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끝났다. 당선한 사람은 하늘에 닿을 듯한 승리감을 느낄 것이고 낙선한 사람은 절망감을 느낄 것이다. 인생에 운을 얻고 못 얻는 것 역시 개인의 능력이 시기와 맞아야 한다. 따라서 낙선이 영원한 패배의 징표도 아니고 당선이 영원한 승리의 깃발도 아니다. 낙선한 사람이 이번 패배를 계기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이정표를 세운다면 희망찬 출발의 계기일 수 있고 당선한 사람이 그 기분에 취한 채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패배의 전초일 수도 있다. 생은 신이 준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인류는 한 사람의 생이 끝나고 난 뒤에도 역사가 있어 그 인생을 평가한다. 고향에서 그 역량만큼 예우받지 못하고 있는 이미 고인된 국민시인 이은상의 시집을 읽다가 '백비'라는 작품을 발견하고 거듭 우리 생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있다.
 
'보련산 깊은 산골에 벙어리 성자가 있다/ 흔들며 물어 보아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영원한 침묵의 설법을 가슴으로 듣고 간다'
 
충북 진천 보련산에 아무 글씨도 새기지 않은 백비를 보고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묘비명은 그 사람의 인생관을 혹은 그 사람의 생애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페스탈로찌의 묘비명 속에는 "가난한 자의 구조자, 고아의 아버지, 초등학교의 창시자, 인류의 위대한 교육자, 참다운 인간, 그리스도 교도, 모범시민,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사람" 등이 기록되어 있고 버나드 쇼의 묘비명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고 씌어 있다. 또 헤밍웨이 묘비명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네"라고 씌어져 있다. 전자의 경우 남은 사람들이 쓴 비문이고 후자의 두 비문은 본인들이 써 두고 간 것으로 유머러스하다.
 
시인 조병화는 그의 묘비명으로 작품 '꿈의 귀한'이 있는데 내용은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이다. 또 이호우 시인의 경우 그의 묘 앞엔 묘비명이 세워져 있지 않지만 생전에 쓴 묘비명이란 제목의 작품이 있다. "여기 한 시인이 비로소 잠들었도다. 벼에 저리도록 인정을 울었나니/ 누구도 이러니 저러니 아예 말하지 말라"이다. 이처럼 다양한 묘비명이 있지만 비문은 대체로 망자의 생애를 기록한다.
 
선거 역시 생애의 한 과정이다. 그리고 선거는 험난한 세상에 흔히 있는 파도타기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때의 바람 때문에 유능한 후보자가 상처를 입기도 하고 책임없는 정상배가 축배를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선거를 그렇게 과소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대변인으로 신뢰를 얻기위해 노력하라는 뜻이다.
 
당선자의 숙제 또한 적지 않다. 선거 기간에 스스로 제시한 공약도 공약이지만 민심이 제시하는 말없는 요망 사항도 있을 것이다. 기간은 길지 않다. 당장 내년에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약 이상으로 당선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겸손과 진정성이다. 선거에 승리한 공직자들이 흔히 편가르기에 앞장선다거나 자신의 선거구를 중세의 봉토처럼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가끔 있다. 또는 산적한 국사와 지역구의 현안 해결 대신에 자신의 입지를 위해 권력의 문전만 기웃거리는 정치행상도 있다.
 
그러나 민초들은 정치는 바른 것(政者正也 )라는 공자의 명언을 지금도 믿으려 하고 있다. 기호와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투표지 앞에 서면 유권자의 손은 떨린다. 훌륭한 대변자, 겸손하고 진지한 인격자, 당당하고 책임있는 실천가의 모습을 그리며 그 기원을 담아 한표를 행사한다. 그 불립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 그 기원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당선 자격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 생애가 완성된다면 멋진 묘비명이 그의 생애를 상찬(賞讚)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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