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어는 문화적 전통 속에 얼 담겨
국어기본법 맞게 한글만 표기 강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한글과 병기하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국어기본법의 제정 취지에 따라 한글만으로 표기해야지 한자를 병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5일 김해도서관 1층 만장대실에서 열린 벨라에세이연구회 '6월 강좌'에 초청강사로 참석한 하치근(70) 동아대 명예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한자학자들의 그릇된 주장이 국어교육에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 한글학자 하치근 교수가 '말의 힘' 강의를 마치고 벨라에세이연구회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 교수는 김해와 인연이 깊다. 김해중학교와 김해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동아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또 부산시문화상 수상자회 이사와 한글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삼광한글학술상, 부산시문화상, 석당학술상, 주시경학술상을 수상했다.
 
하 교수는 벨라에세이연구회 회원, 그의 김해여고·동아대 제자 등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특강에서 '말의 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하 교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한글과 병기하자는 주장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그는 "독일의 언어학자 훔볼트는 '모든 언어 속에는 한 겨레의 문화적인 전통 속에서 자라난 얼이 담겨 있다'고 했다. 초등교육은 우리 겨레의 문화와 전통을 중심으로 한 인성교육이 바탕이 돼야 한다. 국어기본법의 규정에 어긋나는 한자·외국어 교육은 적은 것을 얻으려다 많은 것을 잃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일부 한자학자들은 '한자가 인성의 깨우침과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의(義)라는 글자를 알아야 의로운 사람이 되고, 봉사(奉仕)라는 한자를 알아야 봉사를 잘 하는 것인가. 한자를 아예 모르는 사람은 인성이 없다는 말인가. 한자교육을 인성교육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무맹랑한 생각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하 교수는 "우리의 언어생활에 녹아든 한자어는 당연히 우리말이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들이 한자, 외국어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삶의 만족도를 높여갈 수 있다. 한자교육은 중등학교 교육에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 교수는 "하나의 언어를 중심으로 한 '언어공동체'는 인간의 삶과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는 가장 견고하고 의미있는 공동체"라며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이며,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내면적인 정신세계를 이룩하고 윤리적인 실체를 창조한다. 언어철학에서는 이것을 '말의 힘'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창원에서 온 김경숙 씨는 김해여고 20회 졸업생이다. 그는 "김해의 친구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한글학자답게 한글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주셨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글이 인성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와 닿았다"고 말했다.
 
벨라에세이연구회 김경희 회장은 "여고시절 007가방에 책을 잔뜩 넣어다니며 학생들에게 뭘 더 가르쳐줄까 고심하던 하 교수가 좋은 강의를 들려줬다. '말의 힘'에 대한 강의가 글을 쓰고 시를 읽는 벨라회 회원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벨라에세이연구회는 매월 첫 째 주 금요일 오후 7시 김해도서관 1층 만장대실에서 문인 초청 강좌를 연다. 다음달 3일에는 수필가 정목일 씨를 초청한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벨라카페'(cafe.daum.net/12281228)에 공지된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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