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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자락 아래 '동쪽 산등성이 마을'(96)대동면 초정리 초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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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4.06.25 10:27
  • 호수 179
  • 2면
  • 김예린 기자(beaurin@gimhaenews.co.kr)

옛 '초령원' 자리에 형성돼 이름 유래
월촌나루 길목에 있어 옛 '하동'의 중심
음력 정월대보름 당산제 풍습 유지
270년 된 팽나무 시보호수로 지정돼


   
▲ 초정마을 주민들이 경남농업기술원의 지원을 받아 목재 난간 등으로 예쁘게 꾸민 산책로.

대동면 초정리 초정마을은 백두산(白頭山)에 둘러싸여 있다. 원래 초정마을은 옛날 초령원(草嶺院)이었던 땅에 형성된 마을이다. 초령원의 '초'는 동쪽 또는 동쪽마을을 뜻하는 '새', '령'은 언덕이나 고개를 뜻하는 '재'의 차자(借字·한자를 빌어 우리 말을 표기한 글자)라고 한다. 초정마을이 속해있는 초정리는 결국 '동쪽 산등성이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불암동 불암사거리를 지나 대동로 길을 따라 15분 정도 지나가 길 왼편으로 깔끔한 2층 건물이 하나 눈에 띈다. 연분홍빛 외벽이 예쁜  초정마을회관이다. 초정마을은 2011~2013년 경상남도농업기술원의 농촌건강장수마을로 선정됐다. 마을주민의 창고로 쓰이면서 볼품없었던 마을회관은 그때 리모델링을 통해 깨끗한 건물로 탈바꿈했다.

마을회관 문을 열어보니 어르신들이 모여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동수(80) 노인회장은 15대 째 초정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초정마을은 일제시대까지 초정리의 원지마을, 안막 1·2·3구 마을, 신정마을 등 중 행정 중심마을이었다"며 옛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1930년대 이전만 해도 마을회관 앞까지 바다였다. 김해에서 양산을 가려면 낙동강을 건너야 했는데 대동면 월촌리 월촌마을에 월촌나루가 있었다. 월촌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마을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당시 하동면의 중심이 됐다"고 설명했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까지 마을회관 자리에는 하동면사무소가 있었다고 한다. 하동면이 대동면으로 명칭이 바뀐 사연이 재미있다. "상동면과 하동면은 일제시대에 붙여진 명칭으로 윗마을, 아랫마을이라는 뜻이었죠. 아랫마을이라는 뜻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하동면장이 김해군에 행정명칭 변경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윗마을이라는 의미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아보이는 '큰마을' 대동면으로 명칭을 바꿨답니다."

초정마을에 있던 하동면사무소가 원지마을로 옮긴 뒤 마을회관 자리에는 야학교가 들어섰다고 한다. 야학교가 사라진 후에는 대동중학교가 자리를 차지했고, 중학교의 덩치가 커지면서 안막1구 마을로 옮겨갔다.

초정마을 뒤편 백두산에는 조상대대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제를 지냈던 당산나무가 있다. 요즘도 마을 사람들은 음력 정월대보름이 되면 당산제를 지낸다. 초정마을 박정곤(55) 이장은 "당산제를 지내기 15일 전부터 몸을 정갈히 한다.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을 빈다"며 마을의 전통을 자랑했다.

당산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 회장은 당산나무 인근에서 산신령을 봤던 어릴 적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야학교에 다녔어요. 어느 날 오후 9시 야학교를 마치고 당산나무를 지나 집을 갈 때였어요. 집이 전등을 밝혀놓은 듯 훤하더라고요. 당시는 전기가 귀해 촛불을 사용하던 시절이었어요. 무서운 나머지 이웃에 살던 친척 할머니를 불렀더니, 할머니가 '괜찮다. 산신령이 온 거다'라고 하시더군요. 할머니 말을 듣고 다시 집에 가니 순식간에 집이 어두워졌더라고요. 그 이후로 전 산신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초정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마을회관.

마을회관 건너편에는 개울을 따라 목재데크가 놓여있다. 목재데크 끝에는 김해시의 보호수로 지정된 270년 된 팽나무가 마을주민들에게 그늘을 제공해주고 있다. 팽나무 인근의 놀이터와 족구장은 주말이 되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고 한다. 박 이장은 "화명대교가 아직 건설 중이라 김해에서 초정IC 고속도로로 향하는 화물차들이 마을 앞으로 자주 지나간다. 출퇴근 시간에는 어르신들이 마을회관 앞 길을 건너기가 위험천만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마을의 옛 모습이 사뭇 궁금해졌다. 박 이장이 옛 마을의 자취가 남아있는 마을 공동우물로 안내했다. 그는 "30년 전까지 마을 서쪽과 동쪽에 공동우물이 있었다. 상수도가 들어온 뒤로 우물의 기능은 없어졌지만 우물을 보며 옛 기억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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