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째 심각한 무좀에 시달리고 있다. 무좀이라는 질병은 귀찮은데다 얼마나 끈질긴지 완치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약간의 틈만 보여도 재발하기 일쑤다. 사실 '지저분한 질병'이라는 무좀에 걸린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은 이렇다.

민주화 시위 등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1988년. 대학 3학년 때 어떻게 하다 보니 행정학과 학생회장이 됐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학과 체육대회, 졸업생 환송식 같은 의례적인 행사만 잘 치르면 된다는 전임 회장의 '꼬임'에 넘어간 결과였다.

봄 신학기가 개강한 뒤 학과 사무실에서 다른 동료, 후배들과 함께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후배가 잔뜩 화난 얼굴을 한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A 교수가 예고도 없이 결강을 해서 수업이 펑크났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다른 학년의 후배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도 같은 말을 했다. B 교수가 사전에 알리지도 않고 결강을 했다는 것이었다. 결강은 다음주에도 이어졌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보았다. 당시에는 휴대폰이란 게 없어 두 교수와 직접 연락을 하지는 못했다. 학교 측에 물어보니 두 교수는 총선에 출마하려고 지역에 내려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학교에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 교수는 학생들에게 '총선에 나가니 수업을 빼먹을 수도 있다'며 양해를 구한 적이 없었다. 사전에 일언반구도 없이 무단으로 결강한 것이었다. 학기 개강에 앞서 학생들이나 학생 대표에게 설명을 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게 할 뜻이 없었던 것이다.

학교 측에서도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두 교수를 대체할 강사를 구했느냐고 하니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두 교수가 출마할 줄 알면서도 강의 시간을 배정해 놓은 것이었다. 교수들이 휴직하지 않는 한 강의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학생들은 수업을 어떻게 받고 학점은 어떻게 받느냐고 했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른 바 '운동권'도 아닌 그야말로 축구, 농구, 족구 등 '운동'을 좋아하던 '평범한 대학생'은 다음날부터 '무단 결강 총선 출마 교수들은 사직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머리띠를 두른 채 시위에 나섰다. 그런데도 학교와 두 교수 측에서는 반응이 신통찮았고, 결국에는 총장실 점거 농성에까지 이르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농성이 한 달, 두 달을 끌더니 결국은 한 학기 내내 이어졌다. 한 학기 동안 양말 3켤레를 빨지도 못하고 돌려가며 신은 결과 무좀이 생겼다. 총장실에서 얻은 '선물' 또는 '부작용'이었다.

총장실을 점거하는 한편 후배 두 명을 두 교수의 경북과 부산 선거사무실에 보내 사퇴나 휴직을 권하라고 했다. 그러나 두 교수는 후배들을 만나 주지 않았고, 사퇴나 휴직을 하지 않았다. 그해 선거에서 두 교수는 무난히 당선됐고, 이후에야 휴직을 했다.

인제대학교에서 앞으로 각종 선거에 출마하는 교수, 직원들에 대해 1년 휴직을 원칙으로 하겠다며 인사 규정을 고쳤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떠오른 대학 시절의 '암울한 추억'이다. 그런데, 이 추억은 1988년에 끝난 게 아니라 2015년 현재 대학을 다니는 많은 학생들에게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인제대의 결단을 환영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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