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공예가이자 옻칠화가 천병록과 '대성공방'
옻나무에서 채취하는 유회백색의 유액상 수지를 생칠이라 한다.채취 직후의 생칠은 공기를 만나면 흑색으로 변한다.  옻칠은 한국과 중국·일본에서 예로부터 금속이나 목공 도장용으로 가장 소중히 여겨왔던 도료이다.  최근에는 생산량이 적고 비싸기 때문에 주로 미술공예품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페인트나 에나멜 등에 비해 깊이 있고 무게 있는 색감과 칠감이 나타나 예술품의 품위를 더해준다.
천병록(54) 씨는 옻칠에 광물성 안료를 섞어 그림을 그린다. 옻칠공예는 낯익지만, 옻칠화는 아직은 낯선 분야이다.

▲ 대성공방 현관 입구 낮은 진열대에 놓인 옻칠화는 아프리카 민화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이미지이다.

천병록의 작업실 '대성공방'은 대성동 김해여중 맞은편, 가락로 129번길 16-5에 있다. 현관을 들어서자 아프리카 민화처럼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옻칠에 광물성 안료를 섞어서 그린 그림이다. 한쪽에는 나전칠기를 한 대형 접시작품이 있고, 옻칠에 금분으로 마감한 차사발도 있다.

▲ "옻칠 작업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옻칠공예가 천병록 씨가 자신의 작업실인 대성공방에서 옻칠공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병찬 기자 kbc@

"옻칠은 느림의 미학입니다. 연인을 만날 때처럼 나를 낮추고, 꾸미고, 예의를 갖추어서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천병록이 가장 먼저 한 말이다. 옻칠로 하는 모든 작업에 대해 그가 가슴에 품고 있는 경외심이 느껴졌다. 대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옻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독자들이 옻칠작업보다 더 관심을 가질 법한 그의 인생유전은 그 사이에 조금씩 흘러나왔다.

천병록은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옻칠작업을 견인하는 끈기와 고집을 그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운동회 때 봉곡리 대표 달리기 선수로 나섰다. 다른 마을은 대부분 6학년이 대표였고, 간혹 5학년이 있었다. 달리기가 시작되었고, 얼마 안 돼 5학년들부터 포기자가 나왔다. 학교 달리기 대표선수였던 6학년이 저만큼 앞서 달렸는데, 천병록은 끝까지 따라붙었다. 어린아이가 달리기를 하다 쓰러질까봐 선생님이 "4학년 천병록 그만 뛰고 나오라"고 방송을 했는데도 아랑곳없이 달린 그는 결국 어른들한테 끌려나왔다.

6학년 때는 단 한 번도 숙제를 해 간 적이 없었다. "같은 걸 몇 번씩 쓰라, 풀어 와라 하는 식의 숙제를 할 필요가 없어 보여 안 해갔다"고 그는 말했다. "담임선생님께 다양한 형태의 벌을 받았지요. 나중에는 선생님과 저와의 이상한 기 싸움 형태가 됐는데, 결국 제가 이겼죠. 선생님도 저를 귀여워했으니까요. 얼마 전 40년 만에 동창회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첫눈에 저를 딱 알아보시더군요."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옻칠작업은 인내심이 요구되는 것인데, 마음먹은 것을 끝까지 해내는 고집(?) 같은 게 어릴 때도 있었다며 웃었다. 숙제를 안 해 갔다는 대목에서 문제아가 아닐까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그는 부모의 뜻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고, 결석 한 번 안 한 성실한 학생이었다.


▲ 자연의 이치, 우주의 지혜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천병록의 옻칠화.
옻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
그 속의 에너지를 알면 가치를 알게 돼

옻칠에 안료 섞어 그리는 '옻칠기도'
자연의 이치와 우주의 지혜 표현한 것
마음의 수련이 손재주보다 먼저


"김해에는 1996년에 왔어요. 공장을 운영하다가 실패한 경험도 있고, 외동에서 7년 정도 전통찻집 '마하연'을 열기도 했지요. 차를 좋아했거든요. 마하연 시절에 한학자 오여 김창욱 선생님과 통도사 성파스님을 만났습니다. 그 인연이 제가 옻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지요. 청주에 계신 옻칠명장 김성호 선생님은 청주공예문화상품 대전에서 뵈었는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이 길을 걷기까지 많은 스승들께 배움을 받았습니다."

천병록은 2010년에 열린 제5회 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옻칠작업을 하면서 받은 첫 번째 상이었다. 그때 심사위원이 무형문화재인 김성호 선생이었다. 그는 청주까지 가서 배움을 청했고, 현재 전수자가 되어 김성호 명장의 옻칠기법을 전수받고 있다.

천병록은 "제가 옻칠을 한 지가 오래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 기사가 나가면 다들 놀라겠다"며 "사실 본격적으로 옻칠을 시작한 건 2010년부터였다"고 털어놓았다. 이 대목에서는 기자도 깜짝 놀랐다. 그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통하며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내가 하는 옻칠 작업은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호흡하는 우주가 옻칠로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옻칠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모든 과정이 이 길과 이어져 있었고, 마침내 발현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옛것을 좋아하고 차를 좋아하는 그는 찻집을 운영할 때도 목공예, 금속공예, 죽공예 등을 하며 무언가를 만들었다. "혼자서 만들고 고치고 다 했지요. 특별히 찾아가서 배우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생각해보세요. 예전에는 집안에서 쓰는 물건을 대개 만들어 썼잖아요. 상품이 대량생산되면서 물건을 더이상 집에서 만들지 않게 된 거고, 어느새 그 손재주의 내림이 끊어진 거지요." 혼자서 물건을 만들어 쓸 줄 알았으니 옻칠공예를 빨리 익힌 게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2009년에 통도사 서운암에서 염색강의를 들었어요. 그때 성파스님께서 옻 염색을 처음으로 시도했지요. 그것이 자연스럽게 옻칠공예로 이어졌고, 옻칠에 안료를 섞어 그림도 그리게 됐습니다." 2010년께 처음 옻칠을 시작했다. 배우자마자 밤을 꼬박 새우면서 작업을 했을 정도로 푹 빠져버렸다. "서운암에서 1년여 기초지식을 배우면서 작품을 만들었지요. 서운암에서 전문가를 불러 강의할 때는 조교도 했고, 지금은 대구보건대 산학협력원에서 옻칠기초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 차사발 모양의 스티로폼 위에 한지를 바르고 삼베를 바르고 옻칠을 바르고 닦아내고 또 옻칠하고 여러 번 반복작업을 거쳐 견고하게 만든 차사발. 천병록의 작품이다.
그는 옻칠 작업이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옻칠한 작품을 만지려고 했더니 그는 "다 마른 것 같지만, 아직은 다 마르지 않았다"며 제지했다. 옻칠이 기물에 완전히 스며들어 완전히 마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옻칠은 습도, 건조, 온도의 조건이 다 맞아야 잘 마른다.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요. 가을이나 겨울에는 습도가 떨어지죠. 하루 24시간 중에도 건조 조건이 다 다른 걸요. 나무인지, 종이인지, 금속인지 기물의 종류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는 옻칠화를 '옻칠기도'라고 표현했다. 옻칠로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는 같다. 그는 "옻칠화를 그릴 때 어떤 그림을 그려야지 하고 미리 구상을 하고 그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연의 이치, 우주의 지혜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호흡, 단순히 숨을 쉬는 것과는 다르지요. 호흡을 하면서 소우주인 내가 더 큰 우주와 하나가 되고, 우주의 에너지를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려나가는 겁니다. 빙의, 접신 이런 것 하고는 다른 거지요. 특별한 계획 없이, 이렇다 할 염원 없이, 그저 경건한 마음으로 우주와 하나가 되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걸 자연스럽게 그립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어떤 것은 동심처럼 순수하고, 또 어떤 것은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옻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옻이 가진 에너지를 수치로 논할 순 없어요. 제가 한 작업 중에 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있는 찻집 '해뜨는집'의 '비비비당'의 내부를 옻칠로 마감한 게 있어요. 다실 하나 전체를 옻칠로 작업했지요.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은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몸에 활력이 돈다고들 합디다. 옻이 가진 에너지 덕분이죠. 최상의 재료인 옻을 잘 다스려서 정성을 다해 작품(물건)을 만들고, 그 작품이 생활 속에서 쓰이기를 바랍니다."

옻칠을 시작한 첫 해에 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계속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했다. 인터뷰를 끝낸 뒤 기자에게 날아든 제44회 경상남도공예품대전 수상자 목록에서도 장려상을 받은 그의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에 그가 이룬 성과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게 그렇지만, 지식만으로 되는 건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 수련이 손재주보다 우선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늘 자연과 우주와 호흡하면서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천병록
옻칠공예가·옻칠화가·문화재수리기능자 7333호. 제5회 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 동상, 제15회 전주공예전국대전 특별상, 제9회 대한민국공예예술대전 특별상, 제3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문 입선, 제 44회 경상남도공예품대전 장려 등 수상 다수.

박현주 기자 p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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