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DJ의 삶을 요약해 보겠다. 1971년 7대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다가 근소한 표차로 석패하였다. 그는 1971년 광주에서 목포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위장한 테러를 당해 골반을 크게 다쳤다. 이 바람에 고관절 변형증이 왔고 평생 걸음걸이가 불편하게 된다. 일본에 체류하던 중, 도쿄 팔레스 호텔에서 납치되어 현해탄에 수장당할 위기에 처한다. 1976년에는 민주구국선언을 했다가 구속되어 2년 9개월의 옥고를 치른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신군부가 권력을 잡았고, 계엄군법회의에서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세계의 인권단체들이 구명운동에 나선다. 형 집행정지 결정이 나왔고, 1982년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1987년 YS(김영삼 전 대통령)와의 단일화가 결렬되고, 13대 대선에 도전하지만 낙선한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도 낙선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그러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취임 후 IT강국의 초석을 놓았다. 일관된 대북 햇볕정책은 '6·15 남북공동선언문'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2000년에는 민주화 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2009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DJ는 중요한 대목에서 몇 차례 눈물을 보인다. DJ의 일생을 보면 '인동초'란 별명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태음인 특유의 인내와 끈기가 느껴진다.

DJ 주치의를 지낸 허갑범 박사의 기억을 빌리자면 항상 독서를 하고 무언가를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양인은 순발력이 좋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태음인은 순발력이 느린 탓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DJ는 순발력이 느림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 미리 준비해 두는 좋은 습관이 있었다.

다독을 통한 해박한 지식으로 정평이 난 DJ는 14대 대선에서 낙선한 뒤 독일의 통일을 연구했다. 그리고 '햇볕정책'이라는 독특한 해법을 제시했다. 태음인은 간이 크고 폐가 작아 직관적인 판단에 취약한데,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직관력이 형성되고 일정한 체계가 형성되면 지혜의 영역을 갖게 된다. 이를 <수세보원>에서는 '주책(籌策)'이라고 한다.

'햇볕정책'의 경우 태음인인 DJ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다듬은 주책의 결과물이라 할수 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독서하고 사색하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겠는가. 특히 고관절 변형증으로 거동이 불편했지만 그는 매일 얼마씩 꼭 걸었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 수영장에서 간간이 수영도 했다고 하며, 허 박사에 의하면 '잠을 충분히 자는 편'인데 낮시간에 20~30분의 낮잠을 즐겼다고 한다. 참고할만 한 부분이다. 수영은 폐활량을 키우는 데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운동으로, 폐기능이 약한 태음인에게 권장되는 운동이다. 다만 하루에 3갑 정도를 피우던 애연가였지만 60세에 접어들어 금연을 했다고 하는데, 흡연은 폐기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더 일찍 담배를 끊었어야 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주목하는 DJ의 특질은 '유연성'이다. 그는 1994년 문익환 목사 장례식장에서 DJ가 보인 눈물에서 '감성적인 카리스마'를 읽어냈다.

태음인은 또 '인륜'에 능하다. 인륜은 과거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배려하는 타고난 능력을 말한다. 문익환 목사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고락을 함께 했고, 3당합당 이후 노무현과 DJ는 함께 있었다. DJ는 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과거의 고락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부모님이 입으시던 낡은 옷을 보며, 혹은 생전의 편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면, 이는 태음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DJ의 건강비결 중 하나를 더 꼽자면, '용서와 화해'를 빼놓을 수 없다. 혹독한 정치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복하고 싶은 충동에 기대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택했다. 정치적 보복도 없었다. 불교 용어 중에 '방하착(放下着)'이란 게 있다.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를 삼독(三毒)이라고도 했고, 삼화(三火)라고도 했다. 모두 겸손함이 근본에 자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태음인은 '치심'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한다. 치심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가 먼저 대접받고 싶다는 조급함이 앞설 때 생기는 마음이다. 즉, 치심의 극복은 겸손함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치심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태음인 특유의 조열증으로 인해 DJ는 건강을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보여준 초인적인 인내와 용서, 화해는 결국 한의학적으로는 치심의 극복이요, 근저에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현효 활천경희한의원 원장 건강백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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