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한숙 동원식당 대표가 푸짐하게 끓여낸 청국장과 돼지불고기를 내놓고 있다.
진귀한 산해진미가 아무리 좋다 한들, 매일같이 먹으면 물리기 마련이다. 시도 때도 없이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소문난 맛집이 지척에 있는 것 보다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백반집이나 짬뽕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중국집이 오히려 반가울 때가 많다. 이처럼 어쩌다 한번씩 먹어야 하는 '별식(別食)'을 다루는 음식점과 항상 먹어도 좋은 '상식(常食)'을 다루는 음식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에게 있어 상식의 중심은 역시 밥이고, 바로 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내는 집이야말로 진정한 '맛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음식점에 가장 민감한 부류는 하루 한 끼는 반드시 밖에서 먹어야 하는 직장인이다. 때문에 맛집 취재를 하다 보면 아주 별난 습관 하나가 생긴다. 회사원을 만나건 공무원을 만나건 반드시 묻는 것이 점심식사나 저녁 회식을 어디서 하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택시를 타도 기사님께 밥 먹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밥집이 김해시 외동에 있는 '동원식당'이다. 동네방네 소문난 맛집은 아니지만, 시청·경찰서·교육청 등 관공서를 비롯해 근처 직장인, 영업사원, 심지어 택시 기사들에게조차 은근히 소문난 집이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점심 시간을 즈음해 '동원식당'을 찾았다. 서두른다고 서둘렀건만 한바탕 전쟁을 치른 다음이다. "소문 듣고 왔는데 뭐가 맛있습니까?", "점심시간에는 청국장하고 불고기백반을 제일 많이 드셔요.", "그럼 그걸로 주십시오."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낡은 방, 빛 바랜 벽지, 오래된 가구, 일관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소품이며 그림 등 소박하다기 보다는 남루한 형색이다. 그 가운데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이라고 새겨진 서각과 '극락사'라고 찍힌 달력이 나란히 걸려있다. 밥은 하늘이라 했으니, 평화도 극락도 밥상 위에 펼쳐진다. 의도된 연출이건 우연의 일치건 간에 기막힌 배치다.
 
뚝배기에 담긴 청국장과 돼지불고기를 중심에 두고 십 여가지 찬이 놓였다. 청국장과 돼지불고기의 조합만으로도 밥 한 공기쯤은 거뜬할 것 같은데, 함께 놓인 반찬들의 때깔이 촉촉하니 식욕을 재촉한다. 상추, 양배추, 김 등 쌈도 세 종류나 놓였다. 아무래도 과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밥상이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극락을 경험하는 일만 남았다.
 
단백질을 발효 시킨 음식 중에는 특유의 고약한 냄새를 가진 것들이 있다. 중국의 부유(腐乳), 일본의 낫토, 프랑스의 로크포르치즈, 이탈리아의 고르곤졸라치즈 등이 이에 해당된다. 기분 좋은 냄새를 향(香)이라 하는 반면 이런 고약한 냄새는 취(臭)라고 한다. 나쁜 냄새의 총칭인 '악취'나 거세하지 않은 수퇘지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인 '웅취' 등 그 용례만 봐도 '취'의 느낌은 짐작이 가능하다. 이 '취'를 구체화할 때 흔히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는 표현을 쓴다. 헌데 단백질 발효가 만들어내는 이 고약한 냄새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처음에는 기겁을 하지만 일단 적응이 되면 그 강렬함에 매료된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일본의 유명한 음식만화 '맛의 달인'의 작가인 카리야 테츠는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내 놓았다.
 
"내 생각에 단백질이 발효된 냄새는 우리 인간의 특별한 냄새와 닮아 있다. 여기서 특별한 냄새란 사람들한테 떳떳하게 큰 소리로 말할 수 없는, 이를테면 인간의 몸 중에서 남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부분의 냄새, 혹은 신체의 어떤 기관에서 분비되는 물질의 냄새이다. 남들이 맡으면 너무도 창피한 냄새지만 자신이 맡을 때는 매우 그립고도 정겹지 않은가."
 
사뭇 퇴폐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솔직한 접근이지만, 발효 음식에 대한 인간의 유별난 집착을 이토록 명쾌하게 설명한 경우도 드물다. 중국의 부유, 일본의 낫토 못지 않은 우리 음식이 바로 청국장이다. 콩을 찌거나 삶아 따뜻한 곳에 두면 공기 중의 바실러스균이 붙어 자연발효가 일어나 청국장이 된다. 이 과정에서 청국장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생긴다. 청국장을 직접 띄우는 음식점의 경우 특유의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다. 손님들은 냄새를 통해 그집 청국장의 맛을 가늠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심의 음식점에서는 청국장을 직접 띄우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 냄새를 미리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요즘은 청국장이 외식 메뉴로 대중화되면서 냄새 자체를 죽이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층이 요즘 청국장을 두고 옛날 맛이 아니라고 하는 데는 냄새의 강도가 줄어든 탓이 크다.
 
'동원식당'의 청국장 역시 요즘 청국장의 대세를 따른다. 냄새보다는 대중적인 입맛에 방점을 찍었다. 전남 담양군의 콩영농조합에서 띄운 청국장을 가져다 쓴다. 매일 아침 멸치·무·다시마·청양고추·대파 등을 넣고 우려낸 기본 육수에 청국장을 넣고 끓인다. 두부와 표고버섯이 넉넉히 들어가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강렬한 냄새는 줄어들었지만 청국장 특유의 구수함과 감칠맛의 조화가 돋보인다.
 
돼지불고기는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너무도 익숙한 음식이기에 '돼지불고기'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맛이다. 네델란드 수입산 돼지고기를 사용했지만 육질이 보드랍고 잡내가 없다. 갖은 양념은 손맛 덕분에 절묘한 비율을 찾은 듯 보인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입맛을 당긴다. 청국장이나 돼지불고기 모두 짜지 않고 간이 심심한 것 또한 특징이다.
 
헌데 반찬이 문제다. 평범한 것들이지만 하나같이 맛과 질감이 살아있어 젓가락을 분주하게 한다. 특히 울산 정자항에서 들여온 멸치젓이 치명적이다. 군내는커녕 오히려 향긋하다. 거기다 솜씨 있는 양념이 맛을 더했다. 제법 큼직한 사이즈라 멸치 세 마리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이 뚝딱일 정도다. 이걸로도 충분하다 싶은데 젓갈로 무친 풋고추와 된장에 절인 깻잎이 또한 별미다. 여기에 상추, 양배추, 김 등 세 가지 쌈이 곁들여지면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쌈장 하나까지 직접 담아서 쓰고 있다. 마무리로 젓갈을 사용하지 않고 서울식으로 담근 열무김치가 입 안을 개운하게 정리를 해준다. 맛도 맛이거니와 반찬의 구성 자체가 보통 내공이 아니다. 밥상 자체가 밥도둑인 셈이다.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공기밥과 반찬 리필은 셀프다. 밥은 큼지막한 밥솥에서 무한정 퍼다 먹으면 되고, 반찬은 빈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가서 담아 오면 된다. 제법 오랜 기간 주인 아주머니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정착된 시스템이다. 단골들은 마치 제 집인냥 자연스럽다. 이 편안함이 또한 동원식당의 매력이다. 음식도 그렇고 시스템도 그렇고 과식과 과도한 염분 섭취를 피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대체 이런 집을 좋은 음식점이라 해야 할지, 나쁜 음식점이라 해야 할지 살짝 헷갈린다.
 
밥 두 공기를 비우고 상을 물린 다음 동원식당의 서한숙(55) 대표와 마주 앉았다. 무엇보다 이 심상찮은 밥집을 운영하는 분의 이력이 궁금했다. 경기도 화성 출신인 서 대표는 서른셋에 김해로 내려와 대기업 건설회사의 현장 식당에서 7년을 근무했다. 음식 솜씨가 뛰어났던 탓에 보너스도 제법 받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15년 전 동원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그제서야 이 집 밥상에서 느꼈던 의문이 해소됐다. 자극적인 듯 하면서도 깔끔한 맛은 경기도 출신이 경상도 사람 입맛에 맞춘 이유이고, 넉넉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맛은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끼니를 7년간 챙겨 온 이력 때문이다.
 
"반찬들 때깔이며 맛이 심상찮습니다"라고 여쭸더니 "저는 음식 할 때 간 안 봅니다"라며 다소 뜬금 없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익숙한 답이다. 음식 솜씨 좀 있다고 소문난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사람의 입맛이란 날씨, 기분, 컨디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조리 과정 틈틈이 맛을 보고 양념통을 들었다 놨다 하는 순간, 실패 확률은 급격히 상승한다. 그래서 '표준레시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들을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표준레시피란 하나의 지침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한다. 아니, 되어서도 안 된다. 세상 모든 음식점과 가정에서 만드는 된장찌개와 콩나물무침이 모두 같은 맛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음식을 조리하는 데 있어 '손맛'이란 경험을 통해 축적된 감각이다. 나물 하나조차도 어떤 음식에 따라 나오느냐, 어떤 반찬들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간이 달라진다. 심지어 계절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세심하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한다. 무심한 고객들이야 시시콜콜 따지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그 차이를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굳이 먼 길을 마다 않고, 후미진 골목길을 헤매서라도 '숨은 맛집'을 찾아 다닌다.
 
'동원식당' 정도면 김해의 '숨은 맛집'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듯 싶다. 거창한 메뉴도 없이, 남루한 행색에 소박한 차림이지만 왠지 사람을 끄는 묘한 구석이 있다. 과식의 유혹을 뿌리치는 절재력만 발휘된다면 썩 괜찮은 '밥집'이다.


Tip. 메뉴와 연락처 ───────

▶메뉴:청국장, 된장찌개, 시래기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돼지불고기 (6천원)
▶영업시간 : 오전11시~오후10시
▶주소 : 김해시 외동 699-1번지
▶연락처 : 055-332-6942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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