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은 인체의 6∼8%를 차지하지만 그 중요성은 다른 기관에 비교할 바가 못된다. 혈액은 크게 혈구와 혈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 역할을 잠시 살펴보면 적혈구의 주요 기능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산소를 운반하는 것이다. 백혈구는 질병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면역기능을 한다. 혈소판은 혈액순환 중에 상시로 일어날 수 있는 출혈을 방지해 준다. 혈장 중의 단백질은 미량이지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핵심적 단백질인 알부민은 혈액의 수분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삼투성 기능과 영양분, 호르몬, 약물 등을 수송하는 운반자 역할도 한다. 그런데 혈장에는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성 물질들도 존재하고 있고, 냉동 상태에서도 사멸되지 않기 때문에 혈장을 수혈 받은 환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인체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혈액은 오로지 헌혈에 의해 얻을 수 있기에 한 나라의 헌혈율은 그 나라의 환자 치료율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혈율은 선진국 못지않게 수 년 전부터 5% 중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점이 내재돼 있다.

첫째, 헌혈자의 연령구조가 심하게 왜곡돼 30대까지의 헌혈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40대 이상 헌혈은 극히 미미하다. 고등학생, 대학생 들의 헌혈이 70% 정도로 학생 헌혈에 의존하는 기형적 헌혈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하절기와 동절기 즉 방학기간에는 혈액 부족 현상이 어김없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둘째,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도 없는 헌혈증서 제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이 증서만 있으면 누구든지 병원에서 무료로 혈액 한 단위를 수혈 받을 수 있다. 헌혈은 엄밀한 의미로 보면 아무런 대가 없이 혈액을 제공하는 것인데 헌혈증서 발급으로 헌혈이 일종의 혈액 예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정부와 적십자사가 몇 년 전부터 이 제도를 폐지하려고 시도했지만 헌혈율 감소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헌혈증서를 폐지해 헌혈의 순수한 의미를 되찾는 길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비롯 많은 나라에서 혈액부족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그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령화와 저출산의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다. 혈액의 70% 이상을 소비하는 60대 이상의 고령층은 급속히 증가하는 반면 혈액을 공급하는 젊은 층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 혈액 부족은 불을 보듯 명확히 예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사스, 조류독감, 신종플루 등 신종 감염병의 출현과 더불어 여행 자유화로 메르스 같은 특정지역의 풍토병이 나라를 가리지 않고 유행하는 데 있다. 종전에 없던 질환들 때문에 안전한 혈액을 공급해 줄 수 있는 헌혈자 수가 제한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드름 치료제, 전립선 비대증 및 탈모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과 건선 치료제 등 태아의 기형을 초래할 수 있는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의 증가로 헌혈 가능자 수가 감소한다.

미래의 혈액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선진국들에서 강구되고 있다. 먼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엄격한 수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불필요한 수혈을 억제함으로써 적절한 혈액 사용을 유도하는 바람직한 현상이 정착되고 있다. 또 무혈 수술 기법을 개발해 과거보다 수술 때의 혈액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려고 하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보편화된 복강경이나 내시경을 이용한 수술도 수혈 양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인공혈액의 개발이 한참 진행되고 있다. 만약 인체혈액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인공혈액이 가까운 미래에 개발된다면 지금 겪고 있는 혈액 관련 문제점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혈액은 생명체이므로 보존기간이 짧은 데다 혈액형에 맞추어 수혈해야 하므로 계절은 물론 혈액형 별로 수급 불균형이 문제가 되어 왔다. 인공혈액은 보존기간이 매우 길면서 항원이 없어 환자의 혈액형에 관계없이 수혈할 수 있다. 인공혈액의 가장 좋은 점은 혈액전파성 질환의 감염에 대한 우려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인공혈액이 임상에서 일상화되기에는 상당한 세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건강한 시민들이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혈이 필요한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 이미 밝혔듯이 우리나라는 40대 이상 헌혈율이 현저하게 낮으므로 중·노년층이 적극적으로 헌혈함으로써 기형적인 헌혈자 연령구조를 바로 잡고 계절별 혈액부족 현상을 해소하는 바람직한 헌혈풍토가 조성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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