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식 인제대 교수.
'광복 70주년'이라는 8·15 광복절 행사가 광풍처럼 지나갔다. 개천절도 아니고 승전기념일도 아닌데 3세대 가까이 지나는 오늘까지 여전히 최대의 경축일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지만, 그나마 우리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의 하나로 보아 줄 수도 있다. 이에 비해 김해에 이 정도라도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고 정리하려는 노력이 있었던가, 라는 물음에는 그저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해에는 역사가 없다?"고 했다.
 
7천 년 전 가덕도에서 48개체의 인골이 출토되고 5천 년 전 범방패총의 '범방아이'가 알려졌으며, 4천500년 전 장유 수가리에 조개무지를 남겼던 '최초의 김해인'은 물론 고인돌의 청동기문화인 아홉 촌장의 '구간사회'를 지나 수로왕이 가락국을 세운 지도 2천 년이 넘는 가야의 고장 김해에 역사가 없다니, "이게 무슨 망발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해시는 경남의 18개 시·군 중에서 근대 이후에 군지나 시사를 편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유일한 지방자치단체이다. 조선시대인 1630년 <김해읍지>가 편찬되고 1929년 속간된 이후 <김해군지>나 <김해시사>가 편찬된 적은 없다. 1983년 이병태 선생이 <내 고장의 전통>이란 215쪽짜리 개설에 불과한 책자를 김해군의 이름으로 간행했을 뿐이다.
 
창원시는 1988년 시사를 편찬하고도 10년만인 1997년 2천399쪽의 <창원시사>를 간행했다. 인구 13만 9천 명의 통영시는 1986년 1천507쪽의 <통영군사>, 6만 9천 명의 함안군은 1997년 1천432쪽의 <함안군지>, 6만 3천 명의 거창군과 창녕군은 1996년 1천910쪽의 <거창군사>와 2003년 1천948쪽의 <창녕군사>를 각각 간행했다.
 
인구 5만 5천 명의 고성군도 1995년 1천610쪽의 <고성군지>를 간행했으며, 2만 8천 명인 의령군은 1983년 <의령군지>를 간행한 데 이어 2003년 2천365쪽의 <의령군지>를 편찬했다. 경남도는 1988년 <경상남도 도사> 상·중·하를 간행한 데 이어 25년 주기로 기획한 <경상남도사>의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도 김해시는 인구 53만 명이 되도록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역사를 정리한 적이 없다. 지역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다. 역사에 무관심한 일반시민이라도 이런 사실에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전통시대의 인문지리지는 김해사람의 기질을 '강간역농(强簡力農)'이라 했다. '강하고 간결함을 숭상하고 농사(생산)에 힘쓰는' 특질은 지금의 김해인과도 잘 통하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간결함에 가치를 둔다지만 자신의 역사를 편찬하고 안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예전에 어느 시장에게 시사 편찬을 권했다가 "우리는 백서를 발간하지 않느냐"는 답변을 들었다. 백서나 편람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자료집에 불과하다. 연관성도 없는 토막들로 김해 역사의 흐름을 가르치고 김해의 역사가 결정된 순간들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가야사의 연구 내용이 '평야(김해평야)'에서 '바다(고김해만)'로 바뀐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해의 인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연구의 축적은 이미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김해시가 김해의 역사를 새롭게 편찬해야 할 필요는 여기에도 있다.
 
고대~근현대에 성립했던 어떤 정권이나 국가의 완성은 해당 역사의 편찬으로 귀결되었다. 가야의 <가락국기>, 백제의 <서기>와 신라의 <국사>, 조선시대의 <고려사>와 <용비어천가>의 편찬 등은 새 왕권과 국가 완성의 대업이자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이정표였다. 1996~1997년 경남 각 시·군에서 군지와 시사의 편찬이 붐을 이루었던 것은 1995년 지방자치 시대의 출범과 무관하지 않다.
 
근자 <활천지>와 <장유면지> 같은 우발적이고 부분적인 역사지 편찬 소식을 들었다. 역사 전공자도 얻지 못한 <장유면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형식적인 편찬위원회만 구성되었던 <활천지>는 어느 개인의 저술로 간행되는 바람에 수많은 오류는 말할 것도 없고 변화된 활천지역사를 담기에 너무나 부족한 책이 되었다. 전형적인 예산의 낭비다. 김해 전체의 역사를 통일된 기획으로 일관되게 담을 시사는 김해의 차세대 교육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역사를 잊은 지자체에 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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