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게 제 장점이잖아요, 아주머니!"
 
<빨간머리 앤>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이다. 어린 시절 TV에서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빠짐없이 열심히 보았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빨간머리 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학창시절을 지나면서 어느 사이엔가 앤을 잊고 살았다.
 
20대의 어느 추운 겨울, 대학에서 근로장학생을 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패배감과 우울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대학교 도서관에서 다시 앤을 만났다. 앤이 결혼을 하고 작가가 된 속편을 읽으면서 비로소 희망을 얻게 됐다. 앤처럼 열심히 하면 무엇인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서른일곱의 11월.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음악실 한구석 피아노 밑에서 하나님에게 살려달라고 울며 기도했다. 인생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 왔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덮쳐 왔다. 3층 창문을 보며 뛰어내릴까 몇 번이나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음악실 옆 도서관에서 다시 앤을 만났다. 아주 천천히 며칠 동안 읽고 또 읽었다. 앤이 공상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 현실을 마주해도 피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앤을 보며 현실과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2014년 학교를 그만두고 16평의 작은 사무실에 문아트컴퍼니를 차렸다. 소질이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청소년 17명을 부여안고 추위, 그리고 더위와 싸웠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해 8월 부산영화의전당에서 부산위안부 박물관을 위해 창작뮤지컬 '위안부리포터'를 헌정공연했다. 올해는 고등학교 3학년 5명을 뮤지컬, 연기전공과의 4년제 대학에 진학시켰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한 다큐멘터리 1편, 경남·김해지역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위한 뮤지컬 2편도 만들고 있다.
 
"앤이 많이 바뀌었죠"라고 말하는 린드부인에게 마릴라는 이렇게 말한다. "앤이 바뀐 게 아니라 우리가 바뀐 거예요." 청소년들 덕분에 나의 인생도 바뀌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숨 가쁘게 달린다. 믿는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을 바꿀 것이라고.
  김해뉴스


≫김문희
문아트컴퍼니 대표. 김해의 문화예술현장에서 아동, 청소년, 어머니들과 함께 뮤지컬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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