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상의 조사결과 제조업체 36% "타지역으로 이전 고려"
알짜배기 기업 다 빠져나가고 영세업체 '서식처' 전락 위기

▲ 부산 강서구 '화전산단'으로 이전을 확정한 ㈜강림CSP 주촌공장과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으로 옮겨갈 예정인 한국윌로펌프㈜ 진영 공장의 입간판.
지난달 6일 공업용 특수강관 제조업체인 ㈜강림CSP(대표 임수복)는 부산 강서구 화전산업단지에서 신축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1976년 부산 사상에서 처음 설립된 이 업체는 공장 규모가 팽창하면서 부지난에 시달리다 1994년 공장을 김해 주촌으로 이전했으나, 결국 17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복귀한 것이다.

국내 4대 조선소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이 업체는 지난해 1천1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5천만 불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림CSP 구봉준 상무는 "인력난에다 공장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웠는데, 부산시가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세제혜택까지 지원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 중견기업 김해탈출 신호탄 되나
부산과 창원 등 인근지역으로부터 유입되는 업체가 워낙 많다 보니 김해를 빠져나가는 업체에 무관심했던 지역 경제계에 비상이 걸렸다. 중견기업들의 역외 이전 계획이 사실로 나타나자 김해지역 기업들의 '탈 김해' 바람이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달 김해상공회의소가 지역 제조업체 1천200여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설문에 응답한 566개 업체 가운데 무려 36%에 달하는 203개 업체가 타 지역 이전을 계획 중이거나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들이 김해를 빠져나가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운 데다, 비싼 공장용지와 부족한 산업인프라 때문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김해지역 공장용지는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땅값이 크게 올라 부산 등 인근 지역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산업현장에서 일할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데다 전용 산업단지가 부족해 기업 활동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한국윌로펌프㈜ 진영공장 전경 모습 .

산업용 펌프를 생산하는 독일계 다국적 기업인 한국윌로펌프㈜(대표 김연중)의 경우 사업영역 확장을 위해 진영 공장을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 부품소재 외국인 전용공단으로 이전키로 하고 최근 부산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국내 빌딩 급수용 펌프와 생활용 펌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윌로펌프는 지난해 1천4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튼실한 업체로 김해에서는 몇 안 되는 중견기업 중 하나다. 지난 2000년 설립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온 윌로펌프가 부산으로 이전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제2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공장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윌로펌프 정봉언 차장은 "부산 미음산단으로 이전할 경우 생산율 증대를 통해 납기 단축은 물론, 물류비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과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산단의 접근성이 좋아 우수인재 확보에 유리하고 고용확대와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공허한 김맹곤 시장 공약
지난해 7월 취임한 김맹곤 시장은 '김해를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무분별하게 난립돼 있는 공장을 규제하기 위해 상공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산지경사도를 11도로 조정하는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기업인들은 치솟는 땅값과 용지난을 호소하며 김해를 빠져나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부산과 창원 등 인근지역으로부터 부족한 공장용지를 해결하기 위해 김해로 이전한 중소업체들은 이곳에서마저 심각한 인력난과 용지난, 땅값 부담까지 떠안게 되자 김해 탈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해상공회의소 조용덕 부장은 "영세제조업체의 비중이 높은 김해지역에 공단조성이나 세제지원과 같은 실질적인 혜택이 부족하다 보니 규모가 있는 업체들은 타 지역으로 빠져나갈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가 올 초 산업단지 경사도를 11도 미만으로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한 이후 공장의 신·증축이 사실상 어려워 용지난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부족한 용지난을 해결하기 위해 사유지를 공장용지로 개발하는 것은 아예 접근이 차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림면에서 자동차 부품 관련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강철호(가명) 씨는 "최근 주문량이 많아 제2공장을 지으려고 (허가를) 신청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 부산지역 산업단지로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공단에 입주한 한 중견기업 관계자도 "시장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경영여건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며 "공장 주변에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환경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아 공장을 옮겨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김맹곤 시장의 '기업하기 좋은 도시'는 메아리만 울리는 헛 공약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배짱부리는 김해시
이에 대해 김해시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중견기업들의 역외 이전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사태파악은커녕 관심도 없다는 듯 시큰둥했다. 전체 기업수만 통계자료로 작성할 뿐 기업의 전·출입 관련 자료는 조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년 부산과 창원으로부터 300여 개에 달하는 중소업체들이 유입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빠져나가는 업체까지 신경쓸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이다. 특히 김해의 경우 인근에 공항과 항만 등 수출·입을 위한 산업인프라가 충족돼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공장용지가 부족하다는 일부 상공인들의 지적에는 대동면에 조성중인 '첨단산업단지'가 완공되면 용지부족 문제는 말끔히 해결되고, 향후 이곳에 첨단산업관련 기업들을 유치해 '김해시 의·생명융합센터'와 함께 차세대 김해의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킨다는 방침이다.
 
김해시 장광범 기업지원과장은 "지금도 유입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공장부지가 모자라는 형편"이라며 "역량이 부족한 업체들은 인건비나 땅값이 낮은 곳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김해상의가 어떤 의도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을 계획 중인 업체는 몇몇 특정 기업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김해시는 일부 중견업체들의 타 지역 이전에 대해서도 "본사의 이전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공장만 따로 이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김해시는 대동첨단산업단지에 덩치가 큰 대기업보다 상시 근로자 200인 이하의 중견업체를 유치해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까지 기업 유치 실적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견기업들이 하나 둘 김해를 빠져나갈 경우 알짜배기 기업들은 모두 외지로 빠져나가고 소규모 영세업체들만 남아 장기적으로 김해시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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