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천동주민센터 최정규 동장이 주민센터 2층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활천동은 조화로운 도시입니다. 김해에서 가장 먼저 지정된 동(洞)으로, 주거시설과 교육시설, 산업시설이 고루 배치돼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삼어지구' 개발이 완료되면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는 완벽한 '자족도시'로 거듭날 것입니다." 활천동 주민센터 최정규 동장의 활천동 자랑이 보통이 아니다.
 
활천동의 역사는 김해시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김해시가 시로 승격하면서 가장 먼저 동으로 전환된 곳이 활천동이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오늘날 활천동은 김해시를 고스란히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도심지역과 농촌지역이 공존하는 도농복합적인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고, 소규모 기업도 300여 개가 밀집해 있다. 교육환경도 우수한 편이다. 고교 평준화 전까지 김해 제일의 명문고로 손꼽히던 김해고등학교와 김해를 대표하는 대학인 인제대학교가 모두 활천동에 소재를 두고 있다.
 
최정규 동장의 이력은 남다르다. 최 동장은 말 그대로 김해 토박이다. 나고 자란 것은 물론 고등학교도 김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후론 활천동에서만 각각 다른 직무로 세 번을 근무했다. 그는 역시 활천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활천동은 전국에서 채소의 고등재배가 가장 먼저 이뤄진 곳입니다. 1958년 농부 박해수 씨가 비닐하우스에 토마토를 기르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 덕분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졌지요. 60년대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최 동장은 활천동의 오랜 역사가 활천동의 정체성인 동시에 경쟁력이라고 주장한다. 과거나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이 지역적 유대감을 토대로 동(洞)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기 때문이다. 활천동이 제6회 김해시의회에 시의원을 둘이나 배출한 것도, 활천동주민자생단체가 김해지역에선 유일하게 동 단위 송년회를 개최할 만큼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 동장은 "최근 활천동에서 이런 역사의식이 사라져 간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역사를 기억하는 세대 중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동(洞)만의 정체성도 많이 흐려진 상태입니다. 현재 김해지역 대부분 사람들이 활천동을 지내동 같은 동부지역으로 인식하는 것도 이 탓입니다."
 
최 동장은 이를 타파할 방안으로 동(洞)의 역사서 격인 '동지(洞紙)'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아직 김해시에 의사를 타진한 단계는 아닙니다. 하지만 동 내부적으론 동지 발간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상태입니다. 활천동의 역사나 역사적인 사건들, 동을 빛낸 인물들이 주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책이 완성되면 활천동에 새로 전입한 사람이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계획입니다."
 
활천동의 인구는 매달 50여 명씩 늘어나는 추세다. 또 그만큼 활천동 토박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횟수도 늘고 있다. 최동장은 "활천이란 이름은 시위가 팽팽히 당겨진 활 시위의 모습을 닮은 신어천을 품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며 "이런 역사를 기억하는 주민이 많아져야 활천동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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