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기에는 동태찌개가 최고입니다." 홈플러스 동김해점 허영범 점장이 동태찌개를 맛보라며 권하고 있다.
멸치·파·북어대가리·표고버섯 꽁지 …
국산 고춧가루와 함께 우려낸 국물 시원
쌈 채소와 봄동 겉절이에 수육 한 접시
고향집 어머니 손맛 닮아 건강한 한끼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기고 마침내 당도한 고향집. 언 손을 후후 불며 대문을 연다. 인기척을 느낀 어머니의 목소리가 적막을 깬다. "왔나?" 어머니는 먼 길을 오느라 허기진 아들을 위해 분홍빛 보자기에 싸 아랫목에 묻어둔 밥 한 공기를 꺼내든다. 조금 있으니 고봉밥과 양은냄비에 담긴 찌개, 낮에 장만해 둔 김치, 삶은 수육 등이 상 위에 차려졌다. 세상에 이보다 더 멋있는 밥상이 있을까.

홈플러스 동김해점 허영범(48) 점장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규칙적이고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따뜻한 밥 한 끼가 생각 날 때면 '고향식당'을 찾는다.
 
삼방동 신어지구대 바로 옆에 위치한 고향식당은 홈플러스 동김해점에서도 걸어서 5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되자 고향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허 점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고향식당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본사 직원들이나 다른 지역에서 친구들이 오면 늘 이곳을 찾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 그 이상의 정성을 맛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죠."
 
허 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향식당 주인 서업순(59·여) 씨가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허 점장이 '고향정식'을 주문하자 서 씨는 "맛있게 만들어드릴게요"라고 대답한 뒤 주방으로 들어갔다.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허 점장은 1995년에 삼성에 입사했다. "제가 대학생활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어요. 삼성 입사 후 삼성생명으로 발령이 났죠. 그러다 자동차마니아였던 선배를 따라 삼성자동차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풍요는 잠시. 1997년에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삼성자동차도 휘청거렸다. 그리고 허 점장에게는 '퇴직' '잔류' '복귀' 3개의 카드가 주어졌고, 허 점장은 첫 발령지였던 삼성생명으로 복귀했다.
 
1999년 4월 삼성테스코㈜와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의 합작투자에 따라 홈플러스㈜라는 대형 할인점이 문을 열었고 2001년에 허 점장은 홈플러스 서부산점 CS(고객서비스) 파트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과 테스코가 운영시스템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사내 게시판을 보니 홈플러스 서부산점 사원을 모집하고 있더라고요. 새로운 일이 하고 싶어 지원을 했지요."
 
허 점장은 함안, 창원 등 여러 지역을 돌며 근무하다 2011년 2월 동김해점 점장으로 왔다.

그러다 1999년 5월, 삼성그룹의 구조조정 탓에 지분의 대부분이 테스코로 넘어갔다. 현재는 테스코의 지분이 100%이다. 따라서 홈플러스는 외국계 기업이라고 해야 옳다.
 

▲ 싱싱한 제철 재료로 만들어진 '고향정식'. 봄동 겉절이, 열무김치, 수육 등이 입맛을 당긴다.
허 점장이 지나온 과정을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고향정식'이 차려졌다. 봄동 겉절이, 열무김치, 잘 삶긴 수육, 각종 쌈 채소 등이 한 상 가득 올라왔다. 여기에 양은냄비에서 팔팔 끓인 동태찌개가 가세했다.
 
음식 자랑을 해달라는 허 점장의 요청에 서 씨는 "집에서 해 먹는 그대로 만들어 내오기 때문에 비법은 없다"며 겸손해 했다. 서 씨는 그러면서도 "사실 제철 재료만큼 건강에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쌀은 생림면 마사리에서 직접 농사지어 얻은 것이다. 청국장도 친동생이 직접 띄운 걸로 끓인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먼저 쌈 채소에 봄동 겉절이, 생마늘, 쌈장, 수육 한 점을 올려 싸 먹었다. 너무 무르지 않고 알맞게 잘 삶긴 수육에서는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 않았다. 서 씨는 "돼지고기를 삶을 때 파뿌리, 양파껍질, 된장, 소주를 넣는다. 누린내를 잡은 비법"이라고 설명했다.
 
▲ 멸치, 파, 북어대가리 등으로 만든 육수에 국내산 고춧가루를 보태 맛을 낸 동태찌개.
허 점장은 동태찌개 한 숟갈을 떠먹고 나더니 "감기가 걸린 직원이 있으면 고향식당에 데려와 동태찌개를 먹여요. 팔팔 끓인 동태찌개 국물을 후루룩 먹다보면 감기가 싸악 달아나거든요"라며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국내산 고춧가루로 맛을 냈다는 동태찌개의 국물은 멸치와 파, 북어대가리, 표고버섯 꽁지 등을 몇 시간 동안 우려내 만든다는데,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감칠맛이 남달랐다. 그러면서 목 뒤로 땀방울이 흘러내려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허 점장이 말을 이어갔다. 허 점장은 고객이 불쾌해 했을 때, 무조건 사과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허 점장은 "대형마트의 취지는 저렴한 부지에 건물을 지어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형마트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 경쟁이 격화되면서 서비스가 강화됐고 고객이 갑, 직원이 을인 방향으로 서비스 문화가 잘못 형성됐다. 근무복만 벗으면 직원들도 이웃사촌인데 '을'이 '을'을 나무라는 서글픈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허 점장은 그러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인터넷의 물품가격 차이는 인건비, 운영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고객들은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홈플러스 동김해점은 내외동의 서김해점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허 점장은 오히려 작은 규모의 점포가 친근한 이웃사촌 같은 점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허 점장은 "가격을 차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안으로 근무 중에 점포를 돌아다니면서 직원과 손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님'부르기 캠페인을 통해 직원을 직급이 아닌 ○○님으로 부른다. 직원이 존중받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손님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한 끼 식사를 맛있게 마치고 나자 서비스라며 서 씨가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들고 왔다. 따뜻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면서 허 점장은 "어느 지역에 근무하든 지역신문은 꼭 챙겨 본다. <김해뉴스>에는 김해의 모든 소식이 들어 있더라. 김해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면서 "다음에는 우리 고향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어보자. 맑은 경상도식 추어탕인데 숙취 해소에 참 좋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고향식당 /삼방동 679-8. 055-336-0420. 고향정식·동태찌개(2인 이상)·추어탕 7천 원. 청국장(2인 이상) 8천 원.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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