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손 잡고 서울서 온 어린이 노래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뒷집 햇볕 가리지 않게 배려한 건축
가난해도 따뜻했던 옛 마음 그대로

정겨운 마을 정착한 어린왕자·여우
별빛 내리는 밤 아이들과 숨바꼭질

마을 어르신들이 편히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옆에 슬쩍 앉아 보았다. "그 집에 영감이 아프다 카더만 인자 괜찮나?" "아들이 결혼한다고?" 소소한 일상을 묻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고향마을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왔다 간 마을"이라고 자랑하는 할머니도 있다.
 
지도를 보며 '이렇게 돌아야지' 계획을 짠 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출발했다. 결국,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마을을 돈다는 것은 천천히 걷는 일이다. 하늘 보고, 땅 보고, 사람들과 눈 맞추며 웃고, 저건 뭐지 하며 유심히 보고, 여긴 어디야 들어가 보고, 무시로 만나는 정겨운 벽화그림 앞에서 사진 찍고, 걷고, 또 걷고…. 그러는 동안 사람들과 함께 걷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엇갈린다. 마을 돌기에 순서가 어디 있겠나 싶어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좋았다.
 

▲ 하늘마루에서 내려다본 감천문화마을 전경.

서울에서 왔다는 김영수(39) 씨의 6세 아들 진욱이는 아빠 손을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우리 보고 나팔꽃 인사합니다/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어쩌면 이렇게 완벽한 선곡을 했을까 싶어 꼬마에게 까닭을 물어보았다. "아빠가 이 여행은 '마을 돌기'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났어요."
 
진욱이의 뒤를 따라 하늘마루로 올라갔다. 중국 관광객들이 하늘마루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을 집들의 지붕 아래로 멀리 감천항과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뒤편에는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와 도심, 부산항과 푸른 바다 너머 영도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부산에서 이만한 조경을 가진 곳이 또 있을까.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마을주민들이 자랑하는 풍경이기도 했다.
 
하늘마루에서는 감천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골짜기에 집이 들어설 때 사람들은 뒷집을 가리지 않게 집을 지었다. 그래서 모든 집에 햇볕이 고루 고루 내리 비친다. 마을의 집들을 보면 서로를 배려하면서 살아온 우리 민족 문화의 원형과 전통이 느껴진다. 가난했으나 따뜻했던 그 시절 그 마을. 먹고 사느라 잠시 잊었던, 마음 깊이 간직돼 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 마을을 내려다보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사이에 앉은 방문객.
하늘마루를 오르내리는 계단에서 사람들은 떠들지 않았다. "주민들의 주거공간입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조용히"라는 문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문 없이 골목길에서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구조가 대부분이어서 방문객들은 스스로 조심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온 연인은 "조용히 하는 게 당연하다. 여긴 마을 주민들 삶의 공간이다. 큰 길에 나가 떠들면 된다. 카페에 들어가서 떠들어도 되잖아"라며 활짝 웃었다.
 
하늘마루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어린왕자 포토존으로 이어지는 길로 향했다. 마을을 다녀간 방문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곳이다. 어린왕자와 사막여우는 산복도로 난간에 앉아 마을과 멀리 감천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린왕자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릴 정도였다. 셀카봉으로 어린왕자와 자신의 얼굴을 함께 담는 사람, 어린왕자와 함께 마을을 내려다보는 뒷모습을 일행에게 부탁하는 사람, 사막여우가 사진에 꼭 들어가게 찍어 달라는 사람, 주문도 각양각색이었다.
 
어린왕자의 뒷모습을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낮에 햇살이 마을 구석구석을 비추듯 밤이면 별이 온 마을에 가득 내릴 것이다, 그 별들 중 소혹성 B612호에 사는 어린왕자가 이 마을에 내려왔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정다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마을에 눌러앉기로 작정했다, 라는. 낮에는 저렇게 딱딱한 외형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지만, 밤이 되면 살며시 일어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감천마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바라기를 할 거라는. 어린왕자가 앉아 있는 난간 아래에 살았다는 신동철(49·장유1동) 씨는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본가에 갔을 때 밤에 어린왕자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 벽화로 단장된 집.
어린왕자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을 찾아 계단을 올라서다 작은 쉼터 하나를 발견했다. 큰 느티나무가 있고, 벽면에는 숨바꼭질을 하는 어린아이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정말 아이들이 놀고 있는 줄 알았다. 마을방문객들은 이곳으로 올라와 벽화 속의 아이와 똑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맑고 앳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마을에 별빛이 내리는 밤이면 어린왕자와 아이들이 만나 함께 놀지도 모르겠다.
 
어린왕자 포토존을 방문한 다음에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가고 싶은 방향으로 흩어졌다. 골목길로 들어간 사람, 큰 길을 따라 가는 사람, 다시 되돌아가는 사람…. 아마 방문객들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시작하는 지점이 여기부터가 아닐까.
 
한 가족을 따라 골목길로 내려갔다.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 계단 옆으로 난 좁은 골목길, 그 아래위로 또 골목, 그리고 계단. 걷다가 불쑥 벽화그림을 만나고, 빈집을 활용한 예술가들의 공간이나 전시장을 만나기도 했다.
 
저 골목길을 돌아서면 어린 시절 그리운 친구가 불쑥 나타나 "철수야 노~올자, 영희야 노~올자"하고 손짓할 것 같았다. 그 어렴풋한 기억들은 골목길을 돌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짙어졌다.
 
▲ 골목길 어귀에 자리 잡은 작은 아트숍. 벽화로 단장된 집.
"옛날 생각이 참 많이 나요." 청주에서 온 아주머니들이 말했다. 그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다들 한 시절 전에는 이러고 살았어요. 옆집에서 특별한 음식 하나만 해도 온 마을이 다 알던 때가 있었지요. 단순히 부산에서 유명한 관광지인줄 알고 왔는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네요. 우리에게 마을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갑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서 있는 동안 또 다른 방문객 일행이 나타났다. 그들과 함께 긴 계단을 걸어올라 다시 큰 길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장유에 사는 감천마을 출신 신 씨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길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고, 뒷집의 조망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마을의 오랜 원칙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만큼 변했으나 마을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이었다. 그 원칙은 외지에서 찾아온 방문객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마을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한 방문객이 일행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내가 살았던 마을은 빌라촌으로 변해 버렸거든. 고향이 없어진 거지. 그런데 이 마을에 와서 그걸 다시 찾은 기분이야." 감천문화마을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마을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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