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두 아기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습니다. 그 중 한 아기는 거의 생명이 위독한 지경이었지요. 의사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더이상 어쩔 수 없다"고 포기를 할 즈음, 조금 더 건강한 아기가 한 팔로 다른 아기를 껴안았습니다. 그러자 생명이 위태로웠던 아기는 거짓말처럼 살아나게 됐습니다. TV 다큐멘터리에서 이 감동적이면서 짧은 영상을 본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건강한 아기가 허약한 형제에게 주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큰 의미에서 본다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교류분석'이라는 심리학 이론에서는 이것을 '스트로크(stroke)'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서는 필요 없는 나무를 말려 죽이려 할 때 톱이나 도끼를 쓰지 않고 매일 마을 사람들이 나무 밑에 모여 나무를 향해 소리를 지른답니다. "우리는 네가 필요 없어. 그러니 말라 죽어 버려!" 
 
그렇게 나무를 향해 소리를 지르다 보면 어느새 나무가 시들거리면서 말라 죽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아닌 나무에게조차 말이 이렇게 가혹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매일 별 뜻 없이 습관처럼 내뱉는 말들이 자녀에게, 혹은 배우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유아기 때의 스트로크는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음식만큼 중요합니다. 아동심리학자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 받아야 할 것인가의 태도는 유아기 때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아직 채 돌이 되지도 않은 아기에게 엄마는 말을 걸거나 눈을 맞추려 애쓰고, 아기를 볼 때마다 미소를 짓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긍정적인 스트로크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기들은 엄마를 바라보고 방긋 웃기도 하고, 옹알이로 마치 뭐라 답을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며 엄마의 눈을 맞추려 애를 쓰기도 합니다. 엄마 또한 아기로부터 긍정적이고 즐거운 스트로크를 받는 것입니다. 엄마와 아기 사이에 신체적이면서 직접적인 스트로크와 언어적이고 감정적인 스트로크가 동시에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스트로크에도 부정적인 것이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난 당신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라는 말은 충분히 긍정적인 반면에 "당신이 있으면 난 힘이 들고 고달프다"라는 말은 부정적인 스트로크입니다. 또, 말뿐 아니라 째려보는 행동, 때리거나 툭툭 친다거나 하는 행동도 부정적인 스트로크라고 할 수 있지요. 문제는 사람들은 스트로크가 전혀 없는 상태보다는 이러한 부정적인 것이라도 원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동생이 태어나서 집안의 관심을 독차지한 경우 형은 흔히 '퇴행'이라 불리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변을 갑자기 못 가린다든지, 동생을 괴롭힌다든지 혼날 짓만 골라서 합니다. 혼이 나면서, 즉 부정적인 스트로크라도 받음으로써 동생에게 빼앗겨버린 관심을 다시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소년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혼자 산 위에서 양을 치고 있으니 얼마나 심심하고 쓸쓸했을까요? 아마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고 했어도 부모는 허락을 안 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양만 돌보다 보니 비록 거짓말을 해서라도 사람들의 관심, 즉 부정적인 스트로크라도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모두 몰려와서 거짓말인 것을 아는 순간 혼이 날 줄을 그라고 해서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스트로크가 없는 상태보다는 그런 부정적인 것이라도 관심이라고 여기면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스트로크에 익숙해지면 청소년들은 비행에 빠진다거나 폭력, 지나친 외모 집착, 음주나 흡연 등에 빠지게 됩니다.
 
"네가 공부를 잘 하니 참 좋다", "말을 잘 들으니 좋다" 등 조건이 붙은 스트로크보다는 "네가 어떠해도 너를 좋아해" "네가 이렇게 있어 주는 것만도 고마워" 같은 상대 존재에 대한 스트로크가 스트로크 중에서는 왕입니다. 이제부터 아무런 조건도 없이 상대를 인정해주는 무조건 긍정적 스트로크로 주변을 밝게 만들어 보시지는 않으시겠습니까?

김해뉴스

박미현
한국통합TA연구소 관계심리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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