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담은 증오심은 고통의 뿌리
용기를 가지고 용서의 관용 마주해야


당신이 무슨 일로 누구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당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일로 인해 혹은 그 사람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며 지냈는지 그것도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수없이 많은 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때때로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주체할 수 없이 올라오는 분노를 견디고 있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도 씨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남들처럼 온 몸을 뒤흔들며 웃지도 못하고 온전한 행복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일상의 작은 즐거움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하지 못하는 그 미움이 고스란히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당신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당신에게 만이 아닐 것입니다. 상관도 없는 가족, 배우자와 아이들에게까지 그 상처는 전염이 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쉽게도 말을 합니다. '용서하라'고, 그리고 '잊으라'고. 하지만 막상 누구도 당신의 자리에 서 보지 않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너무나 어렵겠지만 첫째는 용서하지 못해서 생기는 그 고통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마주 서야 합니다. 용서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하면 미움의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다치기 때문입니다. 절망과 고통을 서서히 부드럽게 드러내는 일이 바로 용서의 시작이고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엘리스 밀러는 "분노와 통곡을 충분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의무감에서 하는 용서는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용서는 상처에 대해 충분히 애통해하고 아파한 결과로 저절로 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누구에겐가 털어놓으십시오. 당신의 고통과 분노와 절망을 혼자 삭이면서 겉으로는 웃는 피에로의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야기하십시오. 이미 드러난 상처는 더이상 상처가 아닙니다. 아니, 상처라 하더라도 이미 아물기 시작한 상처입니다.
 
그리고 미움의 대상을 떠올리면서 "용서한다"고 얘기해보십시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소리내어 "용서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 간단합니다. 그건 '내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대상이 누구든 미움과 분노를 마음에 품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다른 이들의 용서를 돕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처럼 힘들어할 때 그 옆에 있어 주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내가 안다. 내가 너의 마음을 다 안다"라고 말해주십시오. 세상의 어느 누가 당신보다 더 그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때 억지로 용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느새 고통이 저만큼 물러나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은 그 모든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리고 그간 고통으로 자기를 힘들게 했던 자신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내가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을까? 바보같이'라든지 '아!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같은 생각들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이제는 자신을 자유롭게 해 줄 때입니다. 스스로에게도 "용서한다"라고 말해주십시오. 그렇게 당신이 평화를 지니게 되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갖게 될 것이고, 당신이 행복해서 웃으면 그 웃음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갖게 될 선물이 될 테니까요.
 
아름다운 새 봄에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김해뉴스
박미현
한국통합TA연구소
관계심리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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