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맛있다고 한 빵과 과자는 정말 인기상품이 되고, 아들이 별로라고 한 것은 실제로 반응이 별로 없어요." 대한민국 제과기능장 김덕규(47)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 영훈 군의 의견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만든 빵을 먹고 자란 아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든 빵을 가장 먼저 맛보며 냉정하게 평가를 내린다.

 

▲ 빵집에서 만나 평생 반려자의 연을 맺은 김덕규·황경자 부부(사진)는 자신의 자리에서 서로를 응원한다.

김덕규 씨는 욕지도에서 태어나 세 살 때 통영으로 나왔고, 현재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빵 만들기를 시작했다. 빵과의 삶 속에서 통영, 마산, 창원을 거치면서 가게의 책임자가 되었고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 황경자 씨를 만났다. 낮에는 학원강사를 하면서 저녁에 빵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온 24살 처녀는 빵에 푹 빠져 있는 28살 총각을 보며 "저렇게 열심히 일하니, 저 사람 시간이 지나가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나 결혼을 하고 1993년 부부는 김해 부원동 중앙여중 근처에서 '김덕규 과자점'을 냈고 1997년 지금의 삼정동으로 옮겼다.
 

'김덕규 과자점'은 김해사람이라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곳이다.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포털사이트 검색란에 이름을 넣어 보면, 관련 기사는 제쳐두더라도 블로그와 카페의 소개글도 많다. 적극적인 네티즌들은 사진도 올리고, 단골고객들은 김 씨의 월드페스트리팀챔피언십(WPTC) 최우수상 소식을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SBS 생활의 달인(267회)에서 단골 과자점 주인을 봤다고 좋아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2002년 '대한민국 제과기능장'이 된 김 씨는 2010년 7월 WPTC 초콜릿 공예부분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WPTC는 국가대항전의 성격을 띠고 있을 정도로 제과제빵업계의 대표적인 세계 대회이다.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기능장에게 김해를 떠나 더 큰 무대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10년쯤 전에 당시 김해 경찰서장님이 서울로 가시면서 저한테 서울에 와서 가게를 해보라고 강남구 역삼동에 건물까지 소개해 주셨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던 거지요. 하지만 제 인연은 여전히 김해인가 봅니다. 특별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김해가 좋습니다. 계속 김해에 있을 겁니다." 고마운 대답이 돌아왔다.
 
김 씨가 김해에 버티고 있으니 그가 만든 케익과 빵과 과자를 사기 위해 김해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부산, 마산, 창원, 진해 등 인근 도시민들이 몰려드는 주말이면 가게 앞은 차를 대기 힘들 정도로 북적거린다. 일본의 친지를 방문하면서 과자를 사가는 이들, 타도시에서 과자 택배를 주문하는 분들도 있다.
 
제품을 고르는 사람들과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이 집 빵이 제일 맛있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등학교 2학년 김보경 양은 인근의 다른 빵집보다 김덕규과자점의 빵이 훨씬 맛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실제로 근처에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의 지점이 있지만 김덕규과자점의 인기는 여전하다.
 
케익이나 초콜릿이 연중 최고 인기를 끄는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 김해 삼정동 김덕규과자점의 당일 판매량이 전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면 믿겠는가. 정말 대단한 인기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이 만드는 제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능장의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최고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물론, 외국에 나갈 때면 용돈 한 번 제대로 쓰는 일 없이 모든 경비를 제빵제과 도구와 관련된 잡지와 책을 사는 데에 투자하고 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여러 대회에서 상도 참 많이 받았다. 가게 한 쪽 선반에도 트로피며 상장 메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느 대회에서 상 받은 거냐고 물었더니 "저건 우리 직원들이 받은 거구요. 제 건 너무 많아서 집에 가져다 뒀는걸요" 라며 웃는다. 1995년부터 대회를 나간 김 씨는 사실 웬만한 대회는 다 우승했고, 이제는 무슨 대회에 나가는 게 아니라, 대회의 심사를 맡아볼 심사위원을 배정하며 대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입장이다.
 
대한제과협회 기술지도위원장이기도 한 김 씨는 현재 양산대학 호텔제과제빵전공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2004년부터 강의를 시작했는데 "내가 가진 것, 나의 열정을 전부 다 주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결과는 여러 기록을 세우며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6년에는 '2006 대한민국 제과명장배 전국학생 빵·과자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비롯해 참가학생 전원이 상을 받았고, 기능장 역시 최우수 지도교수상을 수상했다. 양산대학의 호텔제과제빵전공에 전국의 학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가 많은 것에는 기능장의 진심이 학생들에게 옮겨지면서 만들어낸 열정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만 어려운 부분도 많다고 한다. "생각 이상으로 일이 힘듭니다. 기술을 익히는 것이 그리 쉽지 않거든요. 드라마를 보면서 어렴풋이 근사하게 생각하면서 시작했다가 두손 들고 물러서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힘들지만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하는 일인데, 고되니까 쉽게 일을 배우고 쉽게 일을 하는 곳으로 관심을 두는 현실은 김 씨의 과자점에도 영향을 미친다. 15명이 마음을 모아 일하던 과자점에서 현재 9명이 일하고 있다. 인력 보강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이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는 김 씨는 또 한사람의 고마운 사람으로 부인을 꼽는다. "아내가 포장과 판매, 그리고 과자점의 모든 일을 봐주고 있으니 제가 제품 아이디어 내서 만들고, 바깥 일도 보고 할 수 있었죠.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으면 지금의 제 모습은 힘들었을 겁니다." 고객이 골라온 빵을 재빠른 손길로 포장하고 있는 부인은 "제가요? 전 한 게 없습니다. 본인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지요"라고 말한다.
 
김 씨 부부는 베이커리 카페를 하고 싶은 꿈을 얼마 전 현실로 옮겼다. 가야CC 근처에 '쇼콜라 클래식'이라는 초콜릿 디저트 카페를 냈다. 정식영업을 안 했지만, 한달 정도 차근차근 준비를 하며 문을 연 이곳은 벌써 한 단골에 의해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다. 아내 황경자 씨의 손길이 구석구석 스며들어있는 공간이라니 그 카페도 궁금하다.
 
30년 빵과 함께 해온 삶을 이야기 듣는 것만 해도 벅찼다. 김 씨의 내면에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 궁금했다. 과자점을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으니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김 씨는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딸 수현이와 아빠의 빵맛을 가장 먼저 맛보아주는 아들 영훈이와 함께 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다며 아버지의 마음을 살짝 보여준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어두워져 가는 도로를 따뜻하고 달콤한 불빛으로 밝혀주는 김덕규과자점을 돌아보았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니, 저 사람 시간이 지나가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부인 황경자 씨의 말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대한민국 제과기능장의 과자점이 있는 김해 삼정동,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빵을 만드는 멋진 사람을 알고 있다.


 Tip

제과기능장 (Master Craftsman Confectionary Making)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제과 및 제빵에 관한 최상급 숙련기능을 가지고 산업현장에서 작업관리, 소속 기능인력의 지도 및 감독, 현장훈련, 경영계층과 생산계층을 유기적으로 연계시켜 주는 현장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력을 양성하고자 제정한 국가자격제도를 말한다.

월드페스트리팀챔피언십 (WPTC)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이다. 미국 내 대회를 1년에 한 번, 세계대회는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기술, 멋, 맛을 평가하는 대회로 김 기능장은 2010년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열린 대회의 초콜릿 공예 부문에 한국팀 팀장으로 출전해서 유럽이나 일본의 초콜릿 강국과 실력을 겨루었고, 한국인 최초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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