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 무렵에 꽃을 피우는 나무다. 그래서 입하목(立夏木)이라고 불리다가 사람들이 부르기 쉬운 이팝나무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이 더 쓰이는 내 이름의 사연은 따로 있다. 내가 피우는 하얀 꽃이 마치 나무에 쌀밥이 내린 것 같다고 하여 배고픈 이 땅의 사람들이 배불리 밥먹기를,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이팝나무라 불렀단다. 사람들은 꽃이 만발하면 그 해 풍년이 들고 꽃이 시름시름 피면 흉년이 든다고 말한다. 나는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며 비의 양이 적당하면 꽃을 잘 피우고, 비가 부족하면 꽃을 별로 피우지 못한다. 그런 내 꽃을 보며 농사를 점쳐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가 얼마나 살아왔는지 헤아리지 마라. 나는 아득히 먼 곳에서 날아와 뿌리를 내려 자랐고, 바람을 타고 새로운 땅으로 날아가 자리를 잡고 생명을 이어간다. 그래서 나는 한 곳에 서 있으되 여러 곳에 존재하며, 몇 백 년을 살며 신화처럼 오래된 시간을 알고 있다.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에 있는 나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가족들을 안다. 650년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세월이지만, 그들 역시 6대째 200여 년 동안 한 자리에서 살았다. 이제는 팔순노인이 된 허영진 씨가 태어나 자라는 것도 지켜보았고, 나무를 좋아하던 그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던 1967년 어느 봄날도 기억한다. 전라도의 천연기념물 이팝나무 한 그루가 죽어가고 있어 주민들의 걱정이 많다는 신문기사를 본 그는 "우리 마을에 신문에 난 것보다 훨씬 큰 이팝나무가 있다. 비교하면 천연기념물감이다. 와서 봐라"며 나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여러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고, 문화재 관리국에 연락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 날 기자들이 잔뜩 몰려왔다. 그리고 나는 이름을 얻었다.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 천연기념물 제 185호'가 내 이름이다.
 
사람들은 걱정이 있거나 치성을 드릴 때면 내 앞에 와서 촛불을 켜고 저마다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큰 기원에서 작은 소망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묵묵히 들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내가 내 발치에 있던 우물과 마을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우물물을 길어먹고 살던 마을에 지하수를 끌어 수도가 들어오면서 우물은 제 할 일을 끝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음력 섣달그믐마다 정성을 다해 용왕제를 올리고 있다. 나의 종자를 일부러 받으러 오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나를 다른 땅에도 뿌리내리게 하고 싶은 것이다.
 
나무를 알아보는 눈이 밝았던 허 씨는 매일같이 햇빛 좋은 시간이면 마당에 나와 자기 집 마당에 심은 나의 자손과 나를 올려다보곤 한다. 그는 나의 650년 삶을, 나는 그의 80년 세월을 바라본다.
 
나는 천곡리에도 있다. '김해 천곡리 이팝나무, 천연기념물 제 307호'. 나는 이 마을에서 500여년을 살았는데,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선사시대라니 잘 찾아보면 나보다 더 오래된 어른이 계실지도 모른다. 가야시대 산성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천곡산성에 쓰인 돌은 어쩌면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나를 먼저 바라본다. 그 순간이 마침 내가 꽃을 피울 때라면 그들은 탄성을 지른다. 나는 내 그늘 아래 오른편에 있는 마을회관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이 한 시절 전 얼마나 고왔는지 기억한다. 그 여인들은 이 마을로 시집오면서 가장 먼저 나와 눈을 맞추었다. 태어나 자란 마을과 가족을 떠나 낯선 마을로 시집 올 때의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까지도 나는 모두 지켜보았다.
 
▲ 아팝나무 아래에 선 천곡리 할머니들.

수줍은 새색시들은 배고픈 시절 내가 피운 꽃을 보며 허기를 달래곤 했다. "배가 고파 힘들어하던 어떤 며느리가 저 나무에서 밥을 따먹었다는 전설이 있어. 너무 배가 고파 꽃을 따먹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변해서 내려오는 거겠지."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들은 나를 찾아온 기자에게 그런 사연을 들려준다.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기자의 꼬드김에 마음이 흔들린 할머니들이 회관을 나서 내게로 다가온다. 조심조심 걷는 발걸음이 그들의 몸에 깃든 세월을 말해준다. 집안일을 하고 식구들을 돌보며 보낸 한 평생이 머리 위에 희끗희끗 내려앉았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잊지 않고 있다. 칠흑같이 검고 비단결 같던 머리카락과 고운 미소를 가지고 있던 새색시들을. 그들은 그 때, 내가 피웠던 꽃보다 아름다웠다. 그들도 나도 지나간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열여섯, 열일곱 새색시들이 칠팔십대 노인이 되었다.
 
"와, 꽃 필 때 안 오고 지금 왔습니꺼. 꽃이 피면 얼매나 대단한데." 꽃피는 철 제대로 딱딱 못 맞추는 기자가 딱한 듯 말문을 여는 강상문 이장은 쉰여덟이지만, 마을 후배를 겨우 한 명으로 만족해야 하는 젊은 축에 속한다. 일하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온 그는 몇 년 전 이장을 그만두었다가 마땅한 사람이 없어 또 다시 이장 일을 맡아 보고 있다. 고마운 이다. "나무가 조금씩 죽어가고 있어요. 링거액도 놓고, 시에서 여러모로 애를 쓰고 있지만 얼매나 버텨 줄지."이장은 내 걱정을 한다. 마을회관도 자리를 옮기고, 지척에 사는 마을사람들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쯤은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이장은 나만큼이나 애가 쓰이는 모양이다. "꽃 필 때 꼭 와서 보이소. 견학도 오고, 방송국에서도 오고. 그 때는 제사도 지낸다 아입니까. 우리 마을에는 이 나무가 당산나뭅니다."
 
▲ 신천리 이팝나무(가운데)와 허영진 씨 집 마당에서 자라는 자손 이팝나무(오른쪽).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올해도 최고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싶다. 그러나 또 하나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꽃 필 때만 보지 말고, 꽃이 안 피어 있을 때도 나를 보아라. 나는 온 몸으로 세월과 계절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꽃이 피어 있으면 내 얼굴을 알아보지만, 꽃이 지고 잎마저 떨어지는 계절이면 곧잘 나를 몰라보곤 한다. 때로는 서운하다. 내가 꽃을 피우지 않아도 나는 이 곳에 서 있는 이팝나무이다.
 
나는 오래 한 자리에 서 있었다. 태어날 때 내 자리를 받아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해 자라는 일을 명 받았다. 처음부터 한 자리에 서서 하늘을 향해 천천히 자랐고, 땅을 향해 튼실하게 뿌리내렸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꽃 피우고 그늘을 드리우고 땅의 기운을 하늘로 보내고 하늘의 빛을 땅으로 스며들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지금 죽음과 다시 피어나는 생명을 한 몸에 담고 있다. 나는 죽을 때도 천천히 죽을 것이고, 죽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한 자리, 김해에 서 있는 나무다.
 


 Tip  이팝나무 프로필

▲ 신천리 이팝나무와 천연기념물 지정에 노력한 허영진 씨.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185호)
나이가 650년쯤 된 것으로 높이는 29.5m이다. 가지와 잎이 풍성하고, 나무 곳곳에 혹 같은 줄기가 나 있다. 한쪽 가지는 길 건너 우물을 덮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우물을 보호한다고 믿고 있다.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07호)
약 500년 정도의 수령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7m, 밑둥의 둘레는 6.9m이다. 지상 1m 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고 가슴높이 둘레는 동쪽의 것이 4.2m, 서쪽의 것이 3.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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