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보는 장소, 그 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풍경. 그 낯설음과 맞닥뜨리는 순간이 너무 설렙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그런 것들과 친해지는 과정 같아요."
 
김해사진동호회 회장 허윤기(41) 씨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 카메라를 잡았다. 그는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디자인 관련 일을 했다. 누구라도 그렇듯 밥 먹고 사는 일이 지겨워진 어느 날 그는 도자기에 관심이 생겨 인터넷에서 도자기를 열심히 검색했다. 사이버 세계에서 김해의 분청사기를 만나 "이걸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고 김해로 왔다. 짐을 몽땅 실은 차 한 대를 끌고 삶의 거처를 옮긴 거다.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김해와 인연이 있었군요" 맞장구를 쳐야 할지 기자는 순간 멍한 표정으로 허 씨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없이 흥미진진한 드라마 속 주인공의 과거를 들려주듯 자신의 태몽도 슬슬 풀어놓았다.
 
큰 암소 한 마리가 도자기를 머리에 쓰고, 신이 나서 춤을 추며 흔들어대다가, 도자기를 사뿐히 내려놓는 꿈이란다. 태몽이라는 게 신비한 대목이 있게 마련이어서 얼마쯤은 진지하고 숙연해지는데, 허 씨의 태몽은 어딘지 유쾌하기까지 하다. 암소가 도자기를 사뿐히 내려놓은 것처럼 그는 2005년 3월, 차 한 대에 살림살이를 싣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김해로 '사뿐히'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렇게 원하는 도자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몇 달 지나면서 돈이 바닥나 본래의 직업인 디자인을 다시 시작했고 외동에 '줌디자인학원'을 냈다. 그리고 김해와 더 친해지고 싶어서,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김해사진동호회에 가입했고 2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어쩌면 그의 몸 속의 예술적인 유전인자가 남들보다 농도가 조금 더 짙은 것일까. 그의 사진은 네이버의 포토갤러리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의 포토', '베스트포토' 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네이버 닉네임 '줌머시기'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네이버 포토갤러리 검색창에 '줌머시기'를 입력하면 그의 사진들, 네이버 포토 심사위원들의 선정 이유와 심사평을 볼 수 있다.
 
사진이 얼마나 흔해진 세상인가. 핸드폰에 장착된 카메라 기능만으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인터넷에는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사진이 올라온다. 네이버는 자체 내의 사진팀이 그 사진들 중에서 좋은 사진을 골라내서 베스트포토 15장을 선정한다. 그리고 사진작가, 평론가, 큐레이터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베스트포토에 선정된 사진들 중에서 다시 그 날 최고의 사진 단 한 장을 뽑아서 오늘의 포토를 선정한다. 허 씨는 베스트포토에 40번, 오늘의 포토에 5번 선정되었다. 베스트포토에 선정된 네티즌들은 그 기쁨을 블로그에 털어놓고, 유명인사가 찍은 사진이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라도 하면 언론에서 기사로 다루기도 한다. 오늘의 포토에 선정되기란 더 어렵다. 그래서 그 계절의 사진 포인트에 출사를 나가 전국에서 몰려든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눌 때 "줌머시기라고 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네면 금방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다.
 
허 씨의 닉네임 '줌머시기'는 사진과 디자인을 아울러 멀리 보이는 사물을 가까이 당겨서 본다는 의미의 '줌'과, 마치 머슴처럼 열심히 뛰어보겠다는 마음을 담아 '머시기'를 덧붙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아무래도 거시기는 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머시기라고 한 거에요."
 
그의 사진 중에는 '농심(農心)'이라는 작품이 있다. 가을걷이 장면을 찍으러 간 날, 넓은 논에서 단 두 분의 어르신이 일을 하는 것을 본 그는 카메라를 놓고 함께 나락을 날랐다. "어르신이 일을 하고 있는데, 사진 그게 뭐라고 젊은사람이 옆에서 찍어대기만 하겠어요. 그래서 한 시간 동안 그 분들과 나락을 날랐습니다. 그러다가 틈틈이 한 장 찍고, 나락 나르고, 그렇게 찍은 사진입니다." 그는 마을의 풍경 하나를 찍기 위해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 그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친숙해진 다음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 네이버 포토갤러리 '오늘의 포토'에 선정된 화포천 환경지킴이 개를 담은 사진 '달려라~ 봉근아!'.
허 씨가 찍은 사진 중 2009년 6월 11일 네이버 '오늘의 포토'로 선정된 '달려라~ 봉근아!'는 김해 화포천의 환경지킴이 개 '봉근이'와 마침 그 옆을 내달리는 기차를 담은 풍경이다. 봉하마을에서 한림방향으로 넓게 퍼져 있는 화포천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된 곳이다. 심사위원 곽윤섭 씨는 이 사진에 이런 평을 남겼다. "씩씩한 봉근이의 귀여운 질주가 잘 보여서 좋았습니다. 이곳에 계신 환경지킴이들과 더불어 오랫동안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한 사진을 보는 여러분들에게 기쁨을 준 것도 큰 미덕 중의 하나입니다. 봉근이와 기차의 경주를 보여준 것은 줌머시기님의 센스입니다. 유머가 있는 사진은 늘 즐겁습니다. 기법이나 구도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 사진을 본 SBS 방송국 'TV 동물농장'에서 허 씨에게 연락을 해 온 일도 있을 정도로 많은 화제가 되었던 사진이고, 지금도 인기리에 클릭되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은 20년 간 찍은 사진 중 126장을 골라 '재빠른 이미지'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며 '결정적 순간'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평생 소형 라이카 카메라로 작업을 한 브레송은 장비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도 남겼는데, 허 씨는 그 말을 늘 가슴에 두고 있다. "장비에 투자하는 대신 신발에 투자하고,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허 씨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캐논5D'를 어깨에 메고 사진을 찍으러 나선다. 렌즈에 담고 싶은 모든 피사체들과 친해지기 위해 그는 열심히 걷고, 오래 기다린 끝에 한 순간을 잡아낸다.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닉네임으로 그를 응원한다. "달려라~줌머시기!" 


홀로 공부해 홈페이지 제작 책 다섯권이나 펴내

허윤기 회장은 홈페이지 제작 관련 도서를 다섯 권 낸 저자이다. 혼자서 한 달 동안 공부하면서 홈페이지를 만든 경험으로 첫 책을 펴냈고, 모두 5권의 책을 발표했다. 발간 당시 홈페이지 제작을 시도하는 초보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발간한 책은 '초보자를 위한 홈페이지 만들기 21일 완성'(인포북), '비주얼판 인터넷 홈페이지 만들기 길라잡이'(정보문화사), '초보자를 위한 포토샵5 길라잡이'(정보문화사), '그림으로 배우는 홈페이지 만들기'(인포북), '컬러판 쉽게 배우는 인터넷 홈페이 만들기'(정보문화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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