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통 화덕 안에서 이글거리는 장작 숯불
초벌구이 삼겹살 뼈째 올려 구워
껍데기는 쫀득 향긋한 겉절이 겸해
삼겹·갈비살 감칠맛

호젓한 자연풍광에
바비큐·겉절이·국수
환상의 '삼합' 명불허전


'녹슨드럼통'은 9년 전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시작됐다. 도심에서 벗어난 변두리임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이 퍼져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금은 오히려 부산 서면·남포동·해운대, 경남 창원 등의 도심으로 체인점을 늘려가고 있다. 김해 직영점은 작년 연말에 문을 열었다. 본점인 대저점은 형인 장종철(36) 대표가, 김해점은 동생인 장종진(35)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치열한 외식시장에서 '녹슨드럼통'이 성공한 배경에는 돼지고기 소비에 관한 한국인의 특별한 취향이 있다. (사)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에서 편찬한 '식육편람'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2009년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19kg이다. 닭고기(9.6kg)와 소고기(8kg) 소비량을 합한 것 보다 많은 양이다. 2005년 이후 닭고기가 소고기 소비량을 추월하기 시작했지만 돼지고기는 1위 자리를 한번도 내준 적이 없다.
 

돼지고기는 크게 안심·등심·목심·앞다리·뒷다리·삼겹살·갈비 등 7개 부위(대분할)로 나눈다. 이를 다시 나누면 22개 부위(소분할)로 세분화 된다. 이렇게 다양한 부위가 있지만 한국인이 소비하는 돼지고기의 50% 이상은 삼겹살이다. 일반적으로 110kg인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고기의 양은 50kg 내외, 이 가운데 삼겹살은 10kg 정도를 차지한다. 수요는 50%가 넘는데 공급은 20%에 불과하니 삼겹살이 '금겹살' 대접을 받는다. 부족한 공급량을 국내에서 생산하려면 1년에 도축되는 돼지의 수를 1천400만 두에서 2천500만 두로 늘려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해마다 10만 톤 이상의 삼겹살을 미국, 칠레,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일년 중 삼겹살 값이 가장 비싼 시기는 7~8월 휴가철이다. 수입량 또한 이때를 대비해 점차적으로 늘어난다. 휴가 때 빠지지 않는 메뉴가 삼겹살이다. 여름이 되면 삼천리 금수강산은 온통 고깃집으로 변한다. 맛·편의성과 더불어 야외에서 연기를 피우며 고기를 구워 먹는 바비큐에 대한 '로망' 때문이다.
 
변두리에서 돼지고기 장작바비큐 전문점을 표방한 '녹슨드럼통'은 돼지고기에 대한 '선호도', 삼겹살에 대한 '애착', 바비큐에 대한 '로망'이라는 고객의 요구를 정확하게 읽었다. 하지만 이는 기본일 뿐이다. 외식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정도 시장분석은 한다. 관건은 이렇게 파악된 소비자의 요구를 어떻게 구체화 하느냐에 달려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지만, 소문난 음식점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첫 번째 해답은 상호에 있다. 말 그대로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화덕을 만들고, 드럼통 주변으로 스테인리스로 선반을 둘렀다. 수 백만 원이 넘는 수입 명품 바비큐그릴이 아무리 좋다 해도, 한국인의 감성 앞에서는 이 드럼통 화덕을 이길 수가 없다. 한적한 야외에 층고가 높고 사방이 훤히 뚫린 건물을 짓고, 바닥에는 자갈을 깔고, 드럼통 화덕을 놓으니 1년 내내 휴가철 바비큐파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다음은 고깃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고기. '녹슨드럼통'은 경남 창녕군의 계약 농가에서 사육·도축한 돼지고기의 삼겹살(대분할 기준)만을 사용하다. 생고기의 상태를 보니 껍데기의 두께가 얇고, 지방층과 근육층의 분포가 고르며, 지방색은 희고 고기색은 선홍빛에 윤기가 흐른다. 질 좋은 돼지고기의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고기 중량에 뼈까지 포함된 것을 생각하면 가격이 좀 비싼 게 아닌가 싶다가도, 생고기를 확인하고 보니 오히려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중에 유통되는 삼겹살은 갈비뼈(늑골)를 제거한 상태지만 '녹슨드럼통'에서는 바비큐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갈비뼈가 붙은 채로 사용한다. 따라서 하나의 부위로 세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우선 초벌구이 한 삼겹살 덩어리가 석쇠 위에 올려지면 껍데기가 붙은 바깥 지방층부터 잘라내고, 다음으로 갈비뼈와 삼겹살을 분리한다. 처음에는 껍데기를, 다음에는 삼겹살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뼈에 붙은 살점을 공략하는 것이 순서 혹은 요령이다.
 
단골은 말할 것도 없고, '녹슨드럼통'을 처음 찾는 고객도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이 껍데기 맛이다. 껍데기와 지방이 붙은 덩어리라 기름지고 느끼할 것 같은 선입견은 여지 없이 무너진다. 껍데기를 입에 대지도 않던 사람들 조차 생각을 바꾸게 한다. 취재에 동행했던 일행들까지 "대체 지금까지 뭘 먹었던 거야?"라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느끼하기는커녕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쫀득쫀득한 식감의 종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생고기 자체의 등급이 높고 숙성이 잘된 것이 주된 이유겠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비법이 더 있다.
 
우선 '녹슨드럼통'은 주문 받은 고기를 20분 정도 초벌구이를 해서 낸다. 따라서 예약이 필수다. 숙련된 직원이 불 조절을 해가며 진득하니 구워내기 때문에 기름이 충분히 제거된다. 보통 1Kg의 고기를 초벌구이 하면 150~160g 정도의 기름이 빠져 나간다고 한다. 손님은 이렇게 구워진 고기를 살짝 익혀 먹기 때문에, 태우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바비큐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연기 또한 많이 줄어든다. 헌데 이 과정에 사용되는 연료가 특이하다. 즉석에서 장작을 태우고 남은 숯을 사용한다. 이러려니 음식점의 입지가 도심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다. 국내산 참숯은 단가가 맞지 않고, 수입 숯이나 열탄은 신뢰할 수 없어 선택한 방법이라지만, 이 방법이 또한 고기 맛을 거든다. 즉석에서 만든 숯이다 보니 나무의 향이 남아있고 이것이 일종의 훈제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고기의 누린내가 효과적으로 제거되고 맛은 활성화 된다. 서양식 바비큐에서는 이를 위해 숯과 함께 사과나무 등으로 만든 '훈제칩'을 사용하기도 한다.
 
'녹슨드럼통'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고소한 향이 후각과 침샘을 자극한다. 향의 진원지가 어딘가 따라가보면 뜻밖에도 겉절이다. '뭔 겉절이에서 이리 좋은 향이...' 싶어 맛을 보면 새콤·달콤·짭조름·고소함이 사거리 한복판에서 사중 추돌사고를 일으킨 느낌이다. 절묘한 맛이다. 장종진 대표에게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사용하는 채소를 전부 강서구 등구마을에 있는 본가에서 재배하고, 인천에 있는 지인이 짜서 보내오는 참기름이 좋을 뿐 별다른 비결은 없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결인데 왠지 뭔가 더 있을 듯싶다. 재차 물었더니, 정 못 믿겠거든 주방으로 가서 직접 확인해 보란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방으로 달려갔다. 설탕·고추가루·간장·식초·참기름이 전부다. 어느 가정에나 있는 기본 양념이다. 주방 아주머니가 만드는 모습을 눈으로 익혀 뒀다가 따라 해봤다. 사용한 양념의 품질이 훨씬 좋은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맛이 안 난다. 하기야 한두 번 보는 것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나 식당 차리고 아무나 성공했을 것이다. 아무튼, '녹슨드럼통'에서는 리필 가능한 겉절이만 열심히 먹어도 반 본전은 뽑는다.
 
고기가 마무리될 즈음 장 대표가 국수 한 그릇을 권한다. "저희 집은 바베큐·겉절이·국수가 삼합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육수 맛이 특이하다. 멸치라고 하기에는 진하면서도 비린 맛이 없고, 디포리라고 하기에는 구수하고 개운하다. 둘을 적당히 섞어나 싶었는데 장 대표의 말이 뜻밖이다. "집에서 어머님이 해주시던 방식 그대로 하는데, 멸치 대신 청치라는 건어물을 가마솥에 끓여서 육수를 냅니다." 고깃집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는 없지만, 이 국수면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별미다. 기름진 입맛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마시듯 비우게 된다.
 
명불허전이라 했던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얄미울 정도로 구조가 잘 갖춰진 고깃집이다. 이러니 9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토록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생림면 윗안금에 위치한 '녹슨드럼통'의 진정한 매력은 따로 있다. '안금'은 지형이 거문고처럼 생긴 좋은 풍수라 해서 붙은 지명이다. 남으로는 분성산이, 동으로는 신어산이 펼쳐진다. 청명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인 낙남정맥이 지난다. 그 바람이 각별하다. 고기 굽는 연기로 가득한 속에서도 그 바람의 청명함은 또렷이 구분된다. 돼지고기 보다 바람이 더 좋은 안주 역할을 한다. 안주가 좋으니 취하지도 않고 하릴없이 권주가만 흥얼거린다. 어느 순간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가, 또 어느 순간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튀어 나온다. 어느 노래건 기막히게 어울린다. 봄바람에 날리는 고기연기, '녹슨드럼통'의 진정한 매력은 요맘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Tip. 메뉴와 연락처 ────────

▶돼지바비큐는 2~5인 단위로 판매하고 가격은 3만5천~8만8천원이다. 술과 추가 메뉴 등을 고려했을 때, 1인당 2만5천원 정도의 예산을 책정하면 적정 선이다.
▶영업시간
평일 오후 5~11시, 토·일요일 오전 12시~오후 12시 (사전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주소 : 김해시 생림면 나전리 73의 6
▶연락처 : 055)326-9599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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