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야학 16명 올해 검정고시 합격
가정형편에 공부 늦은 '어르신' 학생
대학 진학·소설 창작 등 다양한 꿈

"학력란에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쓸 수 없다는 게 한이었어요. 오랫동안 응어리졌던 한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지난 5월 실시돼 지난달 말 결과가 발표된 검정고시에서 '김해야학'에 다니는 '어르신 학생' 16명이 합격했다. 2명은 초등학교·중학교 졸업자격을, 14명은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취득했다. 이들은 대부분 어릴 때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어르신들이다. 말로 하자면 하루 종일, 글로 쓰자면 종이 100장을 다 채워도 모자랄 정도의 아프고 뜨거운 사연들을 다들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취득한 정옥진(61·여·삼방동) 씨는 어릴 때 집안사정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집안일을 도우면서 라디오로 공부를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김해시보를 통해 김해야학에 대해 알게 됐다. 검정고시학원 수강료에 부담을 느끼던 그에게 좋은 기회였다. 오후 6~8시에 손자를 돌봐야 하는 처지라서 수업시간이 마음에 걸렸지만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이후 김해야학의 모범생이 됐다. 그는 "겨울의 새벽은 밤처럼 까맣고 춥다. 출근할 때는 야학의 온기를 생각했다. 앞으로도 그 온기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김해야학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현재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는 이 씨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다. 심리 상담을 공부해 어르신들의 상담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외로운 어르신들의 모습은 저의 자화상 같다. 그들은 말벗 노릇을 해 줄 상담사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해자(60·여·삼방동) 씨는 6개월만에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따냈다.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학업의 뜻을 펼치지 못했다. 결혼을 해서 자녀들을 낳아 기르는 동안에도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 열망이 두 아들에게 갔는지 지금은 각각 의사와 교사로 집안을 빛내고 있다"며 뿌듯해 했다.
 

▲ 김해야학 교사들과 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 씨는 두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낸 후 공부에 대한 욕심을 키워 갔다. 그러던 중 옷수선을 하던 그에게 김해야학에서 공부를 하자는 권유가 들어 왔다. 그는 이후 오후 6시만 되면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게 문을 닫은 뒤 야학으로 뛰어갔다. "야학을 통해 공부뿐만 아니라 진짜 학교처럼 소풍도 가고, 체육대회도 즐길 수 있었지요.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너무 좋았답니다."
 
이해숙(60·여·어방동) 씨는 지난해 4월 공부를 시작해 1년여 만에 고교 졸업 자격을 따냈다.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끝내지 못했던 그는 대학교에 갓 들어간 딸의 권유로 야학에 다니게 됐다. 그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심정을 알았는지 딸이 기특하게도 야학을 추천해 줬다"고 말했다. 딸은 학교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야학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딸의 친구들로부터 펜이나 공책, 사탕 등을 선물 받았다"며 웃었다. 남편은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한 부인을 응원해 줬다.
 
이 씨는 야학 교사들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는 "교사들도 가정이 있고 개인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열정을 갖고 공부를 가르쳐 준 게 너무 감사하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사람들"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앞으로 책을 한 권 쓰고 싶다고 했다. 사람의 삶이 녹아 있는 이야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내는 게 그의 꿈이다.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대학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방금순(46·여·전하동) 씨는 1년 4개월 동안 공부해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따냈다. 그는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는 한과 억울함이 이제야 풀린 기분이다. 그동안 각종 자격증을 따려고 해도 지원 조건에 고졸 학력이 있어 속상했다. 이제는 다 해결됐다"며 기쁜 심정을 밝혔다.
 
방 씨는 청소년 시절에 방황한 탓에 제때 학업을 끝내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는 게 너무 싫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따로 공부를 해서라도 이루어내곤 했다. 그러나 독학에는 한계가 있어 야학에서 공부를 하게 됐다.
 
방 씨는 야학에서 중등·고등반 반장을 도맡았다. 힘들었지만 모두를 돕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에 경남도교육청에서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반장을 맡아서 힘든 점도 있었다. 그러나 함께 공부를 할 때 마치 어린 소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해뉴스 /어태희 인턴기자 tt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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