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학교와 김해시 공동으로 주최
장영실관·마루홀서 지난 13·15·16일
실내악·피아노 협연과 독주회 등 열려

세계적 피아니스트 데니스 프로샤예프
부산·경남 실내악 오케스트라 IPB 등
다양한 연주회로 청중 기립박수 받아

지난 13, 15, 16일 840석 규모인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객석과 인제대학교 장영실관은 청중으로 가득 찼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연주회가 열린 덕분이었다. 이 연주회는 인제대와 김해시가 공동주최한 '2014 제7회 김해국제음악제'였다. 올해 음악제가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주제가 '바로크의 시대로'였기 때문이다.

김해국제음악제 조직위원회 노경원(인제대 음악학과 교수) 위원장은 "바로크 음악은 르네상스와 고전파 사이의 시기인 1600~1750년대 음악이다. 올해는 바로크 시대 프랑스의 작곡가 장 필리프 라모(1683~1764) 서거 250주년, 바로크에서 고전파로의 전환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곡가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1714~1788)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주제를 정했다. 두 작곡가를 중심으로 바로크 시대 음악을 돌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크 시대에는 지금과는 다른 악기로 음악을 연주했다. 바로크 음악은 형식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가 많았다. 포르투칼어로 '고르지 못한 진주,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바로크가 이 시대 음악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 IPB와 함께한 바로크 실내악
지난 13일에는 'IPB(International Players of Busan)와 함께하는 바로크 실내악' 공연이 열렸다. IPB는 2012년 창단된 부산·경남의 대표적인 실내악 오케스트라다. 노 교수는 "바로크 시대는 실내악을 빼놓을 수 없다. 기악을 중심으로 5~10명이 실내나 작은 규모의 연주장에서 연주하는 음악이다. 실내악 양식은 바로크 시대에 성립됐고 고전파음악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IPB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연주로 1부를 시작했다. 브란덴브루크 협주곡은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작곡한 바로크 협주곡의 명곡이다. 세바스찬 바흐는 엠마누엘 바흐의 아버지이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쳄발로로 함께 연주됐다. 쳄발로는 건반이 달린 발현악기로 피아노의 전신이다. 웅장한 첼로와 잔잔한 바이올린, 기타처럼 챙챙 울리는 쳄발로의 음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마루홀 전체에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 지난 13일 열린 'IPB와 함께하는 바로크 실내악' 공연 장면.
라모의 '연주회용 클라비생 작품'이 이어졌다. 실내에서 합주할 수 있는 형태의 쳄발로 연주곡이다. 동의대 음악학과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인 하트무트 자우어, 부산시립교향악단 수석연주자 플루티스트 이화영, IPB 음악감독인 첼리스트 양욱진의 협연이 펼쳐졌다. 전자피아노를 치는 것 같은 쳄발로의 경쾌한 연주에 청아한 플루트 음이 더해졌다. 여기에 중후한 첼로 연주가 보태지자 마치 싱그러운 봄날의 축제 때 같은 분위기가 마루홀을 가득 채웠다.
 
창원시립 마산교향악단의 악장 겸 바이올리니스트인 이리나와 노 교수는 엠마누엘 바흐의 '판타지' 연주로 2부의 막을 열었다. 노 교수의 무게감 있는 피아노와 이리나의 바이올린 연주는 청중들로 하여금 4차원 세계를 빠르게 혹은 천천히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서울신포니에타 음악감독 겸 바이올리니스트인 김영준과 IPB가 비발디의 '사계'를 함께 연주했다. 연주는 때로는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듯 가벼웠고, 때로는 갑자기 몰아친 태풍에 날아갈 듯 위협적이었다. 악장에 따라 연주자의 표정과 몸짓도 시시각각 달라졌다. 연주가 무르익자 연주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김영준 바이올리니스트의 "브라보" 함성과 함께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끝으로 이날 공연은 마무리됐다.
 
음악회를 찾은 최태성(30·진영읍 진영리) 씨는 "연주자들이 음악을 즐기면서 연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평소 들을 수 없었던 유명 작곡가들의 곡을 듣게 돼 즐거웠다"고 말했다.
 
■ 부부 피아니스트의 협연
15일에는 인제대 장영실관에서 프린지 콘서트가 열렸다. 부부인 데틀레프 카이저, 피아 카이저의 피아노 듀오 공연이었다. 데틀레프 카이저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를 졸업했으며, 프랑스·미국·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유명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선 베테랑 연주자다. 피아 카이저는 1984년 제세니크 CSSR 국제 피아노 듀오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고, 1990년에는 마살라 이탈리엔 국제 피아노 듀오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
 
부부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Op.34를 편곡한 '소나타 F단조'를 먼저 연주했다. 마주보게 설치된 두 대의 피아노 앞에 앉은 부부는 1악장을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두 대의 피아노였지만 한 대로 연주한다고 느껴질 만큼 어긋남이 없었다. 30분이 넘는 긴 연주시간 동안 부부는 하나가 된 듯했다. 웅장함이 느껴지는 4악장 연주가 모두 끝나자 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고 청중을 향해 인사했다.
 
부부는 이어 클로드 드비쉬의 '린다라하'와 '아렌스키의 실루엣'을 연주했다. 노 교수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는 린다라하 정원이 있다. 드뷔시는 정원을 보고 감명을 받아 곡을 썼다. 들어보면 신비한 색채감이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렌스키의 실루엣은 총 5악장이다. 1악장은 학자, 2악장은 요염한 여자, 3악장은 광대, 4악장은 몽상가, 5악장은 무용수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카이저 부부가 다시 피아노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고 연주를 이어갔다. 그런데 린다라하 연주는 순식간에 끝났다. 청중은 생각보다 연주가 빨리 끝나 놀랐는지 부부가 일어나 인사를 할 때까지 멍하니 무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부부는 다시 아렌스키의 실루엣 연주를 이어갔다. 때로는 고지식한 '학자'처럼, 때로는 즐거운 '광대'처럼 건반을 쳤다. 마지막 악장인 '무용수'가 끝나자 청중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기립 박수를 치는 이들도 보였다.
 
딸과 함께 음악회를 찾은 하진영(38·여) 씨는 "딸이 이제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 듀오 음악회를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 오게 됐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 데니스 프로샤예프 독주회
김해국제음악제 피날레는 16일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데니스 프로샤예프(우크라이나) 독주회로 진행됐다. 노 교수는 "바로크 음악에는 쳄발로를 위해 작곡된 곡들이 많다. 피아니스트가 연주하기는 어렵다. 예전부터 바로크 음악을 주제로 한 음악회를 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연주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사람이 프로샤예프"라고 연주자를 소개했다.
 
김해국제음악제는 그동안 주제에 맞는 세계적인 연주자를 초청해 해마다 행사를 진행해왔다. 노 교수는 바로크 음악을 제대로 연주할 사람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유튜브를 검색한 끝에 프로샤예프를 찾아내 초청 메일을 보냈다. 김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프로샤예프였지만 메일을 보낸 다음날 바로 초청에 응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노 교수는 "프로샤예프는 전세계에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연주자나 마찬가지다. 그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웃었다.
 
▲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데니스 프로샤예프가 지난 16일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프로샤예프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경쾌하고 발랄한 소나타 선율이 울려퍼졌다. 바로크 음악에 어울리게 장식음 없이 음 하나하나가 분명하고 깔끔하게 이어졌다. 끊기는 듯 또렷한 연주였지만 동시에 부드럽게 이어졌다. 화음이 들어간 웅장함보다는 다채로운 멜로디 선율이 돋보였다.
 
소나타와 라모의 모음곡이 이어졌다. 잔잔한 곡과 몰아치는 속도감이 있는 곡들이 번갈아가면서 연주됐다. 때로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곡이, 때로는 격정적인 곡이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을 가득 메웠다. 빠르면서도 분명하게 음을 짚는 피아니스트의 손은 마치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가끔은 부드러운 손짓으로, 때로는 고양이 발처럼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듯한 모습으로, 그러다가 나중에는 기타 줄을 튕기듯 건반을 튕기는 모습이 돋보였다.
 
마지막 곡까지 연주가 끝나자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프로샤예프는 커튼콜로 환호에 답했다. 공연 후 로비에서는 프로샤예프의 즉석 사인회가 열렸다.
 
노 교수는 "김해국제음악제는 김해 시민과 음악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축제다. 많은 청중이 세대를 뛰어넘는 작품을 듣고 느끼며 공감하는 시간이 됐길 바란다. 앞으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김해국제음악제로 찾아오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조나리·정혜민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청중 인터뷰

▲ 최혜은 씨
경성대 음대 바이올린 전공 최혜은 씨
피아노로 표현한 쳄발로 연주 깔끔·화려

해설이 곁들여진 음악회 또다른 재미
거장 프로샤예프 연주 직접 들어 감동

지난 16일 제7회 김해국제음악제가 열린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경성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청중 최혜은(25·부산시 남구) 씨를 만났다.
 
최 씨는 바로크 음악을 주제로 연주를 한다는 게 독특해서 부산에서 왔다고 한다. 그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해국제음악제 조직위원회 노경원(인제대 음악학과 교수) 위원장의 해설이었다. 그는 "음악을 전공했지만, 사실 음악이나 공연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다. 가족, 친구들과 클래식 음악 공연에 갈 때마다 설명해준다고 애를 먹었다. 이번에는 노 교수가 공연 전에 설명을 해줘서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요즘은 해설이 있는 음악제나 음악회가 많아지는 게 일반적인 추세이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은 공연이 더 많은 게 현실. 최 씨는 "노 교수의 친절한 해설 덕분에 바로크 음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음악제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일들을 들으니 더 재미있었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바로크 음악은 잔꾸밈음이 많다. 쳄발로로 연주하기 때문에 망치로 두드리듯 통통 튀는 소리가 나는 게 특징이다. 쳄발로는 피아노의 전신이지만 소리는 매우 다르다"면서 "노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초청한 데니스 프로샤예프는 피아노로 쳄발로를 정말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유의 쳄발로 소리는 물론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바로크 음악을 잘 나타냈다. 연주자의 자연스럽고 가벼운 터치감 덕분에 바로크 음악의 딱딱한 느낌 속에서 부드러운 음색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김해문화의전당은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부산의 여느 시설보다 훨씬 웅장한 규모와 다채로운 시설에 적잖이 놀랐다. 음악공연에서는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음향이 좋아 피아노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 정범모 씨
지난해 이어 두번째 참가 정범모 씨
프로그램 수준 높고 자유로운 음악 축제

전문성·대중성·청중 수준 갈수록 상승
피아노 중심 신인 등용문 역할도 기대

"김해국제음악제는 자유롭고 편안한 음악 축제예요. 누구나 즐기고 느낄 수 있다는 게 김해국제음악제의 장점 아닐까요."
 
장유에서 사업을 하는 정범모(53·부산시 해운대구) 씨가 김해국제음악제를 찾은 건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이다. 첫 번째 음악제를 접한 뒤 기대 이상으로 프로그램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오게 됐다고 한다.
 
정 씨는 피아노와 실내악을 중심에 둔 프로그램이 김해국제음악제의 특색이자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오케스트라를 위주로 행사를 진행했다면 다른 음악제나 연주회 등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김해국제음악제는 신인음악회, 메인 연주회, 전문가 연주회 등으로 짜임새를 갖췄다. 음악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연주회를 즐길 수 있게 돼 있다"고 평가했다.
 
정 씨는 또 "부산에서는 큰 연주회가 많이 열리기 때문에 소규모 연주회는 묻히는 경우가 많다. 김해국제음악제는 규모·재정 면에서 봤을 때 대규모 공연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한 작곡가의 작품을 충실히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알차게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처음에는 익숙한 작곡가들로 주제를 정했다. 해가 갈수록 전문성이 짙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프로그램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청중을 모으기 위해 대중성이 짙은 음악을 택했지만, 청중의 수준이 높아지고 찾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전문성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 같다. 앞으로 피아노 중심의 전문 음악제로서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도 하게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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