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네 작품 '인상:해돋이'(1873)
좀 사치를 했다. 파리 시내. 페르 라세즈 묘지 입구에서 흰 장미꽃 두 송이를 샀다. 꽃을 들고, 슬슬 걷다 보면 보이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다. 앞서 가봤던 몽마르트나 몽파르나스 묘지에 비해 페르 라세즈 묘지는 무척 넓다. 2시간을 넘게 헤맸다. 쇼팽도 보이고 에디트 피아프도 보이는데 이응로와 모딜리아니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포기. 장미꽃을 버리고 돌아서 나오는 길. 그제야 입구 쪽 상점에 상세한 묘지 지도 파는 게 보인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비가 왔다.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도 요란했다. 아내와 아이가 잠든 이른 아침. 묘지 지도를 챙겨 들고, 호텔 주인에게 우산을 빌려, 다시 묘지를 찾아갔다. 도착하니 오전 7시. 문은 8시에 연단다.

인상파 비롯된 작품 '인상:해돋이'
예술적 성취 대미격인 '수련' 연작 등
단일 미술관 중 모네 유작 최다 소장

무섭게 내려치는 천둥번개 속에서 박쥐우산 하나로 묘지 담 벽에 기대 비를 피했다. 우산을 받아도 비바람이 들이치기는 마찬가지인 폭우 속에서 조금 감상적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묘지의 동남쪽 벽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1871년 72일 간의 짧은 파리코뮌이 끝난 뒤 코뮌파 인사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동베를린 간첩조작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바 있는 이응로 화백이 이곳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우연으로 겹쳐 갈피 없는 여러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빗속에서 하릴없이 삶이란 뭔지, 신념이란 뭔지, 이데올로기란 뭔지, 하는 사이에 비가 그치고 8시가 되었다. 첫 번째 입장객이 되었다. 우선 모딜리아니에게로 갔다. 소박한 한 조각의 화강암이 그의 집이다. 모딜리아니는 그와의 사이에 이미 딸 하나를 두고 또 한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그가 죽은 그 다음날 자기 집 5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해버렸던 불꽃같은 여자 잔느와 함께 잠들어 있었다. 묘비명은 이랬다.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년 7월12일 리보르노에서 출생. 1920년 1월24일 파리에서 사망. 영광을 성취하려는 순간에 죽다. 쟌느 에뷔테른느, 1898년 4월6일 파리에서 출생.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사망. 최후의 목숨까지 바친 충실한 동반자'.
 

▲ '눈길을 달리는 기차'(1875)
마르모탕 미술관 가는 길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도를 보며 걷는다. 지도조차 온통 초록이다. 한적하고 숲이 우거진 공원 길. 길 옆으로는 조용한 주택가다. 비가 그쳐 맑아진 대기에 햇살이 따갑다. 초록의 빛 그늘 밑으로 지팡이를 짚고 산책 나온 노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놀이터에 아이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아낙의 모습도 보인다. 지금 햇빛에 반짝거리는 초록이 무성한 이 길을 조금 더 따라 가면 파리의 심장으로 불리는 거대한 숲, 파리 시민들의 휴식처 불로뉴 숲이다. 지하철역에서 미술관까지는 10분 남짓. 공원길, 주택가 작은 골목 한쪽에 자리 잡은 고풍스런 건물. 오늘 찾아가는 마르모탕 미술관이다. 닫혀 있는 두 짝의 검은 문. 문 양 옆으로 붙여 놓은 모네의 그림 사진이 없다면 들어서기 조금 망설였을 것이다. 밖에서 보면 규모가 좀 큰 여염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단. 육중해 보이는 대문을 밀고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 본다. 미술관 맞다. 저쪽에 매표소도 보인다.
 
▲ '산책-아르장티유 근처'(1873)
모네 전시실은 지하 1층이다. 계단을 내려가 '인상:해돋이'(1873). 인상주의란 말이 비롯된 그림 앞이다. 1874년 훗날 '제1회 인상파전'이라 부르는 전람회에 전시된 이 그림을 보고 르루아라는 비평가가 '예술의 본질은 추구하지 않고 인상 같이 표피적인 부분만 추구한다'며 인상이란 제목에서 따와 비아냥조로 '인상주의'라 이름 붙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네와 모네의 친구들이 조롱으로 붙인 이 인상주의란 이름을 자신들의 유파로 그냥 받아들여 버린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기본 전제는 항상 사물의 사실적 묘사와 주제의 명확한 표현에 있었다. 이제 새롭게 등장한 인상파라 부르는 일군의 화가들은 아카데믹한 주제나 신화 대신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나 가까운 교외의 풍경,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소재로 삼았다. 기성화단의 눈으로 보면 별 의미도 없는 주제를, 그리고 게다가 전혀 사실적이지도 않는 모습으로 대충 그려대는 엉터리 같은 친구들이 출현한 것이다. 하지만 인상파의 그림이 곧 새로운 시대임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단지 기법상의 새로움이 아니라, 자신의 눈에 비친 사물의 모습을 스스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즉 '개성'이라 부르는 당대 막 싹트기 시작한 모더니즘 근대적 사실주의 정신의 출발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 프랑스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수련 천지다. 마르모탕 미술관 지하에 가장 많은 그림은 단연 '수련'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이어 또 하나의 거대한 수련 연못이다. 높은 예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을 떠돌던 모네는 1883년 파리 북쪽 센 강변의 지베르니에 정착했다. 지베르니에 정착한 그에게 경제적 안정과 예술가적 명예를 함께 안겨준 것은 '노적가리'(1888~1891)로 시작된 빛의 변화를 포착한 연작물이었다. 모네는 '포플러'(1892) 연작, '루앙 성당' 연작(1892~1898)을 잇달아 발표하며 비로소 경제적 성공과 예술적 성공을 함께 이루었다. 그리고 또 다른 연작인 '수련'을 그리기 시작하여 자신의 예술적 성취의 대미를 장식했다. 마르모탕의 모네 전시실은 모네가 말년에 그려낸 다양한 수련의 백가쟁명 경연장이다.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연못의 수련은 세월이 흘러가는 모네의 나이에 따라 조금씩 형태를 잃어가며 마침내는 추상화 되어가는 등 시간에 따라 그리고 빛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모네의 화폭에 담겼다. 단일 미술관으로는 가장 많은 모네 작품이 소장된 마르모탕 지하에 그 다양한 수련의 모습이 선물 보따리처럼 한자리에 모여 있다.
 
▲ '수련'(1916~1919)
연못 밖으로 나왔다. 아니, 1층으로 올라왔다.상점에서 기념품 하나 살까 하고 구경하는데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된 스웨덴 동화작가의 그림책 '모네의 정원에서' 불어판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실제 작가의 입양 딸이기도 한 리네아다. 리네아는 본명으로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에서 수련을 보며 나의 딸아이보다 더 어린 소녀가 스웨덴인 할아버지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영혼의 안식처·휴식 같은 공원, 파리의 공동묘지들

▲ 모딜리아니 묘.
파리의 공동묘지는 어둡지 않다. 숲이 우거져 있고 공원 같은 느낌으로 많은 관광객이 휴식을 겸해 찾곤 한다. 파리에서 가볼 만한 공동묘지는 3군데다. 그중 몽마르트나 몽파르나스 묘지는 작아서 샤르트르나 하이네. 보들레드, 드가 등의 묘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넓은 페르 라세즈 묘지에서는 지도가 꼭 필요하다. 입구에서 구할 수 있다. 페르 라세즈 묘지에는 작곡가 롯시니, 쇼팽, 위고, 에디드 삐아프, 오스카와일드, 아폴리네르(시인), 들라크르와(화가, 파리코뮌 당시 시민군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었다) 발자크, 짐 모리슨(가수, 미국의 록 그룹 도어스의 리더)등이 함께 잠들어 있다.




■ 모네(1840∼1926) ───────

프랑스의 화가. 인상파의 개척자이며 주도적 인물. 파리에서 출생해 노르망디 해안의 르아브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874년에 발표한 '인상: 해돋이'는 보수적인 평론가들에게는 충격을, 화단에는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그 후 '노적가리' '루앙성당' '수련' 연작 등을 잇달아 발표. 인상주의 미술을 완성했다.




■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Musee Marmttan Monet)  ───────

·주소 : 2 Rue Louis Boilly 75016
·전화 : 42 24 0702
·입장 시간 : 10:00-17:30
·휴관 : 월요일
·가는 길 : 지하철 라 뮈에뜨(La Muette)역 하차
·특징 : 미술관 건물은 1882년 미술애호가였던 쥘 마르모땅이 개인 소장품을 보관할 목적으로 구입한 집으로 그의 아들 폴이 2대에 걸쳐 모은 미술품과 함께 1932년 국립미술학교에 기증 되었다. 나폴레옹을 좋아했던 마르모탕답게 나폴레옹 관련 소장품이 많다. 그리고 단일 미술관으로는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상파란 이름을 탄생 시킨 '인상:해돋이' 등이 주요 소장품으로 꼽힌다.
·http://www.marmottan.com






윤봉한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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