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지난 여름, 뜨거운 태양과 나뭇가지를 흔드는 비바람 속에서도 나는 나의 속을 더 단단하게 갈무리 했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불평 없이 서두르지도 않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가만히 가지에 매달려 내 자리를 지켰다. 온 몸이 가을의 시작을 느끼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비로소 주홍빛 살결을 드러냈다. 진영읍, 나지막한 나무들마다에 주렁주렁 매달린 나에게 따뜻한 손길이 다가온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보람을 느낀다. 나는 100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진영단감이다.

고욤나무와 떨감나무에 묘목 접붙여
1927년 재배 시작돼 국내 단감의 원조
1960년부터 '진영단감'으로 명성 얻어
공장지대 늘면서 재배면적 점차 줄어


단감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서 다 나는 것이지만 진영이야말로 내가 살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일본인들은 그런 사실을 약 90년 전에 발견했다. 진영역장을 지낸 요코자와 씨는 이곳 진영에서 진영 여자와 결혼한 후 1927년 진영에서 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의 식물학자들도 우리나라 곳곳을 연구하던 중 진영이 토질, 산세, 기후 등 제반 조건에서 단감 재배에 최적이라 판단했고, 진영읍 신용리 일대에 단감 100주를 시험적으로 심었다. 시범 재배가 성공한 후 1년, 2년 단위로 조금씩 재배 면적이 확대됐고, 지금은 재배 면적이 약 1천660㏊에 달하고 있다. 이제는 '진영'하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진영의 명물이 됐다.

사실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 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고려시대인 1138년 에 작은 감인 '고욤'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도 감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고욤이나 우리나라에 많이 있었던 떨감은 나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빨갛게 열린 떨감은 특유의 떫은 맛 때문에 그냥 먹기도 힘들었다. 하나같이 배고팠던 시절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소금물에 한참을 담가 떫은맛을 우려낸 뒤 이를 먹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고욤나무와 떨감나무에다 일본에서 들여온 단감 묘목과 가지들을 접붙였으니, 따지고 보면 내 몸의 절반은 떨감나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 뿌리는 진영 땅 아래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더 넓고 더 깊은 곳으로 자양분을 찾아 헤맸다. 나는 수분과 양분을 가득 머금고 있는 진영의 점양토를 나무와 가지, 열매 끝까지 빨아들여 흡수했다. 이것이 내가 다른 단감보다 더 진한 맛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온도인 연평균 14도를 유지하는 따뜻한 기후, 병풍처럼 나를 감싸 해풍과 태풍을 보호해주는 지형, 다른 지역보다 꽃이 일주일가량 더 일찍 피고 서리는 일주일 정도 늦게 내려 일조량이 더 풍부하다는 사실 등은 나를 최고의 단감으로 만들어 주었다.

처음 심긴 나무의 수명은 100년이 다 돼 간다. 우리 나무들의 수명은 200년이라 아직 늙은 축에도 못 끼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길고 긴 시간이다. 뒤돌아보면 잔인했던 일제강점기를 견디고 광복의 날에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기뻐했던 사람들의 모습, 한국전쟁 때 눈물바람으로 김해까지 피난을 내려왔던 자녀를 업은 여인들의 모습이 모두 스쳐 지나간다. 그 어렵고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들에게서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국전쟁 후 1960년대에 원예농업이 일반화됐고 그때부터 나는 '진영단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지역에까지 진출했다. 내 모습도 단감즙, 단감말랭이, 단감 과자 등으로 다양하게 변해왔다. 요즘은 말레이시아, 중국, 캐나다, 유럽에까지 내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이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맛과 영양 때문이다. '내가 빨갛게 익으면 의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다'고 할 정도로 나는 사람들의 몸에 좋다. 진영 단감철이면 대구 약전골목의 손님이 준다는 속담도 있다. 아삭하고 달달한 나는 무기 성분 함량이 뛰어나며 비타민, 칼슘, 철분 등 각종 영양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비타민 A 카로틴이 사과의 7배, 비타민 C가 12배 함유돼 있어 단감 1개로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C를 모두 섭취할 수 있다.

여전히 나의 품질과 명성은 최고이지만 아쉬울 때도 많았다. 김해가 발전되면서 공장이 많이 들어섰고, 우리를 키우는 농가들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던 진영단감이 이제는 1위 자리를 창원 북면단감에게 내줬다. 요즘에는 한술 더 떠 북면단감이 국내 최초 단감이라는 유언비어까지 나돌고 있어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서 곧 다가오는 제30회 단감제를 더욱 기대하고 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단감제에 와서 진영단감이 더욱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도움말=김해시농업기술센터 최호영 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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