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는 '이주민의 도시'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많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이 산다. 그들의 고국에도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적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추석' 이야기를 들어본다.


▲ 썽해리 (31·여·캄보디아 출신)
조상들께 음식 바치는 '프춤번'
조상 기리는 추석 풍습과 닮아

해마다 9월 2일부터 보름동안 계속돼
결혼 후 한 번밖에 못간 고향 더 간절

"프춤번은 오전 4시에 시작해요. 가족끼리 만든 음식을 들고 절에 갑니다. 조상들에게 음식을 바치며 기도를 하죠. 조상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한국의 추석이라는 명절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아요"

결혼이주여성 썽해리(31·여·캄보디아) 씨의 말이다. 그는 4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에서 살게 됐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김해 서상동에서 캄보디아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프춤번은 매년 9월 2일부터 보름간 열린다. 15일 중 마지막 사흘이 공휴일이다. 대부분의 캄보디아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프춤번 기간에는 절에서 조상을 기리는 '버바이번'을 한다. 썽 씨는 "버바이번은 절에 가는 길에 주먹 크기 만한 쌀밥을 땅에 던지며 기도하는 것이다. 캄보디에서는 프춤번 기간에만 조상들의 혼이 무덤에서 밖으로 나온다고 믿는다. 이 기간에 조상들이 먹을 쌀밥을 밖에 던지지 않으면 조상들이 노해서 나쁜 일이 생긴다는 미신이 있다"고 설명했다.

버바이번이 끝나고 절에 도착하면 '으로압받' 의식이 시작된다. 으로압받이란 버바이번에서 사용하고 남은 음식들을 스님들이 준비해온 그릇에 넣는 것이다. 썽 씨는 "그릇에 음식을 넣을 때 조상을 생각하며 넣어야 조상들에게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그릇에 넣은 밥들은 으로압받 의식이 끝난 후 스님들이 먹는다.

프춤번 기간 동안 절에 가면 '돈찌'라고 불리는 민머리 할머니들이 있다. 돈찌에게 쌀과 돈을 주는 '방쓰꼴' 의식이 있다. 썽 씨는 "교회에서 헌금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조상들이 살아있을 때 저지른 악업을 후손들이 대신 씻어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식점 한 쪽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캄보디아 프춤번 행사가 나왔다. 썽 씨는 고향이 그리운지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국에 온 이후 4년 동안 고향에는 딱 한 번 가봤어요. 한국에서 추석을 맞이할 때마다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해요. 그래도 한국 명절을 통해 또 다른 한국 가족들과 함께 만나면서 많은 위로를 받는답니다." 


▲ 우금옥 (45·여·중국 출신)
중국 중추절은 보름달을 섬겨
월병은 송편과 같은 명절음식

달 먼저 본 이가 가장 행복하다는 속설
지금은 시골에서만 전통 이어지고 있어

김해외국인인력센터에서 근무하는 우금옥(45·여·중국) 씨는 13년 전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지금은 한국인 남편,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 씨에게 중국의 중추절에 관해 묻자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종이 다섯 장을 들고 왔다. 중추절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고향의 중추절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니까 무척이나 설렌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을까봐 미리 정리를 했다. 중국의 중추절은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중추절은 조상이 아닌 달을 섬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중추절은 음력 8월 15일이다. 올해는 9월 6~8일이 중추절 기간이다. 우 씨는 "중국은 중추절에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가족보다는 시간이 가능한 형제들끼리 모여 부모를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중추절은 올해부터 공휴일로 지정됐다.

가족이 모이면 대개 일반적인 가정식으로 식사를 하고 월병을 먹는다. 월병은 동그랗게 생긴 중국 전통 과자다. 우 씨는 "한국에서 추석에 송편이 빠지면 안되듯이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월병을 꼭 먹는다. 한국인들도 익히 알고 있듯이 중국에선 중추절에 동그랗게 생긴 월병을 가족들끼리 나눠먹으면서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월병을 먹고 나면 달을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우 씨는 "중추절의 주인공은 달이다. 중추절에 뜨는 보름달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속설이 있다. 옛날에는 달에게 차례를 올리기도 했다. 지금은 시골에서만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씨는 1년에 한 번씩 중국에 간다. 올해는 여름방학을 맞아 딸과 함께 고향에 다녀왔다. 그는 "학창 시절 중추절에 친구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달을 봤던 기억이 선명하다. 추석에 보름달을 볼 때마다 그때 기억이 난다. 비록 타국이지만 김해에서도 딸과 함께 달을 보며 추석을 맞이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 박윤주 (32·여·필리핀 출신)
명절엔 떠난 이 기리며 축제
한국 추석은 재미가 덜 해요

11월 1~2일 순교자·성인 기념 만성절
음악과 춤, 카드게임으로 즐겁게 보내

필리핀에서 태어난 박윤주(32) 씨는 고국을 떠나 김해에 터를 잡은 지 벌써 11년이 된 '김해 아줌마'다. 자연스럽게 한국 인스턴트커피를 종이컵에 타 내오는 그의 모습에서 이방인의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박 씨에게 추석은 여전히 즐기기 힘든 시간이고 문화다. 그는 "한국 명절은 너무 재미가 없다. 여자들은 힘들게 일해야 하고 명절에 축제 같은 느낌이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이고, 그 다음은 11월 1~2일 만성절이다. 만성절은 순교자·성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지만, 필리핀에서는 교회보다는 가족들을 만나고 조상들의 묘지를 찾아가 기리는 날이다.

국가에서 지정한 공휴일은 11월 1~2일이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은 10월 30일과 31일부터 명절을 즐길 준비를 시작한다. 한국인들이 벌초하듯이 이들도 칼이나 가위로 조상들의 묘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한국처럼 반원 형태가 아니라 묘석과 십자가만 세워진 평평한 묘이지만, 조상 묘를 보기 좋게 다듬는 것은 똑같다.

본격적인 명절날에는 온 가족이 묘를 찾아 꽃과 초를 갖다놓고 기도를 하면서 조상을 추억하고 기린다. 특이한 점은 이틀 동안 근처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긴다는 것이다. 박 씨는 "한국은 조용하게 성묘를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공동묘지에 설치돼 있는 스피커에서 신나는 음악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틀에 갇히지 않는 명절이니만큼 먹는 음식도 정해져 있지 않다. 햄버거, 피자 같은 인스턴트 음식도 먹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필리핀 전통음식을 빼놓지는 않는다. 레촌이라는 통돼지 바비큐는 필수 음식이다.

박 씨는 필리핀에서는 매년 신나는 명절을 보냈지만, 추석 때는 아무 계획도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날이지만 저는 평소처럼 일하면서 지낼 생각이다. 추석 같은 특별한 날이 되면 필리핀 생각이 많이 난다"고 아쉬워했다. 

김해뉴스 /조나리, 정혜민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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