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서재] #4. 백년의 고독

2025-11-17     하성자 작가
하성자 작가.

 

# 들어가며
『백년의 고독』은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남아메리카 콜롬비아 출신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가 국내출판사마다 거절당한 뒤 아르헨티나에 문을 두드렸고, 우편 송달료가 부족해 방대한 원고를 일시에 보내지 못하고 분할하여 발송한 끝에 1967년 아르헨티나의 수다메리카 출판사를 통해 발표한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 전체에 흐르는 고독이란 주제는 강하다.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하는 근친간의 사랑은 더 한층 고독을 파생하고, 각자 스스로 철저한 고립으로 침잠하게 되는 이야기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집안이 겪는 7대에 걸친 서사는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같이 오감을 흡입시킨다. 제각각의 악기 소리를 펼치는 연주자들의 행위가 일종의 사건이면서 총화를 이루는 하나의 사건인 명곡으로 다가오듯 이 가문의 역사는 저자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이끄는 대로 뒤엉킨 시간과 공간을 따라가는 동시에 통째로 받아들여야 읽혀지는 작품이지 싶다. 김해FM 'H의 서재'가 열정과 사랑의 계절 여름 7월에 다룬  『백년의 고독』은 고독해지는 누군가를 위해, 그 사색과 심연들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 소설 줄거리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 그 당시 마꼰도는 선사시대의 알처럼 매끈하고, 하얗고, 거대한 돌들이 깔린 하상으로 투명한 물이 콸콸 흐르던 강가에 진흙과 갈대로 지은 집 스무 채가 들어서 있던 마을이었다."(민음사, p11 소설 첫부분)
마꼰도는 '선사시대 알'처럼 순박한 마을이었고, 마치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이 마을을 건설한 최초의 두 사람은 다른 곳에서 이주해온 사촌 우르슬라와 사랑에 빠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이다. 근친상간을 하게 되면 돼지꼬리를 가진 아이를 낳는다는 저주를 두려워하면서도 사랑을 택해 결혼하는 두 사람, 저주를 믿는 우르술라가 정조대를 차고 합방을 피하는데 그것을 비웃던 사람을 죽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떠나는데, 이끌고 온 일행들과 스무 채로 시작한 마꼰도는 세상과 분리된 황량한 곳에서 창조되었다. 집시들이 들고 온 새로운 기계장치들과 문명에 혹해 비싼 대가를 주고 자석과 얼음을 구입하는 소위 한탕주의자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실질적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꿋꿋하게 가문을 이끄는 아내 우르술라, 마꼰도에서 과자를 만들어 가계를 세우고 넉넉한 인심으로 환대하고 백년의 토대를 지속해가는 그녀는 지혜로운 이브이다.  

'투명한 물이 콸콸 흐르는 강가'에 문명이 들어옴으로써 이데올로기와 자본이 유입된다. 미국 자본가들이 바나나 농장을 건립하고 철로를 놓기도 하면서 고립됐던 마꼰도는 번성하고, 정부의 한 지역으로 편입되며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자유롭던 마꼰도가 정부의 간섭에 놓이게 되자 우르술라의 아들 부엔디아(훗날 대령으로 불린다)는 자유파의 군대를 조직해 마꼰도를 장악하려 하는 정부의 보수파를 상대로 저항한다. 우르술라는 아들을 위해 전쟁자금을 지원하고 여론을 모아 주고, 전쟁 중에 낳은 제각기 다른 엄마가 데려온 부엔디아의 아이 열일곱 명을 거두어 준다. '재의 수요일', 신부가 아이들에게 속죄 의미인 '재의 십자가'를 이마에 그려주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지지 않아 부엔디아 자식이라는 표식이 되어 열여섯 명이 살해된다. 한편 부엔디아 대령은 32번의 전투를 치르며 모두 패했지만 그 영향력은 점점 확대돼 전쟁을 이끄는 영웅이 된다. 종내는 대의적으로 정부와 합의하고 저항군을 해산한 뒤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나 마꼰도에 칩거한다. 두루마리 양피지가 있는 방에 박혀 마법의 주문 해독에 노력하면서 황금물고기를 녹이고 만들기를 반복하는 평생을 보낸다. 

우르술라의 남편 호세는 미쳐서 나무에 묶여 살기를 원하고 그 소원을 들어주는 가족들, 결국 유령이 돼 그 나무에 묶여 지낸다. 모두가 그 유령을 볼 수 있지만 냉철한 부엔디아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그가 하는 유일한 외출, 그 나무 밑에 오줌을 눌 때마다 아버지 유령은 기함한다. 굳건하던 우르술라가 노쇠해지자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끌던 증손자 세군도는 바나나 농장 노동자 파업에 연루돼 열차에 실려 가다 3천 명이 총살당한 현장에서 탈출한 유일한 생존자다. 가문의 가세가 기우는데, 세군도의 아내 페르난다는 공주 신분으로 황금요강을 들고 시집온 독실한 원칙주의자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다보니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을 배격하고 심지어 미천한 신분이란 이유로 딸의 남자친구를 해친다. 증조할머니인 우르술라의 만류에도 페르난다로 인해 환대하던 집은 문이 닫힌 집이 된다. 세월이 흘러 부엔디아 대령도, 그 활약도, 바나나 농장 노동자 학살 이야기도 잊혀지고, 그 사실을 기억하는 몇몇은 황당한 이야기나 하는 사람 취급을 받고, 사실인 역사는 어떤 설득력도 증거도 가지지 못한다. 자유 항쟁과 노동자 집단 학살사건이란 역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우르술라가 죽고 세군도와 페르난다도 죽고 가문에 단 두 사람만 남았다. 페르난다의 딸 아마란따가 마꼰도 집을 재건하고자 남편과 함께 오면서 언니의 아들 바빌로니아와 상간을 맺고, 저주처럼 돼지꼬리를 달고 있는 아이를 사산한 뒤 과다출혈로 죽는다. 아기 시체가 개미떼에 들려 유령이 묶인 나무 밑으로 끌려가는 광경을 본 바빌로니아는 저주를 깨닫는데,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마법의 주문이 비로소 해독되기 시작한다. 사랑했던 아마란따는 누나가 아닌 이모였으며, 고독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죽음과 소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마지막 행에 도달하기 전에 자신이 그 방에서 절대로 나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이미 이해했었는데, 그것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양피지에 해독을 마친 순간 거울의 도시(또는 신기루들)는 바람에 의해 부서질 것이고,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져버릴 것이고, 또 백년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가문들은 이 지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양피지들에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반복되지 않는다고 예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민음사 p306, 소설 마지막 문장) 

 

# 책을 읽고 나서
의미를 들고 다니다 보면 어느 사이에 무의미와 닿게 된다.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그 무의미가 이루어내는 역사, 그 역사의 허망함과 망각이 고독의 원천일까? 신화시대 인간의 인식에서 소멸을 알지 못한다는 학설, 인간의 인식은 시간의 흐름이 없고 상황의 변화만 인지하기에 계절이든 사건이든 순환일 뿐이며 영속한다는 선사시대 인식연구자 민긍기 교수의 주장처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또한 『백년의 고독』으로 마술적인 리얼리티를 구가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는 일, 한 마을이 생겨나 사라지는 일, 한 나라가 건국했다가 멸망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이 소설이 가진 마술 같은 순환성이 현재, 여기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은 대를 이어 이름이 같은 자손들, 그 이름마다 비슷한 삶을 살게 되는 특성과 누구나 고독한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 결국 고독이 가중되는 혹독한 운명을 가진 사생아들(욕망의 결과)을 낳는 순환의 순간에 독자는 희망을 본다. 바빌로니아가 살아 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두루마리를 들고 있지만 바빌로니아가 마주할 저주에 쓰인 근친상간 대상자는 모두 죽고 없다. 혼자 남은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백년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가문들은 이 지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양피지들에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반복되지 않는다고 예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문장은 소설 첫 부분에서 총살을 앞둔 부엔디아가 기억했던  '선사시대의 알처럼 매끈하고, 하얗고, 거대한 돌들이 깔린 하상으로 투명한 물이 콸콸 흐르던 강가'와 맥이 닿는다. 자신이 죽으면 부엔디아 가문은 끝날 것이고, 그의 마꼰도가 사라질 거란 것, 두려움 속에서 바빌로니아가 얼음 같은 자신을 발견할 거란 것, 그 얼음이 투명한 물로 콸콸 흐를 강가 마을 마꼰도, 반복되지 않을 새로운 선사시대를 나는 믿는다.

 

 <H의서재>는 지역 공동체 미디어 김해FM이 제작해 라디오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H의 서재'를 모티브로 한 동명 칼럼이다. 김해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성자 작가가 방송에서 소개한 책 내용을 토대로 <김해뉴스> 독자를 위해 글을 재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