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오래된 서랍장, 오래된 찻잔, 오래된 바구니, 오래된 함지박…. 여러 사물 이름 앞에 '오래된'을 붙여 보았다. 그러자 평범한 사물이 한순간에 특별한 물건이 되었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애틋한 사연이 배인, 한 시대의 질곡을 겪은 특별한 물건 말이다. 우리가 별 망설임 없이 내다 버렸거나, 어딘가 처박아 둔 채 잊어버렸을 그 많은 물건들의 안부가 가끔은 궁금하지 않은가. 진례면  초전리에 있는 가락고미술경매장에서는 매주 수요일 옛 물건을 사고파는 경매가 진행된다. 오래된 물건들을 만나러 가 보자. 거기에는 언젠가 당신이 내다 버린 할머니의 꽃문양 요강이 있을지도 모른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경매
상인·일반인·교수 등 행사장 북적

나전칠기·소반·함지·쌀뒤주 등 다양
경매사, 물품의 사연 재치 있게 설명

인간·시간·물건 가치가 만든 이야기
사고파는 사람 구분없이 웃음꽃 활짝


가락고미술경매장(대표 한민철)은 진례면 초전리 671에 있다. 부산 강서구 가락동에서 7년 전 쯤 문을 열었다가 4년 전쯤 현재 장소로 옮겼다.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이나 사러 오는 사람, 즉 고미술품과 민속품을 전시판매하는 상인들 외에 일반인들이나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대학교수들도 찾아온다. 도로변에는 큰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옛날 물건 사고팝니다. 옹기, 목기, 골동품, 고미술. 경매일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경매일인 수요일에 맞춰 방문한 탓에 주차장은 차들로 꽉 찼다. 경매장 앞에는 큰 옹기독들이 즐비했다.

경매가 시작된 터라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섰다. 눈에 띈 건 삶은 달걀이 가득한 큼직한 바구니였다. 경매에 참석한 사람들이 출출할 때 먹으라고 경매장에서 제공하는 간식이다. 달걀을 먹으면서 경매를? 뭔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과 미리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정면에서 얼굴 사진 찍지 않기와 경매가격 공개하지 않기. 이번 기사는 오래된 특별한 물건들이 모여드는 '공간'을 주인공으로 하기로 했으니 독자들도 양해해 주시길….

▲ 수요일마다 열리는 가락고미술경매장의 경매장면. 경매사가 시공을 넘나드는 물건,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 물건들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앞쪽에서 경매에 오른 물건을 소개하고 경매가를 외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단층 건물인 경매장의 절반 이상은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락고미술경매장이 보유한 물건들이었다. 경매 현장에 가까이 가려면 물건들 사이를 지나야 했다. 그 물건들부터 찬찬히 살펴봤다.

큼지막하고 묵직한 목가구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나전칠기나 동장식이 달린 옷장과 서랍장, 책장, 쌀뒤주, 궤 등의 목가구에서는 지난 세월의 냄새가 그대로 묻어났다. 큰 가구들 사이로 책상, 좌탁, 소반, 함지, 여러 크기의 목함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를 재단해 정성스레 가구를 만들었을 목공의 손길, 견고하게 짠 그 가구를 들이며 기뻐했을 안주인, 매일같이 만지며 알뜰살뜰 사용하고 닦았을 한 가족의 삶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문이 반쯤 열린 찬장 안에는 가야토기처럼 보이는 토기들이 들어 있었다. 혹시 진품?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그건 가야토기를 재현한 작품일 것"이라고 말했다.

목가구들 사이에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해보라는 듯 재미있는 물건들이 구석구석에 놓여 있었다. 오래된 풍금이 보였다. 예배당에서 새 풍금을 사면서 내놓은 것일까, 아니면 폐교된 어느 산골학교에서 나온 것일까. 예쁜 여교사가 풍금을 치고, 주위에 올망졸망 둘러선 아이들은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동화 같은 장면이 떠올랐다.

얼레 하나가 서안 위에 놓여 있었다. 크기가 크고 무게도 묵직한 걸로 보아 어린아이용은 아니었다. 지난 세월 어느 겨울날, 얼레에 연실을 잔뜩 감고 하늘 높이 연을 날려 올리며 연싸움을 하는 풍속화 한 편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했다. 큼지막하고 네모난 나무함지는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위해 새참을 나르는 아낙네의 바쁜 손길을 떠올려 주었다.

한 둥근 함지 안에는 쇠로 만든 자물쇠와 열쇠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 귀하고 소중한 물건을 넣어둔 궤와 장롱을 채우고 오가며 눈도장을 찍었을 가장의 단단한 마음, 딸을 시집보낼 때 쓰려고 옷감이며 패물을 하나씩 마련하고 자물쇠를 걸어 간직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그 위에 세월까지 실렸는지 제법 묵직했다. 

질그릇으로 만든 떡시루는 또 어떤가. 시루에 꼭 맞는 솥을 올리고 떡을 찌는 어머니 옆을 지키고 앉은 어린 아들, 장작불을 지피겠다는 핑계로 시루 옆을 떠나지 않았던 조무래기 꼬마들을 다시 불러내 주었다. 김이 새는 걸 막느라 시루와 솥의 경계 부분에 붙여둔 밀가루 시룻번을 조금이라도 먼저 떼어먹고 싶어 머리를 들이밀던 그 꼬마들 말이다. 완성된 떡을 한 조각 얻어 골목길로 나서면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던 동네 개구쟁이들이 몰려들고, 떡을 손에 든 아이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기꺼웠으리라.

놋화로에는 장죽 담뱃대를 물고 손주의 재롱을 지켜보던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새겨졌을 것이고, 그 옆에 놓인 놋요강에는 늙은 아버지의 오줌을 아침마다 말끔히 씻어낸 효심 깊은 아들의 사랑도 어른어른한 흔적으로 남았다. 방짜유기 식기세트는 상 하나에 그득했다. 어느 몰락한 양반집에서 양식과 바꾼 아픈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

민요며 판소리, 신식가요를 담은 레코드를 돌리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을 것 같은 축음기는 지금 보아도 신기하고 흥미롭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에는 귀한 몸이었을 라디오도 보였다. 자전거 타이어 공기 펌프기도 있었다. 가벼운 요즘 펌프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중요한 기계처럼 보였다. 시골마을에서 읍내에 있는 학교를 자전거로 통학했던 추억이 있는 중년 남성들이라면 대번에 알아볼 물건이었다.

물건 보는 재미도 좋지만, 경매장에 왔으니 경매 장면도 봐야지 싶어 경매현장 뒤쪽 의자에 앉았다.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 그리고 민속품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이 경매에 참여하고 있었다. 얼핏 보아 60여 명은 돼 보였다. 경매사 김종윤(50) 씨는 고미술 관련 일을 29년, 경매 관련 일을 20년 정도 했다고 한다. 가락고미술경매장을 비롯해 부산·경남 쪽의 고미술, 민속품 경매장을 일주일 내내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경매사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김 경매사의 말을 들으며 물건을 보느라 경매대로 집중됐다. 그래서 조용했고, 한편으로는 긴장감이 흘렀다. "약작두가 나왔습니다. 약초나 약재들을 자르는 데 썼던 작두죠. 지금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인 양 경매사는 자연스럽고 또 재미있게 물건을 소개했다. 그는 작두날을 찰칵찰칵 작동시켜 보였다. 경매장 한 쪽 벽에는 경매에 나온 물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모니터가 있었다. 경매 물건이 올라오는 큰 탁자와 맞붙은 책상에 앉은 직원은 낙찰과 유찰 여부, 낙찰가를 실시간으로 정리하느라 바빴다.

한동안 경매가 진행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점심 무렵. 경매장 측에서 준비한 식사로 점심을 먹고, 달고 시원한 수박까지 후식으로 먹고 난 뒤 다시 경매가 이어졌다.

도자기, 박달나무 오리 한 쌍, 유병, 작은 상자 가득한 복주머니, 동으로 만든 수반, 무쇠절구와 절굿공이, 일본 도자기접시, 다기 세트, 그림, 유담포, 이동식 화로, 주전자, 화병, 주물 오뎅솥, 중국 화병, 새장, 장기 알, 나무 지통, LP 도너츠판, 일제 카메라 삼발이, 꽃무늬 요강, 워낭…. 시공을 넘나드는 물건,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 물건들이 끊임없이 경매에 나왔다. 어떤 물건은 낙찰되고, 또 어떤 물건은 유찰됐다. 낙찰된 물건은 즉시 주인에게 넘어갔다. 경매장 직원들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낙찰 받은 주인을 정확히 찾아 물건을 전달했다.

▲ 옛사람들이 사용했던 각종 가구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경매사의 말에는 재치가 넘쳤다. "믿거나 말거나 악어가죽이랍니다"라며 핸드백을 소개할 때는 장내에 웃음이 흘렀다. 말 한마디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오동나무 4단 서랍장입니다. 칠이 아주 좋은데, 안타깝게 모서리의 칠이 조금 벗겨졌군요. 뒷면은 합지입니다." 경매사는 순식간에 물건의 상태를 정확하게 살펴보고 전달했다.

"이중섭의 그림이라고 합니다"라는 말끝에 한 사람이 "진품입니까"라고 물었다. "저는 감정사가 아닙니다"라는 대답에 다시 웃음이 터졌다.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이중섭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된다"는 말이 나오자 또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경매장에는 웃음과 긴장이 흘렀다. 한 직원이 '아이스 바'가 가득 든 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다 큰 어른들이 저마다 아이스 바를 하나씩 들고 진지한 눈빛으로 경매에 참가하는 장면도 볼 만(?)했다.

종일 경매가 진행되지만 자신이 찾는 물건이 빨리 안 나올 때는 지루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앉은 의자에서 잠시 졸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기다리는 물건들이 나오면 눈을 번쩍 뜨고는 경매자의 말에 반응했다. "몸이 느끼는 거야. 왔구나 하고." 경매장을 처음 보는 신참이라는 걸 눈치 챘는지 옆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귀띔을 해주었다.

오전 10시 30분께 준비를 하고 11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매는 오후 5시 무렵이 돼서야 끝났다. 낙찰된 물건은 새 주인의 차에 실렸고, 유찰된 물건은 출품자의 손에 돌아갔다. 손에 땀을 쥘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긴장으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무대의 조명이 갑자기 꺼진 듯 서운했다. 다음 편의 내용이 못내 궁금해지는 드라마의 예고를 보듯이 경매장 안에 전시된 물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오래된 물건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물건들을 바라보는 것은 조선시대를 느릿느릿 걷고, 일제강점기를 아프게 돌아보고, 근대의 흔적을 천천히 지켜보는 일이었다. 시간을 관통해온 오래된 물건들은 그 시간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묻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 어떤 물건을 사용하면서 여기까지 걸어와 이 자리에 서 있는가."

다가오는 수요일, 그 다음 수요일에도 가락고미술경매장에서는 새로운 '오래된 물건'들이 경매대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낙찰가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인간과 시간과 함께 해 온 물건의 가치를 이야기해 줄 것이다.  

김해뉴스 /박현주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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