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일 3월, 액을 덜기 위해 목욕하고 술을 마시던 계욕일에 그들이 사는 북쪽 구지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200~300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사람 소리는 있는 것 같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하는 말소리만 들렸다. 구간등이 "우리들이 있습니다" 하자 "내가 있는 데가 어디냐?" 하였다. (중략) 구간등이 그 말대로 즐거이 노래하며 춤추다가 얼마 후 우러러보니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늘어져 땅에까지 닿았다. 줄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을 싼 것이 있었다. 합을 열어 보니 알 여섯 개가 있는데 태양처럼 황금빛으로 빛났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 기뻐하며 백 번 절하고 다시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모셔두고 흩어졌다가 12일쯤 지나 그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모두 남자로 변하였고 용모가 매우 거룩하였다. 이어 의자에 앉히고 공손히 하례하였다.>
 
앞에 인용한 것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실린 내용이다. 여기에 있는 구지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집단적 서사시임엔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 고장 김해가 우리 시가의 발상지라는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 김해는 우리 시(詩)의 발상지다. 지금은 세계를 향한 기술을 다듬으며 청년의 기상으로 웅비하고 있는 공업도시 김해가 시의 발상지인 것이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첨예한 언어의 감각 없이 씌어질 수 없는 시의 고향에서 공업을 일으키고 있으니. 그러나 연결해 보면 무관한 것도 아니다. 현대공업이 창의성 없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가. 그렇다면 공업도시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시적 상상력이 아닌가.
 
남원에서는 소설 속의 인물 춘향의 묘를 만들어 놓았고 하동에서는 소설 '토지'의 배경을 연유로 해서 지주의 가택과 문학관을 지어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봉평에서는 <메밀꽃이 필 무렵>의 이효석 문학제를 연다. 허구에도 기대어 무엇인가 문화적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지자체가 이렇게도 많다. 우리 지역도 역사에 기록된 엄연한 사실을 과거사로만 넘기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
 
대한민국에 제일가는 시(詩)축제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구지봉의 의식을 재현하며 시를 낭송하고 무용을 하고 참가한 많은 시민이 함께 김해시의 노래를 합창하며 한 시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갖게 하는 행사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
 
시와 독자의 거리가 멀어져 있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는 시의 나라다. 인구대비 시인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고 시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다. 새해 발표되는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응모자 수는 해마나 늘어난다. 이 창의성 경쟁지향의 민족성이야말로 대한민국 문화의 근원이다. 각 산업제품의 국제적 경쟁력 역시 창의성에 달려있지 않을까.
 
특히 단체장의 경우 문화마인드가 없으면 시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은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단순히 공업제품의 패션문제나 도시계획상의 안목과 같은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민 각각의 인간적 삶의 갈구와 관계된다. 사람에겐 물질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또 다른 욕구가 있다.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인간적인 삶의 욕구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나은 길을 걷고 싶고 아름다운 음악을 공원 벤치에서 듣고 싶고 연지공원에서 분수 쇼를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가 축제나 예술 관람을 통해 자연스레 해소되면 그 사회가 평온해지고 소속한 시민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행복을 느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김해는 시의 발생지다. 이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 김해시민의 긍지를 높이기 위해서 그렇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의 축제를 열자.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