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광현 교수가 지난 20일 인제대 부산백병원 강당에서 열린 임상시험 글로벌선도센터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인터뷰를 위해 걸어나오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생각지도 못했던 이별 쉽지 않아

첫 심장수술과 첫 심장이식수술 등 수많은 성공 사례의 기쁨보다
실패의 아픈 기억이 더 가슴에 남아

환자에 대한 사랑과 속죄의 마음 수필집 '제1수술실'에 오롯이 담아
새로운 곳에서 노인병 진료 주력 그동안 해왔던 글쓰기 더 노력할 것


핼쑥한 모습이 뜻밖이다. 어디 안 좋은 데가 있느냐고 묻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지난주에도 수술을 집도했을 만큼 건강해요. 몸이 아니라 마음에 문제가 생긴 탓인가 봅니다."

'현대의학의 꽃'이라 불리는 심장이식수술의 권위자 조광현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교수는 요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35년간 흉부외과 의사로서 4천 건에 달하는 심장수술과 수많은 의료 관련 업적을 쌓아왔는데, 이제 환자들의 곁을 떠날 때가 됐기 때문이다.

"환자들을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힘이 드네요. 이별 연습. 참, 스트레스더군요. 사실, 여태껏 생각을 안 해보고 달려온 터라…. 환자들도 그래요. 의사가 무슨 정년퇴임이 있냐고. 때가 되면 떠나는 건 당연한데, 쌓아온 인연을 끊으려니 쉽지 않네요."

오는 31일 정년퇴임을 앞둔 조 교수를 지난 20일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진료실에서 만났다.
 

-정년퇴임을 앞둔 소감은.

시원섭섭하다. 영광스럽기도 하고 담담하기도 하고. 가장 아쉬운 점은 35년간 돌봐온 가족 같은 환자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985년부터 심장수술을 해왔는데, 직접 집도하거나 지도한 수술 건수만 4천 건이 넘는다. 환자들 중에는 아직도 진료를 받는 분들이 많다. 어찌 보면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래 봐온 환자들은 건강만 돌본 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들까지 논의하고 공유한 경우가 많다. 어쩌면 단순히 의사와 환자만의 관계가 아니라 '동행'이었던 셈이다. 더 좋은 선생님들이 돌봐주실 거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아쉽고 걱정이 된다.


-심장 수술 분야의 대가이다. 기억에 남는 수술이 있다면.

1985년 9월 23일 첫 심장수술을 했다. 1982년 부산백병원에 조교수로 왔더니 2년 만에 심장수술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일본 규슈의 심장수술 전문병원에 가 6개월간 경험을 쌓았다. 1년 동안 배우고 돌아온 뒤, 동물실험에서부터 수술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챙기고 스태프 훈련도 시키면서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5세 아이를 수술했다. 성공적이었다. 백병원 재단 산하 병원에서는 최초의 심장수술로 기록됐다.
 
1990년에 들어서니 새로운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심장이식 수술을 하지 않았다. 1992년에 미국으로 가 공부를 다시 했다. 피츠버그에 있는 대학에 3개월짜리 단기연수를 다녀온 뒤 수술을 준비했다. 그런데 서울 아산병원에서 국내에서 첫 수술을 해버렸다.
 
'최초'라는 단어에 얽매이진 않았다. 인력과 장비 등 수술에 필요한 제반 여건을 마련하고 동물실험에 집중했다. 첫 심장이식 수술을 한 건 1997년이었다. 완벽하게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9월 23일이었다. 첫 심장수술 날짜와 같은 날짜였다. 그 후 연거푸 5명의 수술에 성공했다.
 
아픈 기억은 성공의 기억보다 더 진했다. 심장에 암을 가진 여고생이 있었다. 수술에 실패하고 말았다. 주위에서는 어려운 수술이라며 만류도 많이 했다. 그대로 두면 어차피 힘든 상황이어서 희미한 가능성이나마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수술 실패 후 좌절감이 컸던 나머지 드러누워 버렸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채찍질을 한 건 환자들이었다.


-부산백병원 원장 재직 시절, 전국의 백병원들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비결이 있었다면.

2001년부터 6년간 병원장으로 일했다. 1999~2000년은 의약분업 실시 등 새로운 의료정책 도입 때문에 혼란이 많았고,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다. 원장이 된 뒤 매년 10% 정도의 당기순이익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병원에서 학술부장·수련부장·진료부장·부원장 등 필요한 단계를 제대로 밟은 게 큰 도움이 됐다.
 
6년 동안 제도적 측면에서 발전을 많이 시켰다. 그 중 하나가 '임상시험 글로벌선도센터' 도입이다. 신약물 개발과 임상시험을 주된 업무로 하는 곳이다. 정부의 정책 발표 이듬해인 2004년에 서울대학교병원과 함께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처음 3년간 50억 원 정도를 지원받았고, 이후 계속 재선정돼 지금까지 왔다. 현재 전담 직원만 100여 명에 이른다. 글로벌선도센터는 영남지역의 각 병원별 임상시험센터를 지휘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신약물 개발과 외국 개발사의 신약물 임상시험 대행, 다른 병원 센터들과의 교류 및 지도, 각종 심포지엄 개최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런 노력과 발전을 통해 병원장 재직 당시 당기순이익 100억 원을 달성했다. 지난해엔 당기순이익 150억 원의 성과를 올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최근 수필집을 냈다.

▲ 조광현 교수가 지난 35년간 흉부외과 의사로 지내오면서 겪은 환자들과의 사랑과 회한 등을 담은 수필집 '제1수술실'.
흉부외과 의사로 일하면서 경험한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 회고와 반성, 속죄의 마음 등을 담았다. 2009년 초반에 부산지역 수필 전문 격월간지 '에세이스트'로부터 흉부외과 의사로서 경험한 내용들을 장편 수필로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10회 정도 분량으로 게재할 생각이었다. 반응이 좋았고, 잡지사 측에서 횟수를 늘리자고 했다. 결국 지난해 연말 호까지 4년 반을 넘게 총 33회를 썼다.
 
내용은 환자와의 관계를 스토리로 엮은 것이다. 대표 수필이 '제1수술실'인 건 내가 수술하는 곳이 백병원 '제1수술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35년간 환자들과 가진 관계, 그 속의 아픔들, 그 속에서 커온 나 자신의 모습,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반성 등을 담았다. '의사도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 한마디로 환자 때문에 아팠고 환자 때문에 기뻤던 지난 시간에 대한 되새김질이다.


-고향이 김해다. 김해에 대한 추억은.

고향은 정확하게 말하면 김해 불암동이다. 선암다리 부근에서 태어나 2세 때까지 살았다. 이후 장유로 이사를 갔고, 장유초등학교를 36회로 졸업했다. 부산에 온 건 부산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어릴 적 추억은 김해에 있다. 월헌 이보림 선생과 화재 이우섭 선생으로 유명한 장유 '월봉서원'이 외가이다. 당시 큰댁이 삼방동에 있었다. 현재 인제대 아래쪽 어디쯤이다. 일대가 전부 논이었을 때이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면 장유에서 걸어 초선대를 지나 큰댁을 오가곤 했다. 밤에는 무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너무 변해버려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그나마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 때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곤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달 1일부터 부산 사상구에 있는 한국요양병원에서 원장으로 일하게 된다. 부산백병원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는 건 아니다. 병원 측에서 명예교수 직위를 줬다. 이 직위를 가진 사람은 지금까지 단 3명밖에 없다고 한다. 명예교수로서 병원장 시절에 시작한 베트남 의료봉사 사업에 계속 참여할 계획이다. 심장수술이 필요한 베트남 어린이 환자 등을 데려와 수술을 해왔다.
 
새로 옮기는 병원에선 경영과 노인병 진료 및 연구를 주로 할 예정이다. 기존에 인연을 맺은 심장·폐질환 환자들이 찾아오면 그들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더불어 글쓰기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작정이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에세이스트 문학회'를 중심으로 나만의 문장을 본격적으로 구현해보고자 한다.


 


≫조광현 교수는
1949년 김해시 불암동에서 한의사였던 조증공(부산시 한의사회 회장 역임) 선생과 이인섭 여사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2년 인제대 의대 흉부외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2001년 1월부터 6년간 인제대 부산백병원 원장을, 올해 8월까지 백중앙의료원 부의료원장을 역임했다. 대한흉부외과학회 학회장을 지냈고, 부산시의사회 의학대상과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퇴임에 맞춰 대한민국 옥조근정 훈장도 받는다. '에세이스트' 신인상에 당선돼 수필가로 등단했고, '미네르바'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오는 30일에는 부산롯데호텔에서 정년퇴임식 및 장편수필집 '제1수술실' 헌정식이 열린다.
 
김해뉴스 /김병찬 기자 kbc@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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