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허헌외 지음/현실문화/416p/2만1천800원)

1930년대에는 신문기자 월급이 70원이었고 의사 월급은 100원이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배의 3등석은 110원이었다.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해외여행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당시에 나라 밖 세상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세계는 어떻게 보였을까. 허헌은 보성전문학교와 일본 메이지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이인·김병로와 함께 조선 3대 변호사로 활약했으며, 보성전문학교 교장과 동아일보 사장대행을 역임했던 조선의 지도자급 인사였다. 그는 1927년 요코하마,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시카고에 도착했다. 그는 시카고 비치호텔 투숙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룻밤에 무려 100원! 그의 한 달 수입에 버금가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미국 대통령이나 영국 노동당 당수 등 유력 인사들을 만나 조선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일랜드 의회와 법정을 시찰했다. 거의 외교관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는 고급 호텔 가격에 기겁을 했다. 1930년대 대중잡지 <삼천리>에 실린 조선 엘리트들의 세계여행 기행문을 엮은 책이 나왔다. 그들은 세계여행을 개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거나 정치적 기획을 모색하는 데 적극 활용했다. 그들이 남긴 세계여행 기록 속에 담긴 열정과 고뇌를 따라가다 보면 조국의 정체성, 계층의 위계가 흔들리던 근대 상황을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마크 롤랜즈 지음/신상규·석기용 옮김/책세상/452p/1만8천 원)

20세기 최고의 철학자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철학과의 마크 롤랜즈 교수는 정색을 하고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는 헐리우드 액션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라고 말한다. 왜일까? 이 배우는 영화 '토탈 리콜'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인격동일성(人格同一性)의 개념을 보여줬고, '터미네이터'에서는 육체와 마음 사이의 이원론(二元論) 문제를 고찰했다. 이 책은 재기 넘치는 유머와 날카로운 지성을 겸비한 롤랜즈 교수가 공상과학(SF) 영화를 통해 철학의 주요 문제들을 살펴보는 책이다. '삶의 의미'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난해한 철학적 문제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들을 뽑아 환상적인 액션과 모험이 가득한 영화 속에 녹여냈다. 저자는 '프랑켄슈타인'에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삶의 의미를 묻는가하면 '매트릭스'에서는 앎과 확신의 문제를, '터미네이터'에서는 마음과 육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도덕 상대주의의 문제를 논하고, '블레이드 러너'에 이르러 죽음과 삶의 의미를 성찰한다. 영화 이야기를 통해 가벼우면서도 깊이 있게 철학을 다루는 책이다. 2005년에 출간된 <SF 철학>(MEDIA2.0 펴냄)의 원서 개정판을 새로 번역해 출간했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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