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대상 정서·심리치료사 역할 말뿐
가사도우미 전락에 성적 수모 당해도
적은 월급이나마 못받게 될까 전전긍긍

노동인권 개선안에도 나아진 건 없고
건보공단 지급 처우개선비 10만원 고작
고충상담·고용안정 등 실질 대책 시급

정부는 2008년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노인들의 건강 증진과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노인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게 목적이었다. 이후 노인요양기관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났고, 그에 발맞춰 노인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는 노인요양보호사도 급증했다. 2014년 8월 현재 전국의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140만 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23만 명에 이른다. 김해에서도 2천 명이 요양보호사로 뛰고 있다.

지금 요양보호사들은 노인들을 돌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을 보살펴줄 다른 요양보호사가 필요한 상황에 몰려 있다.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는데다 폭력·폭언·성희롱 등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제대로 하소연 할 데도 없다. 힘든 현실을 털어놓을 상담소가 부족한데다, 그나마 용기를 내 고충을 토로하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 업무 과다에서 성희롱까지
김 모(47·여) 씨는 2007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재가요양시설에 취업했다. 그는 이후 시설에서 지정해주는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해 가사, 신체 활동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 홀몸어르신 2명의 집을 방문해 하루 8시간씩 1주일에 총 40시간을 근무한다.

법과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 및 사회적 보살핌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 어르신들의 청결 유지, 식사와 복약 보조, 배설, 운동, 정서적 지원, 환경 관리 및 일상생활 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근로계약서대로만 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인 게 설·추석 같은 명절이다. 김 씨는 명절이 다가오면 몸과 마음이 괴롭다고 한다. 객지에 나가 있는 어르신의 가족이 찾아오지 않으면 그가 직접 명절 음식을 다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 든 어르신들이 명절음식을 만드는데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토로했다.

요양보호사는 50~60대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하는 요양보호사는 '집'이라는 닫힌 공간에 어르신과 단둘만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어르신의 폭력, 성희롱 등이 발생해도 요양보호사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스스로 대처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실제 요양보호사들이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김 씨는 "동료가 최근 보름 동안 혼자 끙끙 앓다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신이 방문하는 집의 어르신이 '차비를 줄 테니 잠시 누워 있다 가라'며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가요양시설에 이 사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고용돼 있는 입장이다 보니 성희롱을 당하고도 입 밖으로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요양보호사 고 모(46·여)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의 일이 가사 도우미와 다른 게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고 씨가 어르신의 집을 방문하면 그를 기다리는 건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거리다. 어르신과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 일부러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아둔 것이다. 어르신의 집에 손님이 방문할 경우 대접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어르신 방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방도 청소해야 한다. 그가 이렇게 하루에 4시간씩 매주 총 20시간을 일하고 받는 월급은 60만 원에 불과하다.

고 씨는 "어르신의 신체, 가사 활동 지원뿐만 아니라 어르신과 대화를 하면서 정서적, 심리적 치료를 하는 게 원래 요양보호사의 역할이다. 하지만 음식 장만, 설거지, 청소를 하고 나면 시간이 다 간다. '내가 이럴려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나'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고 말했다.

노인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의 근로환경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한 노인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박 모(57·여) 씨는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12시간 동안 병원에서 일한다. 그는 근무시간 동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시간이 생긴다 해도 쉴 공간이 없다.

박 씨는 낮 12시에 어르신들의 식사를 도운 뒤 오후 1시에야 겨우 점심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가 없다. 밥을 먹다가도 어르신들이 부르면 뛰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야간근무를 할 때는 어르신들의 병실 앞 플래스틱 의자에서 잠을 자야 한다. 관장을 하거나 약을 배급하는 일은 간호사의 업무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궂은 일은 모두 박 씨에게 미룬다.

박 씨는 "억울하고 힘들어도 요양보호사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건 생계 때문이다. 이 일이라도 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든 근무환경 속에서 언제까지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 김해시지회 이명란 회장은 "요양보호사가 오물을 치우거나 기저귀를 가는 등 고된 노동을 하는 건 다반사다.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의료행위까지 도맡아 한다. 하지만 연차수당, 성과급 등을 기대하긴 힘들다. 요양보호사도 같은 직원으로 대우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재가요양시설 소속의 한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에게 과일을 깎아 대접하고 있다.

■ "힘든 현실, 털어놓을 데가 없어"
요양보호사들의 고달픈 현실은 일찌감치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2012년 전국요양보호사협회는 '노인장기요양제도 4년을 맞는 전국 요양보호사들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협회는 호소문에서 "요양보호사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과 근골격계 질환 및 노동자로서의 자존감 상실로 요양 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협회가 호소문에서 개탄했던 현실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요양보호사 표준 근로계약서에 기본임금을 명시하고, 장기요양기관 평가지표에 근로조건을 반영하며, 성희롱이 발생하면 제재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요양보호사 노동인권 개선안'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개선되지 않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3월부터 요양보호사 처우개선비 10만 원을 지급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처럼 요양보호사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고통 받지만, 고충을 털어놓을 만한 곳도 제대로 없다. 자신들이 근무하는 노인요양기관 등에서 상담을 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 배연희 회장은 "요양보호사가 성희롱, 부당노동에 대한 고충을 노인요양기관에 털어놓아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이나 보호자에게 '업무 외의 일은 할 수 없다'고 거부하면 보호자가 바로 해당 노인요양기관에 전화한다. 그렇게 되면 요양보호사는 그날로 바로 해고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요양보호사들을 위해 고충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들은 실직 등 불이익을 걱정해 상담소를 잘 찾지 않는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협회가 요양보호사 권익보호에 앞장서고 있지만 이를 아는 요양보호사가 많지 않다. 게다가 협회 등에서 고충 상담을 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고충이 있어도 적극 상담에 나서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충상담도 제대로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란 회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에 '장기요양기관종사자 고충상담' 코너를 마련했지만 이용자는 적다. 요양보호사들은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는 50~60대 여성이 대부분인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고충상담 코너를 적극 홍보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난해 11월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어 요양보호사의 교육, 심리·정서치료,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요양보호사의 고충상담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지만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인력이 많지 않다. 이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지자체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명란 회장도 요양보호사에 대한 노인요양기관과 정부, 지자체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요양보호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은 대상자인 어르신들의 서비스 향상과 직결된다. 요양보호사를 고용하는 노인요양기관, 정부, 지자체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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