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야외 정원전
박승진 조경가·정상철 건축가 참여
시간의 조각들 모아 추억의 삶 표현

'아버지가 정원을 만드셨다. 봄이 오기 전 목련꽃은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리고. 골목은 온통 꽃의 축제다. 목련이 처절하게 잎을 떨굴 때 쯤, 드디어 마당의 풀들은 푸른빛으로 돋아나고 겨우 내 움츠렸던 아이들을 맞는다. 담장을 넘어 단풍나무며 대추나무며 감나무가 흐드러지고 내 집 네 집 경계 없이 모두의 나무가 된다.'-'아버지의 정원전' 박승진 작가노트 중에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아버지의 정원-어떤 정원에 대한 현고학(現古學)적 사색'전이 오는 11월 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의 '한글정원-마음을 읽는 정원'전에 이은 두 번째 전시회다. 클레이아크는 정원가와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앞으로 5년간 매년 '주제가 있는 정원'을 꾸준히 김해 시민들에게 소개할 계획이다.

▲ 아버지의 손길이 만들어낸 작고 소박한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클레이아크의 야외전 '아버지의 정원전' 전경.

올해의 야외 정원전에는 '스튜디오 디자인 로사이' 대표인 박승진 조경가와 'jsc architects' 대표 정상철 건축가가 참여했다. 아버지의 정원전은 클레이아크의 주전시장인 돔하우스 우측 야외공간에 약 100m² 규모로 조성됐다. 1970년대 도시주택의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집의 정원을 소재로 한 전시이다.

언제부터인가 도시에는 단독주택보다 아파트가 많아졌다. 작은 마당이 있고, 그 마당에 꽃을 피우던 단독주택의 정겨운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아버지의 손길이 만들어낸 작고 소박한 정원을 되돌려준다.

돔하우스를 돌아 걸어가면 하얀 담장이 나타난다. 정원만 보이지만, 집의 형태까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하얀 담장 앞에는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다. 빨간 우편함도 있다. 우편함 안에는 방금 배달된 듯한 편지도 들어 있다. 까만 양철대문은 정원이 잘 보이도록 활짝 열려 있다. 대문 밑에는 야생화도 피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싱싱한 나무, 꽃들이 보인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안에서 누군가가 반가운 목소리로 반겨줄 것만 같다.

정원에 배치된 사물은 모두 흰색이다. 사다리, 개집, 강아지, 화분, 탁자와 의자, 물뿌리개…. 흰색의 사물은 푸른 정원 속에서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슬리퍼 한 짝은 물뿌리개 옆에 있고, 다른 한 짝은 강아지가 가지고 놀고 있다. 정원 한편에는 방금 깎아낸 잔디를 빗질해 모아둔 흔적도 보인다. 아버지가 정원 어딘가에 숨어서 보고 있을 것 같다.

▲ 빨간 우편함은 편지를 넣어두는 세심한 전시연출이 돋보인다

아버지의 정원을 거닐다 보면 누구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도 있다. 정원을 거닐어 본 뒤에는 전시장 주변의 돌 벤치에 앉아 하얀 담장 너머 자신만의 정원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승진 조경가는 "개집, 화분, 탁자와 의자, 버려진 자전거, 사다리, 댓돌 위의 신발 같은 탈색된 사물들은 아득한 기억 저편에 놓인 추억의 편린들이다. 정원이라는 작은 공간에 각인된 저마다의 개인사를 환기시키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클레이아크 전시 담당자는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전시는 단독주택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추억의 장치가 될 것이다. 아파트 세대에게는 획일화되지 않은 주택에서의 삶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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