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귀농을 꿈꾸었지요.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따르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지도 생각했지요. 그것이 천연염색이었습니다." 천연염색공예가 김철희(61) 씨가 한림면에서 '생태체험학교 참빛'을 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천연염색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 삶의 자세가 바뀐다고 말했다. 아내 배인순 씨와 '자연의 삶'을 꾸려가는 김철희 씨의 생태체험학교를 찾아가보았다.

귀농 꿈꾸던 김 씨 부부 천연염색 반해
진례 송정리에서 김해 정착 첫번째 꿈
생림중 뒤 산언덕 계곡으로 옮긴 뒤
5년 전 폐교 이용 농촌교육장 운영 맡아


▲ "자연을 소중히 하고 잘 활용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김철희 씨가 천연염색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을 소중히 하고 잘 활용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죠
천연염색 제품 사용하는 순간부터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로 바뀌거든요

한림면 가산마을 정류장에서 마을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생태체험학교 참빛'이 있다. 한림면 가동로 103번길 44-16 자리에 있었던 폐교된 가산분교가 생태체험학교가 됐다. 운동장 어딘가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올 것 같다 싶더니, 중학생들이 막 체험을 끝내고 돌아갔단다. 운동장 한 쪽에서는 염색을 마친 천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마르고 있었다.

김철희의 천연염색 작품들로 가득 찬 교실로 들어섰다. 황토염색한 옷과 이불들 그리고 자연에서 얻은 다양한 색으로 염색한 옷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김철희는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직장생활도 했다. 그런 그가 김해로 온 것은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한몫 했다.

"고등학교 시절, 김해에 사는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여름방학 때 그 친구가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김해로 왔어요. 그 친구가 살던 마을이 어디냐구요? 아, 그것까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하지만, 그 때의 경험은 제 마음에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옛 추억을 들려주는 그의 얼굴에는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미소가 가득 번졌다.

"도시에서 줄곧 살았던 저는 볏짚단도 그때 처음 봤구요. 새끼돼지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것도 너무 신기했어요. 콩을 줄기 채로 불에 구워 먹는 것도 재미있었지요. 맑은 공기, 자연과 함께 하는 삶.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친구 집에서 하루를 잤어요. 저는 그때 별천지를 본 겁니다.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시골마을에서, 자연 속에서 살겠다는 꿈을 키워갔습니다."

김철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배인순 씨를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의 데이트 방식은 언제나 등산 아니면 여행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시골에 가서 살 거다'란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등산도 하고, 휴일마다 차를 타고 함께 전국방방곡곡을 다녔어요. 그 여행길은 놀러다니는 게 아니라 어디에 정착하면 좋을까를 찾아다니는 길이었지요." 그 길에서 그들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자연을 담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궁리하던 두 사람에게 그들은 소중한 만남을 선사했고, 지금도 좋은 인연으로 남아 있다.

시골마을에서 무엇을 해서 소득을 올릴까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부산귀농학교 5기생으로 입학해 귀농교육을 받았다. "잡지에서 천연염색 관련 기사를 보았어요. 황칠나무 농사짓는 사람, 식초를 만드는  사람들을 접했지요. 그 세개 중 염색이 나의 적성에 가장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천연염색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5년 정도 열심히 염색을 배웠습니다."

그는 염색뿐만 아니라 부산의 노라노디자인학원에서 한복 디자인도 배웠다. "염색은 옷감을 물들이는 데서 끝나는 반제품이잖아요. 옷을 만들면, 완제품을 만들면 가치가 더 높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한복 디자인을 배웠지요."

귀농준비가 착착 진행되면서 삶의 터를 어디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됐다. "남해로 갈 뻔 했지요. 남해군 상동면에 독일마을이 조성될 즈음이었죠. 남해군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괜찮은 조건이었는데, 가서 보니 물 사정이 안 좋더군요. 염색에서 물은 아주 중요하거든요. 당시만 해도 교통이 불편했고, 게다가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지요. 그때 마침 김해에 좋은 자리가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는 1999년 진례면 송정리에 자리를 잡았다가, 2003년 생림면으로 옮겼다. 생림중학교 뒤 산언덕이었다. "집 옆에 계곡이 흘렀어요. 가재도 있고, 반딧불이도 날고…. 원하던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었죠."

그 즈음 홈플러스 김해점에서 연락이 왔다. 홈플러스는 2000년 내동에 김해점을 개장했던 터다. 홈플러스에서 도자기, 공예, 염색 등의 제품을 모아 특별 판매 행사를 했는데 이때 김철희의 천연염색 제품들이 가장 많은 인기를 모았다. 2002년에는 홈플러스의 요청으로 '참빛 천연염색'이라는 상호로 정식 입점도 했다.

"김해점으로 천연염색 제품을 사러 오는 고객들이 늘어났어요. 그러자 본사의 구매자가 전국 홈플러스 매장에 입점하면 어떻겠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공장도 아니고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거절했지요. 일주일 뒤 다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창원점, 김해점 부산 아시아드점과 센텀점 4곳에만 입점했지요. 2008년까지 하다가 접었습니다. 천연염색이 점점 홍보가 되면서 큰 회사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기 시작했던 거지요. 우리는 약초베개를 만들 때 약초를 꽉 채워 만드는데, 다른 회사들은 그러질 않으니 가격경쟁이 안 되더라고요."

어쨌든 천연염색 참빛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TV에도 몇 차례 출연했다. 그리고 강원도 속초시에서도 옮겨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콘텐츠를 찾던 속초시에서 그를 알아본 것이었다. 관계자들이 김해로 세 번 내려오고, 그가 속초로 한 번 올라 가 답사도 했다. 그러나 부모를 모시고 살던 그가 온 가족과 함께 속초로 옮겨가기로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생림면의 염색공방으로 찾아와 체험을 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때 김해시에서 한림면 가산분교 자리에 농촌체험과 생태체험을 함께 할 수 있는 학교를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좀 더 넒은 곳에서 염색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체험을 하고 싶었던 그는 200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당시 생림면에서는 그가 한림면으로 옮기는 것을 아쉬워했으나, 크게 보면 그가 어디에 있든 김해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무리없이 옮길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농촌진흥청지정 농촌교육농장 '생태체험학교 참빛'의 운영을 맡게 됐다. 

그에게 천연염색의 장점을 물어보았다. "천연염색 제품을 선택해서 사용하는 순간 자연을 생각하게 됩니다. 생활이 바뀌는 거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기가 아토피를 앓고 있다며 저를 찾아온 어머니가 한 분 있었어요. 아기가 입는 옷이며, 이불까지 천연염색 제품을 사용했지요. 이불 재염색도 해 주었구요. 세탁을 할 때는 반드시 중성세제를 사용하라고 주의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아토피가 낫고 난 다음, 이 어머니가 옛날 습관대로 가루세제로 세탁을 했던 모양입니다. 아토피가 다시 재발했대요. 그 어머니가 중성세제와 가루세제의 차이,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많은 물건들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는 "자연을 소중히 하고, 잘 활용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천연염색은 그의 그런 마음이 선택한 일이다.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서 하는 천연염색이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것. 그것이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꿈을 꿉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 제가 하는 모든 작업의 중심에 자연이 있습니다." 

≫김철희
생태체험학교 참빛 대표, 참빛천연염색 대표. 경남공예협회 회원, 한국원예문화교육협회 회원. 김해여성인력개발센터 일자리협력망 위원. 산업예술 전문학사, 중등교원 자격, 천연염색기능사, 자연환경해설가. 한국귀농본부 평생회원, 부산환경운동연합 평생회원. 김해시공예품경진대회·김해시관광기념품공모전 입상. 경남공예품장려업체 선정.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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