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문을 연 부산 부평동 깡통시장은 1910년 '공설 1호' 시장으로 지정된 전국 최초의 시장이다. 부평깡통시장은 인근에 용두산공원, 보수동 책방골목, 자갈치시장 등 유명 관광지가 많아 낮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지만, 밤이 되면 늘 한산하기만 했다. 부산시는 부평깡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아케이드·공영주차장 등 시설 현대화사업을 벌여 새 옷을 입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부평깡통시장의 밤은 낮보다 더 사람이 많아졌다. 전국 최초로 상설 야시장이 개설됐기 때문이다. 시범적으로 운영됐던 야시장은 부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하루 평균 2천~3천 명이 찾는 인기 시장으로 변모했다.


 

▲ 부평깡통야시장 입구 모습. 이곳은 전국 최초의 상설야시장으로 저녁이면 관광객, 고객으로 늘 북적인다. 왼쪽 사진은 야시장 내부 모습.

120년 역사 전통시장 활성화 위해
부산시, 법적 근거까지 마련해 조성
전국 최초 상설 야시장 새 관광명소
상인들의 사업방향 자발적 참여 큰 힘
다양한 먹을거리와 볼거리로 유명세




■ 늘어난 고객, 늘어난 상인들의 미소
부평동 부평사거리에서 5분 정도 걷다 보니 부평깡통시장이 나왔다. 인근 광복로와 자갈치시장에서 쇼핑을 끝내고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찾은 사람들과 저녁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찾은 어르신들로 시장은 조용할 틈이 없었다.

"금방 나온 따뜻한 어묵 있습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산을 대표하는 어묵들을 어묵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부평깡통시장은 어묵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새우어묵, 땡초어묵 등 갓 튀긴 어묵을 커피, 차 등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

상인들은 깔끔하게 정리된 상품진열대 위에 각종 채소, 생선 등을 펼쳐놓고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시장에서 그어 놓은 상품 진열선은 자로 잰 듯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었다. 땅거미가 내리고 상점 간판에 조명이 하나 둘 켜졌다. 다른 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깡통시장의 매력은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자 형광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시장 내 공영주차장에서 성인키 높이만한 노점 판매대를 끌고 나왔다. 부평깡통야시장을 책임지는 야시장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번호가 매겨진 자신의 자리에 판매대를 설치했다. 판매대에는 이동하기 쉽게 하고 소음을 줄이고자 고무바퀴가 달려 있었다.

상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판매대와 시장 골목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불을 밝혔다. 오후 6시, 부평깡통야시장이 본격적으로 개장했다. 사람들은 마치 야시장 개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야시장으로 밀려 들어왔다.

상점들 사이에 설치된 30개의 판매대에서는 씨앗호떡·유부전골 등 부산의 유명 먹거리뿐 아니라, 직접 만든 액세서리·지갑·가방·모자 등 개성을 지닌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야시장에서는 평소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각국의 길거리 음식도 만날 수 있었다. 미고랭·니쿠마키 등 2천~3천 원짜리 인도네시아·일본 음식 판매대 앞은 줄을 선 사람들 때문에 지나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뜨거운 물에 라이스 페이퍼를 넣어 신선한 채소와 돼지고기를 넣고 돌돌 말자 금세 월남쌈 하나가 만들어졌다. 야시장 상인 웅엔티번(28·여·베트남) 씨는 "한국에서 산 지 6년이 넘었다. 3개월 전부터 야시장에서 베트남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 음식을 한국 사람들에게 자랑하면서 돈도 벌 수 있어 좋다. 찾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길거리 음식은 지저분하다고 생각해 일부 사람들은 꺼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음식을 조리해서 판매하는 상인들은 위생을 철저히 지키고자 노력했다. 음식들은 모두 즉석에서 조리해 판매한다. 상인들은 위생장갑·마스크를 끼고 두건을 쓴 채 음식을 조리함으로써 청결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관리원들이 상주하면서 질서 관리나 거리 청소 등을 하고 있어서 거리에서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야시장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오래 전부터 부평깡통시장에서 장사를 해오던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기존 점포들의 매출도 덩달아 올랐기 때문이다. 야시장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오후 7~8시에 문을 닫고 돌아갔던 상인들은 밤늦게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인화(65·여) 씨는 "15년 넘게 부평깡통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야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새도 없이 전·순대 등 음식을 파느라 바쁘다. 저녁이 되면 조용했던 시장이 활기를 되찾았다"며 웃었다.

부평깡통야시장에는 한껏 멋을 부린 20대 젊은층부터 40~50대 중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을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가까운 국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들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자갈치 축제 등 인근에서 열리는 축제와 연계하여 부깡캐릭터페스티벌, 7080콘서트, 퓨전국악공연 등 다양한 문화공연을 가지는 '깡통파티'를 열기도 한다. 또 매일 2회 시장 곳곳에서 소규모 공연이 열린다. 관광객 이상빈(24·안양시) 씨는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야시장을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어 좋다. 문화공연도 즐기고 부산의 명물 음식, 각 국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 야시장 성공의 관건은 상인들의 자발적 의지와 실천력
부평깡통시장에 상설야시장이 들어선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부산시는 침체된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야간 관광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 1월 부평깡통시장에 야시장을 도입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야시장 도입에 앞서 국내·외의 관광·시장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구성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다 농·수·축산물을 모두 취급하는 대규모 시장, 용두산공원, 보수동 책방골목, 임시정부기념관 등 주요 관광지와 가까운 부평깡통시장은 야시장 운영에 최적의 장소라는 평가가 나왔다. 부산시는 부평깡통시장에 어묵빌리지 등 특화된 먹을거리 길을 조성하기로 했다. 조명 경관 인프라 개선, 야시장 전용 관광가이드 앱, 야시장 판매대 개발 등도 계획했다.

하지만 야시장 도입은 처음에는 순조롭지 않았다. 부평동을 담당하는 중구청은 야시장 도입에 난색을 표시했다. 전통시장 내 도로에서 음식을 판매할 경우 식품위생법과 도로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음식을 조리·판매하기 위해서는 식품접객업으로 영업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야시장에 들어서는 판매대는 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판매대가 시장 내 도로에 설치되기 때문에 도로점용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 또한 허가대상이 되지 않았다.

부산시는 전통시장에 판매대를 설치할 경우 지자체가 시설기준을 따로 정할 수 있다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들어 설득했다. 이에 따라 중구청은 '이동판매대 즉석판매 제조·가동업 시설기준 적용특례 운영규정'을 제정했다. 또 도로법시행령에 도로 구조의 안전과 교통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지자체가 조례를 정해 도로점용 허가를 할 수 있는 규정을 찾아 판매대의 도로점용 허가 근거를 마련했다.

법적 기준을 마련한 부산시는 기존 상인과 야시장 상인들의 갈등, 노점상들의 무분별한 진입, 각종 위생 문제를 하나 둘 씩 해결해나갔다. 더불어 한국관광공사 등과 함께 야시장 주변 관광지들을 연계한 야시장 투어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파워블로거들을 초청해 지속적인 야시장 홍보에 앞장섰다.

부산시의 다양한 노력 덕분에 부평깡통야시장은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이제는 평일 2천~3천 명, 주말 4천~5천 명이 찾는 전국 최초의 상설 야시장이 됐다. 부평깡통야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부산시·중구청·상인회·야시장 상인들은 매달 정기 회의를 열어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부산시 경제정책과 박동석 사무관은 "전통시장에 야시장을 도입하고 활성화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상인들의 자발적 의지와 실천력이다. 정부가 2004년부터 전국 전통시장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금껏 활성화된 곳은 거의 없다"면서 "야시장 성공의 관건은 상인들이 스스로 새로운 사업방향을 개척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조언했다.  

 

김종열 시장상인연합회 회장

소비 습관 변화 패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전통시장도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소비습관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4년째 부평깡통시장 상인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김종열(66) 회장은 전통시장도 유통구조의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회장은 "과거에는 인근 관광지들 덕분에 부평깡통시장 주변의 유동인구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찾는 사람만 많았을 뿐 점포의 매출과 직결되질 않았다. 이는 상인들이 소비자의 의식구조와 소비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구조는 매년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10년 전 상품진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손님이 없다고 울상만 지었다. 새로운 소비층인 20대를 전통시장에 끌어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했다. 그것이 야시장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점포 상인들은 매출에 영향을 받을까봐 야시장 도입에 대해 반대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상인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또 공모를 통해 야시장 상인들을 대부분 저소득층,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로 모집했다. 이제 기존 상인, 야시장 상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다고 한다.

상인연합회는 야시장 도입에 앞서 부산시와 협의해 강력한 상거래 질서를 확립했다. 상인연합회는 청결, 관리 등을 점수로 매겨 야시장 상인들과의 재계약에 반영한다. 계약은 1년마다 한다. 상인연합회와 중구청, 야시장 상인들은 삼자 협약을 통해 판매대를 제3자에게 양도·교환·매매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여기에다 관리실명제를 시행함으로써 야시장 상인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했다.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야시장 상인 들이 질서를 위반하거나 청결·위생 등의 관리를 미흡하게 할 경우, 먼저 경고를 주고 경고를 3번 받은 야시장 상인은 영구 퇴출되도록 했다.

부평깡통야시장은 앞으로 시장 안에 시민편의 공간을 마련하고 야시장 판매대를 30개에서 50~60개로 늘릴 예정이다. 또 다양한 문화공연을 개최하는 등 야시장을 좀 더 활성화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새로운 문화와 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상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새로운 소비변화에 부응하는 부평깡통시장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뉴스 /부산=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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