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위함이 아무리 많은들 뭣할까
쌓아놓지 말고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외국에 갈 때마다 넋을 놓고 쳐다보는 광경이 있습니다. 두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노부부들의 모습입니다. 머리는 하얗고 등은 굽었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자신들의 보폭에 맞춰 두 손을 맞잡은 채 산책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가끔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어깨를 쓰다듬기도 하고, 또 가끔은 멈춰 서서 가볍게 입을 맞추기도 하는 모습은 외국에서는 일상적이라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그것을 몰래 보는 저는 왠지 입가에 웃음이 나면서 조금은 민망해집니다.
 
그러면서, 길을 걸어갈 때는 약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던 우리 부모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걸어가다 할 말이 생각나면 앞서가던 아버지가 기다리거나, 아니면 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보소, 보소" 하고 뒤따라가던 모습이 겹쳐서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손을 잡거나 쓰다듬기는 고사하고 칭찬 한마디라도 하면 팔불출이라고 놀림을 당하던 옛날이다 보니 외출을 하더라도 몇 시간 동안 서로 말 한마디 않고 돌아오기 일쑤였지요.
 
왠지 새삼스럽게 우리 부모들은 부부 사이에 어떤 '스트로크'를 주고 받았을지 궁금해집니다. 스트로크라는 것은 '어루만짐'입니다. 말로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눈빛으로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두 팔로는 온기를 전해주고 온 몸으로 사랑을 전해주는 어루만짐입니다.
 
사람은 이러한 스트로크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말로 하는 칭찬이나 인정도 있지만 아기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 연인들의 신체적인 접촉, 부부생활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상대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일 때는 넘치던 스트로크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듭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더이상 아무도 어루만지거나 안아주지를 않습니다. 가끔 잔정 많은 자식이 슬쩍 손이라도 잡아주면 그것만으로도 할머니들은 눈가를 훔칩니다.
 
'스트로크의 기아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그리고 노인이 되어간다고 신체적인 접촉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라 젊을 때보다 더욱 필요합니다. 말과 신체적으로 스트로크를 받지 못하고 살다 보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서툴러지고 서러워지며, 억울한 일이 있어도 마음에만 쌓아 놓아 화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에 아무리 많은 사랑의 말이 넘치고 감사의 말이 넘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표현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아무리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한번 잡아주는 손이 더 따뜻한 법입니다.
 
자식들이 오면 근엄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권위를 보이려 하고 늘 교훈을 입에 달고 살지만, 손자들이 뛰어들어와 "할아버지" 하고 안기면 같이 아이가 돼 천진한 웃음을 짓는 우리 아버지들에게 "아버지 저도 안아주세요" 하고 두 팔을 벌려 봅시다. "싱겁기는"이라고 받아칠지도 모르겠지만, 꼭 안고 몇 초만 마음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아마 그날 지루한 교훈은 듣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정성이 더 깃든 밥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내 아이들이 나중에 내게도 그렇게 해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길거리에서 흰머리에 등이 굽은 남편으로부터 입맞춤은 받지 못할지 몰라도 아이들이 나를 볼 때마다 "어머니" 하면서 안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열심히 살아온 보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의 말
화병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주로 쌓인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또는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느껴지는 고통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노인이 돼 갈수록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적어지고, 쓰다듬어 주거나 손을 잡아주거나 하는 신체 접촉도 적어집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넉넉해도 이렇게 스트로크 가 적어지면 우울증, 화병 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비싼 선물이 효도가 아니라 따뜻하게 만져주는 손길, 그 마음을 알아주는 대화가 더욱 값진 선물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감동시키는 자녀의 말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간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 이 말과 함께 잡아 드리는 손길이 그 어떤 건강보조식품보다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

김해뉴스

박미현
한국통합TA연구소 관계심리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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