작품 구성능력에서 진다는 것이니까요." 그의 답이었다. " 내 글씨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포장도 했어요." 종이의 색깔도 바꿔보고, 문양도 넣어보고 했단다.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 그 순수한 글씨만으로는, 붓 한 자루로만은 잘 쓰는 선배들의 글씨를 따라갈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들을 이기고 싶어 온갖 애를 다 썼죠. 그 노력이 캘리그래퍼가 된 지금의 밑거름이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학년 때쯤 비로소 글씨에 자신감이 생겼다. "붓 한 자루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글씨를 모두 똑같이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서예학원 다니면서 겨루기 한판 씩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 선배들에게 찍히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글씨 대충 배우고, 서예학원 차리고, 돈 벌고 하는 분위기가 싫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서예계는 망하겠다 싶더군요. '강호의 고수는 혼자 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서예와 관련된 일은 아니나, 떠났다고도 할 수 없는 일을 수년간 했다. 탁본을 한 것이다. 학창시절의 인연으로 경북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경북지역의 금석문을 탁본했다.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원으로 서울의 바위글씨를 탁본 조사했고, 강북-강남지역의 문화유적분포지 조사연구도 수행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바위와 비석에 새겨진 채 수 백년 세월동안 비바람을 맞아온 선인들의 숨결을 느꼈다.(사실 이 탁본과정과 문화유적을 찾아다니던 시기의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지면 관계상 다 풀어놓을 수가 없어 아쉽다. 이 지면은 캘리그래퍼인 한승찬을 소개하는 것이니까.)
 
그가 김해로 온 것은 2011년이다. "캘리그래피라는 개념은 1990년대부터 있었지만, 2000년대 후반에야 조금씩 대중화되기 시작했지요. 이제 캘리그래피는 현대서예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됐습니다. 미술학원을 열면서 이 곳에서 캘리그래피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부산과 창원 등 인근도시에 캘리그래피 강의도 나갔죠. 2013년 겨울부터 김해문화의전당에서도 강의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캘리그래피의 매력은 전통서예의 품위와 멋에 문자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문장을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나의 좌우명을 써놓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좋은 문장을 편하고 아름답게 써두고 보는 것, 그게 캘리그래피입니다. 예쁜 손글씨 배우듯 일정 과정 안에 배울 수 있는 글씨가 아닙니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인문학적 사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그가 화선지를 펴고 먹물에 붓을 찍으면서 말했다.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글씨를 쓰고 싶습니다."

≫ 한승찬
김해미협 회원, 밀양청년작가 회원. 계명대학교 예술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박물관·미술관 3급 정학예사.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원, 직지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사 등 역임. 현재 아름다운미술학원 운영, 김해문화의전당 캘리그래피 강의 중. 개인전/대구 목연갤러리(2008), 밀양 갤러리카페 홀릭(2011, 2012, 2014), 김해도서관 갤러리 가야(2014). 국내 서화공모전 다수 입상, 중국 서안 비림박물관 국제공모전 입상(2013) 등.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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