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에 시를 베다
(손세실리아 지음/실천문학사/131p/8천 원)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기억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 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손세실리아 시인의 시 '바닷가 늙은 집'의 첫 구절이다. 이 시는 제주 바닷가의 늙은 집을 수리해 북카페 '시인의 집'을 열게 된 인연을 이야기 한다. 시의 끝 구절은 이렇다.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 우르르 우르르 덤으로 딸려왔습니다// 어떤 부호도 부럽지 않은/ 세금 한 푼 물지 않는". 북카페 '시인의 집' 앞에 펼쳐진 제주 바다의 풍경은 물론이고, 그 바다를 감사히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까지 보이는 듯하다. 손세실리아 시인이 두 번째 시집을 냈다. 그는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에 시집 <기차를 놓치다>를, 2011년에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을 냈다. 8년 만에 출간된 두 번째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에서도 시인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하다. 첫 시집에서 발표했던 시 '곰국 끓이던 날'은 새끼를 낳아 길러내느라 뼛속 진액이 빠져버린 탓에 좀처럼 진국이 우러나지 않는 암소 사골뼈로 곰국을 끓이던 날에 깨달은 어머니의 사랑을 들려주는 시이다. 이 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내어주며 한 평생 살아온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 심정을 들려주었다. 두 번째 시집의 '늙은 누룩뱀의 눈물'은 모성을 가진 뱀으로 알려진 누룩뱀의 생태를 1연에, 어린 자식을 남에게 맡겼다가 늘그막에야 다시 찾으면서 회환과 슬픔에 젖은 어머니의 마음을 2연에 배치한 시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곰국 끓이던 날'에 이어 모성을 노래한 또 한 편의 절창이 이번 시집에서 태어났다. 아무리 작고 미미한 것이라도 두 손으로 올려받쳐 가장 고귀하게 대접해 온 시인의 마음은 이 시집 곳곳에 따뜻하게, 때로는 아프게 배어 있다. 겉절이의 전라도 방언인 벼락지를 그대로 제목으로 쓴 시 '벼락지'는 며칠 째 상추를 사오는 늙은 어머니의 말씀을 소재로 한 시다. "마실 다녀온 노모 손에/ 상추 한 봉지 들려있습니다/ 좌판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사들이기 시작한 지 아흐레쨉니다"라는 첫 구절에서는 시인의 어머니 마음이 넉넉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상추로 만든 벼락지에 물려 본 체 만 체 하자 어머니가 한 말씀 내리신다. "설마 쇠어빠진 거 갖고 나오겠냐/ 차려주는 밥상도 귀찮을 나이에/ 오죽하면 뙤약볕에 나와 종일 저러고 있겠냐/ 잊었는지 모르겠다만/ 나도 너 그렇게 키웠다". 손세실리아 시인이 말하는 모성은, '내 어머니의 모성'을 넘어섰다. '탄식'에서는 수술 후 특실로 모시려는 자식들을 만류하고 일반병실로 가겠다는 어머니가 있다. 시 속에서 어머니의 말씀은 이랬다. "아가 독방은 고독해서 못써야 통로 끝집 해남댁이 베란다서 떨어진 것도 다 그 때문 아니겄냐". 손 시인의 시 속에서 어머니는 생명이며, 나눔이며, 어울림이며, 박애이다. 북카페를 만들던 이야기와 그곳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시작품들 사이에 어머니, 다문화, 가족, 사라져 가는 서점과 시집코너 등을 노래한 시들이 보석처럼 콕콕 박혀있다. 파도소리가 철썩이는 제주 조천 바닷가의 '시인의 집'에 앉아, 시인의 목소리로 읊어주는 시낭송을 듣는 듯 한 시집이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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