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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보다 중국을 더 사랑했던…(25) 펄벅을 좋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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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1.05.24 12:59
  • 호수 25
  • 11면
  • 박현주 기자(phj@gimhaenews.co.kr)

   
 
작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창작의 동기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의 창작 계기나 책이 일으킨 파장에 대한 이야기는, 책 그 자체보다 더 흥미롭다. 남자 아이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고아원에서 여자 아이를 잘못 보낸 일이 있었다는 짧은 신문기사를 본 몽고메리가 '빨강머리 앤'을 썼다는 이야기, 링컨 대통령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작가 스토우 부인을 만났을 때 '당신이 노예를 해방시킨 분이군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등은 해당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1996년 시카고의 한 서점에서 중국 여성작가가 자신이 펴낸 회고록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중국인임을 알아본 어떤 여성이 다가와 펄 벅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펄 벅이 중국인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쳤다고 말하며 선물로 책 한 권을 쥐어주었다. 펄 벅의 '대지'였다. 작가는 '대지'를 읽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이 책 '펄 벅을 좋아하나요?'를 쓰기로 결심했다.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류 작가 안치 민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작가는 왜 울었던 것일까. 중국의 대혁명 기간, 마오쩌둥 부인은 펄 벅을 '미국 문화제국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국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안치 민은 펄 벅을 미국 제국주의자로 고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책을 읽지도 못하게 하면서 비판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국가권력에 세뇌당한 상태였던 안치 민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신문의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여 글을 썼다. '펄 벅은 중국 소작농을 모욕했고 이는 결국 중국을 모욕한 것이다.' '펄 벅은 중국인을 혐오하므로 우리의 적이다.'
 
그랬던 안치 민은 작가가 되었고, 미국으로 이주했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한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펄 벅을 처음으로 접한 그녀는, 펄 벅에게 비난을 퍼부었던 자신의 과거를 생생하게 떠올리며 울었던 것이다. 작가는 고백한다. "나는 여태 중국 소작농들의 삶에 대해 펄 벅처럼 존경과 애정, 인간애를 가지고 글을 쓴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중국인보다 더 중국을 사랑했던 '푸른 눈의 중국인' 펄 벅에 대한 오마주와 같은 소설 '펄 벅을 좋아하나요?'는 이렇게 탄생했다. 빈농에서 시작해 대지주가 되는 중국인 왕룽의 이야기를 다룬 '대지'로 미국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펄 벅(1892~1973)의 인생을 다룬 작품이다.
 
펄 벅의 삶도, 안치 민의 인생도 드라마틱하지만, 소설이 씌어진 배경도 특별하다. 소설가의 삶을 소설가가 소설로 되살려내어 전기나 평전과는 다르다. 작가는 펄 벅의 삶을 독자들의 피부에 와 닿게 그려내기 위해서, 펄 벅과 평생에 걸친 우정을 나누는 중국인 소녀 '윌로우'를 창조해낸다. 소설은 19세기 말, 중국 남부 지역을 배경으로 기독교 선교사 부부의 딸인 펄 벅과 가난에 찌든 중국인 소녀 윌로우의 이야기를 통해, 펄 벅이 한 여자로서, 친구로서, 엄마로서, 작가로서 느꼈던 삶의 고뇌와 환희, 좌절과 희망을 섬세하게 녹여냈다.
 
소설 속 허구의 인물 윌로우는 펄 벅의 섬세한 감정선을 그려내는 것뿐 아니라 당시 중국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인물이다. 윌로우는 가난 때문에 돈에 팔려간 결혼생활과 남편의 학대로 집에서 탈출해 기독교학교에 다니며 중국 개혁에 힘쓰는 활동가로 변해가는 인물인데, 윌로우의 삶을 통해 중국 현대사와 사회상까지도 그려낸다.
 
자신이 비판했던 작가에게 바치는 오마주가 된 소설 속 윌로우를 통해 안치 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권력의 힘이 아무리 폭압적이라 해도, 인간의 자유로운 예술창작의 의지를 끝까지 억누를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안치 민 지음·정윤희 옮김/밀리언하우스/416p/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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