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손영순 씨 1984년부터 화단 가꿔
사랑초 등 꽃 외에 매실·잣나무도 가득
다른 입주민들도 함께 호미 들고 동참
초여름 가뭄을 달래주는 가랑비가 내리던 날 회현동 회현아파트 화단에는 섬초롱꽃이 빗방울을 머금은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섬초롱꽃 옆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참나리꽃은 고개를 하늘 높이 들어 단비에 갈증을 해소한다. 회현아파트 화단에는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야생화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파트 뒷마당 작은 텃밭에는 고추, 가지, 상추 등 각종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60가구가 거주하는 회현아파트는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지지 않는 아파트로 회현동 주민들 사이에 유명하다. 꽃과 나무들이 가득한 화단이 조성된 것은 주민 손영순(62·여) 씨의 식물 사랑 덕분이다.
경북 영덕 출생인 손 씨는 1977년 결혼을 하면서 김해로 이사를 왔다. 1984년 회현아파트가 지어진 해 아파트 입주민이 된 그는 나무만 덩그러니 심어져 있는 화단이 썰렁해 보였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꽃와 나무를 심으며 줄곧 아파트 화단을 가꾸고 있다. 손 씨는 "아버지가 꽃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꽃을 좋아하게 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을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꽃과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손 씨 덕분에 회현아파트 화단은 사랑초, 금낭화, 수국, 함박꽃, 모란, 달개비꽃 등 각종 꽃들 뿐 아니라 주목, 회화나무, 단풍나무, 매실나무, 잣나무 등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손 씨는 "매실나무에 매실이 주렁주렁 열리면 매년 아파트 입주민 2명을 선발해 열매를 따서 팔기도 한다. 매실 판매금은 아파트 경로당 어르신들의 식재료비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손 씨의 식물 사랑을 지켜본 회현아파트의 다른 입주민들도 따라 나와 아파트 화단에 텃밭을 만들고 각종 채소들을 심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이면 아파트 입주민들이 호미를 들고 나와 텃밭에 물을 주는 등 텃밭을 가꾼다고 한다.
입주민 김광도(64·여) 씨는 "아파트 화단에 고추, 방아, 부추 등을 심었다. 화단에 채소를 기르고 가꾸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웃었다. 경비원 이종언(72) 씨는 "아파트를 지나던 다른 마을 주민들이 화단에 핀 꽃들을 보기 위해 종종 들르기도 한다. 꽃과 나무를 보고 미소 짓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화단 가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손 씨는 "아파트 화단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꾸다 보니 이렇게 꽃과 나무가 가득한 아파트가 됐다. 누군가가 꽃을 꺾으려고 하면 이제는 아파트 주민들이 화를 내며 꽃을 지킨다. 우리 아파트 뿐 아니라 김해의 모든 아파트에서도 주민들이 합심해 꽃과 나무를 키우며 즐거워하는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