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휴머니스트/300쪽
1만5천 원

시 읽기에 빠져 '젊음 열정' 되살아
추억 속 음악·영화·그림 등 떠올라

얼마 전 서점에 가서 서가를 여기저기 둘러보다 딱 눈이 마주친 책 한 권이 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이다. 책이 "그대"라면서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문학도도 아니고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부제를 보고 더 강한 호기심이 일어 책장을 넘겼다.
 
한양대 국어교육과 정재찬 교수가 이공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 '문화혼융의 시 읽기'의 생생한 강의 내용을 묶어서 한 권의 에세이집으로 펴낸 것이다. 학업과 취업 준비에 바빠 청춘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가 없는 그들의 메마른 가슴에 '시'라는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킨다. 우리가 학창시절 교실에서 배웠던 시들시들한 시를 '지금 여기'에 다시 불러내어 살아 꿈틀거리게 한다. 가요와 가곡, 그림과 사진, 영화와 광고 등 다양한 문화예술 갈래를 넘나들며 시를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받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감탄한" 학생들은 강의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시를 잊은 그들이 시 읽기의 즐거움과 감동에 빠져 젊음의 열정을 다시 불태울 수 있도록 불잉걸이 되어준 것이다.
 
책에 실린 46편의 시는 대부분 우리가 중·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익숙한 시편들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김춘수의 '꽃', 유치환의 '행복', 김수영의 '눈' 등이다. 이 주옥같은 시들을, 우리는 단지 시험을 치기 위해 교사가 불러주는 풀이를 깨알처럼 받아 적으면서 외우기만 했다. 이런 주입식 문학교육에 저자는 딴지를 건다. 하나의 해석과 감상만을 요구하는 엄숙한 문학교육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시 읽기를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축제, 카니발의 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의 시 '눈'에서 '눈'을 순수함, '가래'를 생활 속에서 갖게 된 소시민성, 불순한 일상성, 속물성으로만 가르치는 뻔한 해석에 시비를 건다. '스포츠는 살아 있다'는 광고와 록, 힙합세계로 신나게 갈마든다. '눈에서 추락의 속성을, 기침과 가래에서 순수와 생명의 상징'을 읽어내며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록 정신으로 의미의 지평을 넓혀간다. 한 행 한 행 짚어가며 쫀득쫀득하게 시비를 건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자신의 시각이 확장되고 온몸의 감각이 환하게 열리는 쾌감을 맛볼 수 있으리라.
 
"문학에는 많은 대화와 논쟁거리가 있다. 한편으로는 소통이 되는 듯 서로 공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메울 수 없는 틈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사이와 차이라 부른다."
 
저자는 "다양한 사이 속에서 자유로운 대화와 논쟁을 통해 '너'와 '나'의 차이를 더 잘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관용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와 함께 시의 오솔길로 걸어가다 보면 추억 속의 영화, 음악, 그림들이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되어 춤을 추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되리라.
 
가을이다. 저자가 초대하는 '사이와 차이를 따라 떠나는 이 여행에 동행'을 해 보자.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자, 이제 동네서점에 들러 그대와 눈을 딱 맞추는 시집 한 권을 뽑아들고 펼쳐라. 그리고 이제는 그대만의 오솔길로 들어가 그대만의 즐거운 시 읽기를 해보라. 새로운 울림과 감동의 신세계가 기다리고 있을지니! 지금, 시를 잊은 이 땅의 모든 그대들은 시와 사랑에 빠지기에 딱 좋은 나이다.


김해뉴스
이은주 시인
<신생> 편집장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