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준기 김해외국인력지원센터 원장
서로 이웃에 살면서 정이 들어 사촌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을 '이웃사촌'이라 한다. 이 말 속에는 이웃은 사촌처럼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규범적, 윤리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한 곳에 머물러 토지를 경작하며 정착생활을 하던 농경사회에서는 이웃사촌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었다.
 
오늘날은 아파트가 보편화되면서 주거형태도 이동성이 높은 사회로 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한 곳에만 평생 살지 않는다. 유목민은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좋은 목초지를 찾아 이동생활을 한다. 모습은 다소 다르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일과 직장, 재산 증식 등 투자가치, 교통·교육·문화 환경, 계층적 이동 등 다양한 이유에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산다. 그야말로 신유목민 시대라 할 수 있다.
 
원래 유목민(nomad)은 '함께 나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라고 한다. 유목민은 다른 유목부족과 방랑의 장소를 공유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름을 인정하고, 주로 공동으로 의사를 결정하면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한다.
 
하지만 신유목민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이웃들은 서로 얼굴도 모르고 지낸다. 사람들의 개인주의,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이웃사촌이란 말은 무색해졌고 공동체 형성도 잘 되지 않는다. 김해만 해도 시민 가운데 약 68%인 36만 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어 공동주택의 비율이 높아졌다.
 
최근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층간 소음, 층간 흡연 사건들을 보면 '이웃사촌'은 고사하고 '이웃원수'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층간 소음은 단순한 이웃 간의 말다툼으로 끝나지 않고 심지어 폭행과 살인, 방화 등 극단적인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 정부는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아파트를 지을 때는 콘크리트 슬래브 기준 210㎜ 이상의 바닥 두께와 바닥 충격음 차단 성능을 모두 갖추도록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바닥 두께를 두껍게 한다 해도 입주민의 공동체의식에 변화가 없는 한 무용지물이다. 층간 바닥의 두께가 문제가 아니라 이웃과 이웃의 거리가 문제며, 결국 사람의 문제다. 사실 진짜 이웃 사이에는 소음 문제가 발생해도 서로 얼굴 붉힐 일을 벌이는 것도 쉽지 않다. 자칫 그렇게 하다간 '이웃원수'가 되기 십상이다.
 
층간 흡연의 경우도 이웃 간의 또 다른 분쟁요인이 되고 있다. 소음과 달리 층간 흡연에는 별다른 법적 규제 조항마저 없다. 환풍기를 빼고는 기술적 측면에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버스 정류장, 아파트 놀이터, 길거리 흡연은 법으로 금지하면서도 아파트·빌라·원룸 등의 공동주택은 흡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결국 집 안에서 담배 연기를 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법원의 판례에서 생명권과도 연결되는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선하는 권리임을 인정하고,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는 정도다.
 
법으로 모든 이웃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리규약을 통한 자율규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이웃사촌이라는 인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공동주택 문화의 형성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동주택에서는 누구나 아랫집, 윗집이 되며 이웃이 된다. 공동주택에 사는 이상 누구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신유목민시대에서는 잘 모르고 친하지도 않은 이웃, 서로 다른 이웃, 계층이나 직업이 다른 다양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이웃간의 사소한 소음과 불편은 어느 정도 이해해주고, 참아주는 게 필요하다.
 
또 이웃에 최대한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행동이 체질화되고, 최소한의 공동주택 에절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나의 행동이 이웃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는지 항상 이웃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관계적 사고를 지니고 살아가는 태도와 배려 의식이 공동주택 생활에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이웃이 사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층간 시멘트의 두께가 아니고 더더욱 법제도적 문제만은 아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이웃, 무엇보다 이웃간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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